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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 1회 1인당 2매 구매 제한과 요일별 구매 5부제 적용 등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약국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주 1회 1인당 2매 구매 제한과 요일별 구매 5부제 적용 등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약국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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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2월 29일)부터 약국에 공적 마스크가 입고됐다. 현직 약사로서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며 겪은 일들과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 월요일
"번호표를 내놓으시오"


몇십 미터 거리의 이웃 약국에 줄이 길게 늘어선 것을 신기해하며 출근. 그러나 불과 십여 분 후에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마스크 있어요? 없어요. 언제 와요? 모르겠어요. 언제 오는지 몇 장 오는지 저희도 몰라요. 공적 마스크 약국으로 온다면서요? 그렇다고 하는데 저희도 몰라요. 토요일에 처음으로 90장 왔고 오늘도 올 거라고 하는데 언제 얼마나 오는지 모르겠어요.

지난 주부터 이런 질문에 하도 시달려서 이제는 자동응답기처럼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온다. 그러나 한두 명씩 들러 마스크를, 에탄올을, 체온계를 물어올 때와는 다르게 여러 명이 몰려와서 기세등등하니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없다고 모른다고 해도 쉽게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럼 번호표를 주세요. 우리가 아침 일찍 와서 기다렸으니 그냥 가면 억울하잖아요. 번호표를 주세요. 네? 번호표요? 다른 데도 그렇게 해요.

그러면서 한 분이 약국 도장과 번호가 찍힌 쪽지를 보여주었다. (아, 이 사람은 약국을 돌면서 마스크를 모으는 사람이었는데, 번호표가 증거였는데! 그땐 그런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너도나도 번호표를 요구했다. 우리 약국은 비좁다. 대여섯 명만 들어와도 꽉 차는 곳이라 처방전을 가져오는 환자들을 놔두고 계속 실랑이를 할 수 없었다. 포스트잇에 약국 직인을 찍고 번호를 적어 돌려보냈다. 동네 약사들 단톡방에 들어가 봤더니 상황이 비슷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너무 놀라서 어쩔 수 없이 번호표 줬어요. 저 때문에 다른 약사님 곤란하실까봐 걱정돼요. 우리끼리라도 규칙을 정해야겠어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으나 약국마다 상황이 다르고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 화요일
퇴근길 안내문, 대혼란의 전초


우리 내부적으로 원칙을 정하기로 했다. 예약이나 번호표 발급은 하지 않기로 했다. 번호표를 받아서 나중에 마스크를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들 나름 당당했으나 마스크 없다고 해놓고 눈앞에서 마스크를 꺼내주니 다른 사람들이 항의를 했다. 언제 몇 장이 배송되는지 알 수 없으니 미리 번호표를 주지 말고 배송되는 것을 보고 판매 시간을 정해서 알리기로 했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묻는 사람이 많았으나 아직 배송되지 않았다고, 오늘 도착 분을 내일 아침 9시에 판매하겠다고 말했다. 토요일과 월요일엔 5매 포장 마스크가 왔는데 화요일엔 1매 포장으로, 게다가 도매상 2군데서 140장이나 왔다.

퇴근하면서 약국 앞에 '3월 4일 입고수량 140, 3월 5일 판매 가능수량 140, 5매 기준 구입 가능 인원 28명, 9시부터 판매합니다'라고 써붙여 놓았다. 140장이고 모두 낱개 포장이라서 조금씩 양보하면 더 많은 사람이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며 뿌듯했다.
 
정부가 주 1회 1인당 2매 구매 제한과 요일별 구매 5부제 적용 등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약국에서 약사가 신분증을 확인한 후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
▲ 마스크 구매시 "날짜 확인하고 신분증 챙기세요" 정부가 주 1회 1인당 2매 구매 제한과 요일별 구매 5부제 적용 등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약국에서 약사가 신분증을 확인한 후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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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일
아무도 단 한 장도 양보하지 않았다


약국 앞에 줄이 꽤 길게 나 있었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겼다. 28번까지의 사람들은 뒷사람들을 빨리 돌려보내라고 아우성, 29번부터는 5장씩 주지 말고 다 같이 나누자고 아우성. 앞에 사람들에게 수량을 나누면 어떻겠냐고 말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빨리 28번에서 끊어 버리라고 성화였다.

공적 마스크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1인 5매 이하'였다. 원래 취지는 한 사람이 많이 사지 못하게 하려는 건데 지금처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5매도 많은 양이다. '1인 5매까지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무심코 적어서 공지한 것이 화근이었다.

