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일의 오후 7시 스페인은 여전히 모든 국민들이 칩거 상태다.

시행령에 따르면, 먹을 것과 생필품, 의약품을 구하러 가거나 부득이 재택근무가 불가한 경우 출퇴근, 보호가 필요한 약자들(애완동물 포함)과 어르신들을 돌보러 가는 정도에 한해서만 외출이 허용되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하듯이 증명서를 지참해야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경찰 및 군인력이 동원되어 어디서든 어느 때든 검문을 할 수 있다고 공지 되었다. 일간지 라반가르디아(La Vanguardia)에 따르면, 지난 만 하루 동안 이를 어겨서 체포된 케이스가 전국에 63건이다. 

코로나19 관련 뉴스는 계속 쏟아진다. 라반가르디아 기준으로 몇 가지를 요약하면,
 
- 현재 보건부는 다음주까지 엄청난 환자수 증가가 있을 것으로 보고, 모든 동원 가능한 의료 인력을 모으고 있다. 70세 이하의 은퇴한 의사 및 간호사들과 이제 막 졸업한 이들까지가 대상이다. 

- 국가 위기 상황이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게 계속 연장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교육부는 학교들의 개학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 스페인에서 마드리드와 함께 가장 빠른 확진자 증가 추세를 보였던 바스크 지역에서 52세의 간호사가 오늘 사망했다. 의료 인력으로는 스페인 첫 사망이다. 

- 며칠 전 의료 수용능력이 포화 상태에 달했다고 발표했던 마드리드에는 오늘 어느 4성급 호텔의 361개 방을 의료용으로 정비하고 오픈을 했다고 한다. 이 곳은 경증 환자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쓰일 것이라고. 마드리드의 다른 호텔들도 곧 이와 같이 의료용 목적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한다.

호텔을 의료용으로 쓰는 건, 몇 주 전 한국내 코로나19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에 도입되었던 '생활치료센터'와 비슷한 역할을 할 모양이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줄 알았던 전세계 바이러스 전쟁이 눈앞에 도래한 뒤로 매일이 새로운 뉴스의 연속이다.

그 전쟁 속 나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쓰레기라도 버리러 나갔다 올 수 있게 되어서 쓰레기 봉투가 다 찬 것을 보고 기쁘더라는 지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일어나면 커피를 내리고 옷을 갈아입고 일하면서 뉴스를 확인하고, 사이사이 밥을 먹는다.

그게 무슨 문젠가 싶겠지만 우리집에서 나는 쓰레기 당번도 아니라 지난 며칠 밖에 나갈 일이 없었다. 개가 있으면 산책을 시킬 수 있으니까, 그 핑계로라도 나가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중고시장 사이트에 개를 대여해 주겠다는 불법 거래 광고들이 올라오고 있다는 보도마저 나왔으니, 그저 웃을 일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기대하고 있던 슈퍼마켓 가는 날이 왔다. 지난 13일부터 줄곧 집에만 있다가 드디어 6일째인 오늘 먹거리를 사러 나갔다 오게 된 것이다. 물론 슈퍼마켓 가는 날이 일주일에 몇 번이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왠만하면 집에서 나가지 않고 지냈다.

뉴스에서 슈퍼마켓에 사람들로 붐비는 일이 없도록 인원들을 통제하고 있고, 사람들 사이에 1미터 이상씩 거리를 두게 되어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 들어오던 터였다. 필요한 것들을 메모지에 적고, 에코백과 카메라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집에서 몇 블록 떨어져 있는 단골 체인점으로 향했다. 성가족 성당에서 해변으로 이어지는 마리나 대로가 휑뎅그렁하다. 평소대로라면 6차 대로가 차로 붐볐을 시간이다. 
 
3월 19일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위기 상황 중 문 닫힌 성가족 성당의 모습
 3월 19일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위기 상황 중 문 닫힌 성가족 성당의 모습
ⓒ 한소정

관련사진보기

 
길을 따라 올라가니 혼자 서 있는 성가족 성당이 보인다. 지금까지 5년째 바르셀로나에서 살면서 매일 수천명씩 성당을 에워싸고 있는 것만 보다가 간간이 행인만 몇이 보일 뿐인 이 광경은 생소하다 못해 처량하다 싶은 기분마저 든다.

성당 앞뒤로 있는 공원들도 테이프로 둘러진 채 텅 비어 있었다. 테이프 너머로는 며칠 간 아무도 밟지 않았을 모래 길과 그 위로 떨어져 내린 꽃 이파리들이 앉아 있었다. 이 심란한 시국에 이렇게 평화롭고 고운 광경이라니. 사람이 비워진 공간에 자연이 홀로 소리도 없이 아름답다. 
 
3월 19일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위기 상황 중 문 닫힌 성가족 성당의 모습
 3월 19일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위기 상황 중 문 닫힌 성가족 성당의 모습
ⓒ 한소정

관련사진보기

 
슈퍼마켓은 비교적 한산했다. 밖에서 1미터씩 간격을 두고 줄을 서 기다리기도 한다더니, 그것은 특히 붐비는 시간인 모양이다. 슈퍼마켓에 구비된 장갑을 끼고 최대한 다른 이들과 거리를 두면서 적어온 물건들을 찾아 바구니에 넣었다.

생필품 조달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던 정부의 말처럼, 잘 정리해 진열된 선반들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전세계 사재기 파동으로 갑작스레 멸종 위기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 때문에 선반 몇 개가 연달아 비어 있을 뿐이었다. 
 
3월 19일 바르셀로나의 어느 수퍼마켓에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
 3월 19일 바르셀로나의 어느 수퍼마켓에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
ⓒ 한소정

관련사진보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늘상 8차선 도로가 차들로 꽉 들어차 매연으로 매캐하던 디아고날 대로도 텅 비어 있다. 알고 있던 것들도 막상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은 매번 새로운 법이라, 혼자 중얼거렸다. 아, 이럴 수가 있구나. 집콕 7일째 짧은 마실이 끝났다.

태그:#스페인, #코로나19, #성가족성당, #사그라다파밀리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