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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이라는 말이 갑자기 언론 지면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 2번인 장혜영 후보가 지난달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여러분의 둘째 메갈 국회로 보내주세요"고 쓴 것이 뒤늦게 논란이 되어서다.

장 후보는 자신의 닉네임인 '생각많은 둘째언니'를 검색하면 '메갈'이 자동완성으로 뜨는 것을 보고 자조적으로 자신을 메갈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하지만 맥락은 무시된 채로 무수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누군가를 '메갈'이라고 공격하는 이들에게 메갈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메갈리아 사이트는 2017년에 없어졌다. 그 뒤를 이어갔던 메갈리아4 페이지도 문을 닫았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 지형에서) 래디컬 페미니스트 진영을 메갈이라고 일컫는가? 한국여성민우회 SNS 계정을 팔로우 한다고 메갈 소리를 듣는 상황에서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관련기사: 여성 게임 원화가 '사상검증' 논란... "여성민우회 왜 팔로우했나").

'낙인찍기'의 위력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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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이 메갈이다" 혹은 "~은 메갈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페미니즘적'인 그 모든 것에 대해 메갈이라고 칭하는 듯하다. 특히 젊은 여성이 페미니즘 지지 발언을 하면 대부분 메갈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여혐도 안 되고, 남혐도 안 돼", "요즘 페미니즘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손뼉칠 수 있는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에게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돌아간다.

메갈이라는 호명은 막강한 위력을 자랑한다. 남성들은 메갈리아에서 '미러링'의 방식으로 남성을 공격하는데 큰 충격을 받고, 그것이 '남혐'이나 '여성우월주의'라고 일컬으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즉 남초 커뮤니티 안에서 메갈은 '남혐하는 곳', '여성우월주의적 행태를 띠는 곳'이라는 의미를 부여받는, 멸칭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은 메갈이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메갈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메갈이 어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메갈만큼 강력한 적의를 불러일으키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메갈 낙인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모든 낙인이 다 그렇듯, 강자가 가장 폭력적인 선택지 속에 약자를 가두는 방식이라서다. "메갈이냐"라는 질문에 '예'라고 하면 가장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 이들과 동일시한다. 반면 '아니오'라고 하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해명'을 요구받는다. 이러나저러나 페미니스트들을 수세에 몰리게 하는 방식이다. 

장혜영 후보 역시 자신에 대한 '메갈 논란'에 대해서 명백한 '낙인 찍기'라고 규정하며 대응했다. 

"너 메갈이지'라는 질문은 '너 빨갱이지'라는 질문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 질문의 의도가 명백히 상대의 인격을 말살하고 한 인간을 자의적으로 규정된 하나의 '있어서는 안될' 존재로 규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두 질문이 작용하는 방법은 정확히 같습니다. 낙인이 아니라 낙인찍는 자의 비열한 손을 똑바로 직시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메갈리아, 그 이후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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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페미니스트 중에 메갈리아를 경유하지 않거나, 메갈리아에 빚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은 '메갈리아, 그 이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갈리아는 온라인에서의 새로운 대항언어를 만들어냈고, 여성들의 분노를 응집시키는 데 기여했다. 평가는 각자 다르겠지만, 메갈리아가 분기점이자 기폭제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 추모, 미투, 낙태죄 폐지 등은 모두 메갈리아가 바꾼 새로운 '판'에서 등장한 사건들이다.

그런데 소위 '진보 남성'이라는 이들도 메갈리아 이후의 여성 인권 향상에는 박수를 보내면서, 정작 '메갈'이란 말에는 이유 모를 적개심을 표한다. 한 진보 성향의 기자가 "정의당 비례 2번 후보가 정말 메갈이 맞습니까? (...)숙명여대 사건을 보면서 한국의 페미니즘에 경악했다.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시는 건 존중하지만, 극단적 페미니즘은 곤란합니다"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것을 보면, '메갈'이라는 말이 얼마나 오염이 됐는지 알 수 있다. 

장혜영 후보는 정말 오랜 시간 트위터에서 '트랜스젠더 배제' 등 '페미니즘'을 명분 삼아 혐오발언을 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토론해 왔다. 그 과정에서 온갖 사이버불링을 견뎠기에 너무나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그의 행보를 알고 있는 정의당 내에서조차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황당하다.

사실 장혜영 후보뿐만 아니라,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그렇게 각자 자리에서 혐오에 대응해 왔다. 진정으로 페미니즘의 방향을 고민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한 것은 진보 남성들이 아니라, 그들이 '메갈'이라고 말하는 페미니스트였다는 이야기다.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해 본다. 남성들이 온갖 악마적이고 괴기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인 여성우월주의자가 메갈은 아니다. 그저 차별 당하고 싶지 않고, 폭력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싶은 사람이 바로 메갈이다.

그동안 오랜 기간 여성운동을 해온 페미니스트 또는 비교적 젊은 30대 여성 국회의원은 있었지만, 메갈리아 이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청년 여성 정치인은 없었다. '메갈 낙인찍기'에 말려들지 않은 장혜영 후보가, 국회에서도 '페미니스트 정치'를 펼치며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아직 공천이 끝나지 않은 다른 당들은 부디 젊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밀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메갈'이라는 말이 나오는 후보자라면, 여성들의 목소리를 더욱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좋은 정치인'이 될 재목이라고 생각한다.

태그:#메갈리아, #메갈, #장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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