5매까지 구입할 수 있지만 사람 수가 많으면 서로 이해하고 나눠가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와 달리 분위기가 살벌했다. 모두 몇 명인지 몇 장씩 나누면 될지 다시 수를 세기 시작했으나 사람들의 아우성 때문에 제대로 셀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수를 세기 시작하자 줄이 계속 늘어났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누고 싶었던 마음을 접어야 했다.

공지한 대로 5매까지 구입 가능합니다. 앞에 분들께 부탁드려요. 공적마스크 소량이지만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조금씩 양보해주세요.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단 한 장도 양보하지 않았다. 29번 아주머니, 30번 31번 내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특히 안타까웠다. 29번 이후의 사람들은 억울해서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새벽부터 나왔는데 그냥 못 간다, 번호표를 달라, 왜 다섯 장씩 줬냐, 또 어떤 분은 내가 아침 9시에 오면 살 수 있다고 해서 늦게 왔다고 내 탓을 하기도 했다(우린 분명 아홉시부터 판매하지만 일찍들 나오실 거라고 말했는데). 이른 아침 고생 하셨는데 마스크가 부족해서 죄송하다고 쌍화탕을 드렸더니 이런 건 필요 없다, 마스크를 달라 고함을 쳤다.(그러나 나중에 다들 가져갔다).

낯익은 내 또래의 여성 두 분(나중에 생각해보니 월요일에 번호표 달라고 했던 분들 같다), 다른 약국은 2장, 3장씩 파는데 다섯 장씩 팔면 어떻게 하냐고 마지막까지 항의를 하셨다.

그럼 내일부터는 3장씩 판매할까요? 했더니 갑자기 표정을 확 바꾸어 오늘 5장 팔았는데 내일은 왜 3장이냐고. 이 분들이 내게 29번 이후에 나이 든 어르신이 많으니 28번에서 자르면 안 된다고 주장했었는데, 이렇게 얼굴 바꾸는 걸 보니 정말 나이 드신 분들을 배려하는 마음이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아침의 소동은 낮까지 이어졌다. 점심시간에는 마스크를 못 산 아주머니가 전화로 분풀이를 했다. 전에는 번호표를 주고 오늘은 왜 안주냐고, 아침 9시에 파는 건 누가 정한 거냐고.

처음에는 들어주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새벽부터 나가 줄 섰는데 마스크 한 장을 못 샀다고 하도 그래서 그럼 제가 다른 방식으로라도 마음을 풀어드리면 좋겠다 했더니 다른 것 다 소용 없고 오로지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럼 제가 개인적으로라도 마스크를 구해보겠다 했더니 나는 그런 마스크는 필요 없고 공정한(!) 마스크를 원한다고. 공적 마스크인데 왜 네 맘대로 번호표를 줬다 안줬다 하냐고 트집을 잡는데 할 말이 없었다.

약국을 통해 공적 마스크를 공급한다고 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약국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시기에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맡아 하면 뿌듯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발표가 먼저 났고 마스크를 살 수 있다는 기대로 약국을 찾은 사람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마스크가 입고 돼도 수량이 너무 적었다. 적은 수량을 나누려니 참 곤란했다. 마스크를 사지 못한 사람들은 공정하지 않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단 한 장도 우리 자신을 위해 쓰지 않으며 '공정'하려고 애를 썼지만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공정한가. '아침 9시, 선착순'에서 배제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후에 출근하는 보안 경비업체 직원, 투석하는 어머니를 위해 마스크를 사고 싶지만 새벽 일찍 나가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 몸이 불편하여 기동력이 떨어지는 사람, 기저질환이 있어 마스크는 더욱 절실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나설 수 없는 사람들.
 
정부가 주 1회 1인당 2매 구매 제한과 요일별 구매 5부제 적용 등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약국에 마스크 판매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부가 주 1회 1인당 2매 구매 제한과 요일별 구매 5부제 적용 등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약국에 마스크 판매 안내문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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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
두둥, '마스크 5부제' 문이 열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수요일에 마스크가 안 왔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설까봐 약국 문 앞에 '입고 안 돼서 판매하지 않습니다'라고 써놓고 퇴근했다. 기웃거리고 마스크 정말 없냐고 묻기는 해도 줄을 서거나 몰려오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점심 먹으러 집에 들렀는데 엄마가 뉴스를 보니 이제부터는 마스크를 살 때 신분증을 내고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단다, 라고 하시는데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그런 움직임이 있는 건 알았지만 쉽게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오후에 무심코 카톡을 열었는데 약사공론에 마스크 5부제 속보가 떴다. 헐, 진짜 하는 거야? 할 수 있는 거야? 약사회에 전화해볼까 하다가 통화중이고 바쁠 것 같아 약사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 가 보았더니 실제 상황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시작이라고! 직원들이랑 퇴근하기 전에 공적 마스크 보고 사이트에 접속해 보고 홍보 포스터를 출력하여 문 앞에 붙이고 사이트가 폭주할 경우를 대비해 수기 장부를 만들어 놓았다.    

