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전 10시 서울 강서구 A약국. 80m에 이르는 구매행렬이 A약국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곧 마스크 판매가 시작됐고, 대형 공적마스크 170개는 25분만에 동났다. 이후 낮 12시까지 60여 명이 더 약국에 들렀지만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소형·중형 공적 마스크는 낮에도 소량 남아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중형이라도 사겠다"며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하지만 약사는 "중형 마스크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정도만 사용할 수 있다, 성인이 쓰기엔 크기가 정말 작다"라며 구매를 말렸다. "아이들에게도 판매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9일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 A 약국에서는 큰 혼란은 없었지만, 빈 손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5부제 첫날, 현장 상황은?
 
9일 오전 9시 40분 기준, 강서구에 위치한 약국 앞에 몰린 마스크 구매 행렬이다.
 9일 오전 9시 40분 기준, 강서구에 위치한 약국 앞에 몰린 마스크 구매 행렬이다.
ⓒ 강연주

관련사진보기

   
9일 오전 10시, 마스크 5부제가 첫 시행된 약국 모습이다. 의약품안전사용정보시스템(DUR)에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했을 때 중복구매 이력이 뜨지 않는 사람들을 확인한 뒤 구매가 이뤄졌다.
 9일 오전 10시, 마스크 5부제가 첫 시행된 약국 모습이다. 의약품안전사용정보시스템(DUR)에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했을 때 중복구매 이력이 뜨지 않는 사람들을 확인한 뒤 구매가 이뤄졌다.
ⓒ 강연주

관련사진보기

 
오전 8시 50분. 약국에 마스크가 배달됐다. 약국 내부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근무하는 약사 5명 가운데 4명이 판매 준비에 나섰다. 오전 9시 20분 약사들은 1인당 2매씩 배분한다는 정부 정책에 맞춰, 5개 묶음으로 온 마스크를 2개씩 나누기 시작했다.

이곳의 약국장 김아무개씨는 "낱개 포장된 게 들어올 때도 있고, 오늘처럼 5개 묶음으로 올 때도 있다"며 "이 경우 저희가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서 개별 봉투에 따로 소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스크 5부제 시범사업기간이었던) 지난 주말에는 일부 시민이 왜 완제품이 아니라 소분된 걸 주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납품 업체가 묶음으로 납품할 경우엔 저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약국 밖에서는 어김없이 마스크 구매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이날 첫 구매자였던 장아무개씨는 "오전 8시 50분부터 약국 앞에서 줄을 섰다"며 "앞서 두 군데를 돌았는데 이후 이곳으로 넘어와 줄곧 기다렸다"라고 말했다.
         
마스크 5부제가 처음 시행되는 날인 만큼, 약사는 대기자들에게 "오늘은 출생년도 1, 6번만 구매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여기에 동요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없었다. 이날 기자와 만난 10명의 시민들은 "마스크 5부제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9시 45분 약사들은 판매에 앞서 대기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먼저 확인했다. 한 약사가 차례로 대기자들의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이를 받아 적으면, 명단 일부를 받아든 다른 약사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아래 DUR, Drug Utilization Review)에 대기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미리 입력해 놓는 식이다.

DUR에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대기자들의 마스크 구매 이력을 조회할 수 있다.구매자가 다른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매했을 경우 '판매할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가 뜬다. 약국장 김씨는 "이렇게 미리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 놓으면 마스크 구매일을 잘못 안 시민들이 허투루 기다리는 것을 줄일 수 있다"면서 "판매할 때 드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마스크 5부제에 사용되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Drug Utilization Review)의 모습이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구매자의 신원과 마스크 중복 구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마스크 5부제에 사용되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Drug Utilization Review)의 모습이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구매자의 신원과 마스크 중복 구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 강연주

관련사진보기

5부제 적용했지만 여전히 구매 못한 사람들 있어

대형 마스크는 10시 판매 시작 이후 25분 만에 품절됐다. 이날 중복 구매자는 없었다. 다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서 구매하지 못한 사람은 있었다. 연세대학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이다.

그는 "사전에 외국인들에게 요구되는 서류(신분증, 국민건강보험공단 서류)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라며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정보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상황인데, 한국에 지인들이 없는 외국인들은 마스크를 구매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하고 돌아간 시민들도 많았다. 이날 바로 앞에서 마스크 품절 소식을 접한 권아무개(70)씨는 "이 근방의 약국 5곳을 돌았는데 살 수 없었다"라며 "약국마다 마스크 판매 시간이 다 다른데, 몸 불편한 노인들은 판매 시간을 일일이 다 확인하고 다녀야 하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판매 시간이 일원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서 약국을 찾은 황아무개(81)씨도 "보통 아침에 다 품절이 되는데 몸이 불편하다 보니 약국 판매 시간에 와서 줄을 서는 게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에게 마스크 대리 구매도 가능하다고 전하자, "자식들이랑 따로 살고 있어서 대신 구매해 줄 사람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DUR,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 본다"  

점심 시간을 앞두고, 약국은 한산해졌다. 약국장 김씨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는 "5부제 시행된 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스크가 배포되는 것을 실감한다"며 "물론 약사 입장에서는 마스크를 판매하는 오전 시간 동안 정신없이 바빠진 게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마스크 수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부제 시행 전에는 마스크 물류 업체를 따라서 약국에 무작정 따라 들어오는 시민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가방을 메고 약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중복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5부제 시행 전에는 시민들이 판매 두 시간 전부터 약국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김씨는 개인적인 고충도 전했다. 그는 "오전 시간 동안 대부분의 인력이 마스크 판매에 투입되다 보니 다른 고객들의 약 처방에 제대로 신경을 쓸 수가 없다. 특히 판매가 이뤄지는 동안에는 다른 업무를 볼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심리적인 부담도 밝혔다.

"시민들을 대면하면서 바뀌는 정책을 일일이 다 설명하고, 이들의 불만을 직접 듣는 게 쉽지 않다. 일부 시민들은 저희 보고 마스크를 숨겨놓고 판매 안 하는 거 아니냐고도 한다. 이런 분들과 마주할 때마다 정신적으로 참 힘들다."

김씨는 "당장의 마스크 수급이 원활하지 않는 것은 물품이 충분하지 않는 상황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라며 "시민들도 이런 문제를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고, 정부도 이 정책을 최대한 상세히 홍보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태그:#마스크, #5부제, #코로나19, #감염병, #약국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