# 금요일
하루에 350장, 우리가 그걸 해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공적 마스크 등록을 위해 처방전 입력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기 위해서였다. 8시 30분 약국 앞에 늘어 선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 와 경비 해제를 하려고 하는데 안에서 문이 열리며 '국장님 어서 오세요~' 라며 전산 직원이 맞아 주었다.

간발의 차이로 또 다른 직원, 그리고 근무 약사님이 도착했다, 어젯밤 '걱정 말고 출근 시간 엄수!'라고 했는데 모두 내 말을 어기고 일찍 나온 것이다.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했더니 창 왼쪽 위에 '공적 마스크 보고' 버튼이 생겼다. 직원들이 안에서 준비를 하고 나는 밖에서 줄 선 사람들을 만났다.

목요일에 마스크 100장이 왔고 새로운 지침에 따라 2장씩 판매한다고 어제 공지를 해놓았었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순조로웠다. 신분증 꼭 가져와야 한다고 써 놓았는데 내가 신분증 필요 없다고 적어 놔서(???) 안 가져왔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신분증이 없더라도 처방 조제 이력이 있으셔서 건강보험 수신자조회로 확인을 한 후 판매했다(이런 점에서 약국이 공적마스크 공급처로 제격인 듯하다).

며칠 전에 비해 꽤나 질서 있게 큰 불만 없이 마스크 100장을 팔았다. 마스크 5부제와 함께 공급량을 늘린다고 하더니 오전에 마스크가 250장 와서 모두 350장을 팔았다. 평소보다 처방건수가 적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근무약사님, 직원들의 팀워크가 좋아서 큰 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

갑자기 만들어진 시스템에 이렇게 빨리 적응하고 잘 대처해준 우리 약국 식구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신분증 확인을 하고 주민번호 조회를 하다가 실제로 다른 약국에서 구매 이력이 있는 사람들을 걸러낼 수 있었다. 구매이력에 'OO약국'이라고 뜨는 걸 보면 조금 뭉클했다. 저 너머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지를 발견하는 느낌이랄까.
 
경기도 성남시 한 약국 출입문에 신분증을 확인한 후 1인당 2매씩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경기도 성남시 한 약국 출입문에 신분증을 확인한 후 1인당 2매씩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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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야박한 사람들? 생각이 바뀌었다


약국 앞에서 서성거리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출근할 때 줄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두려웠는데 다가가서 한 분 한 분 만나보니 그리 '무서운' 분들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야 마스크가 꼭 필요하지 않아. 밖에 나가는 사람들이 문제지.' 

새벽부터 악착같이 줄을 섰던 분들이 자기 자신보다 자식과 손주를 위해 마스크를 사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머니 한 분은 아들이 군대에 가는데 마스크 20개를 준비해오라고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너무 야박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연을 듣다보니 마음이 누그러졌다.

토요일이라서 아침 일찍 마스크 200매 왔고 어제처럼 큰 혼란 없이 100명의 사람들에게 2장씩 팔았다.

# 일요일
마스크 5부제 본격 실시 하루 전 


약사회에서 마스크 판매를 위해 휴일지킴이 약국을 독려하는 문자가 왔다. 몇 시간이라도 문을 열고 마스크를 팔까 하다가 혼자 나와서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직원도 없이 혼자 일하는 1인 약국은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근 병원이 일요일 진료를 해서 일요일에 문을 여는 후배가 떠올랐고 후배를 도우러 가기로 했다.

3월 9일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한다. 어느 정도의 혼란이 예상되지만 차츰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여전히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동동거리는 사람은 많고 마스크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약국의 어려움과 피로감도 상당하다.

그렇지만 이번 주에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어느 정도의 내성과 자신감이 생겼다. 마스크를 공급하는 제약 도매업체도 밤낮으로 휴일도 없이 일을 한다고 들었다. 실시간 마스크 재고를 알려주는 어플도 오픈 예정이라고 하니 조금 더 힘을 내어보자.

전염병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치명적이다. 서로를 의심하고 거리를 두게 할 뿐 아니라 내가 감염원이 되어 격리되고 고립될까 봐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바이러스에 대한 실질적인 두려움뿐 아니라 이런 불안감이 마스크에 대한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공포와 불안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언론 보도는 사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물리적으로는 거리를 두되 마음으로는 서로를 응원하고 어루만지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태그:#공적 마스크, #코로나19, #약사,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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