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은 코로나19 확산 탓에 텅 비었다. 하지만 정부서울청사 인근 한국마사회 경마기수 고 문중원씨의 시민분향소 주변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기에는 고인의 부인 오은주씨도 있었다.

이날은 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00일을 맞은 날이다. 전날 유족을 대리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마사회는 부경경마공원 사망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오은주씨는 이곳 시민분향소에 안치된 남편의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원회)에서 이날 기자회견을 마련했고, 오은주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씨가 눈물을 닦을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쉽게 입을 열지 못한 그는 곧 호흡을 가다듬고 준비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아래는 오씨의 글 전문이다.

"남편을 보내는 오늘이 올까봐 잠들기 싫었다"

 
 7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옆 시민분향소에서 열린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아내 오은주씨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흐느끼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옆 시민분향소에서 열린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아내 오은주씨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흐느끼고 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길고 긴 싸움이 끝이 났습니다. 2019년 11월 28일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혼자만의 작별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 나갔던 순간. 그리고 29일 새벽에 전해온 남편의 사망 소식. 영원히 제 가슴 속 깊은 곳에 머무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추억입니다.

99일 간 질긴 싸움을 하며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풀쑥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많았고, 이를 악 무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99일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제 남편이 남기고난 우리 아이들이 있었고, 옆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신 양가 부모님들이 계셨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제 옆에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끝까지 제 손 잡아주신 공공운수노조 시민대책위, 민주노총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뭐라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감사함을 느낍니다.

동시에 많이 죄송한 마음도 큽니다. 저희들 때문에 힘든 투쟁에 같이 연대하셨다가 다치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저한테 괜찮다며 오히려 저를 더 걱정해주시던 따뜻한 마음과 손길,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지만 99일 동안 잊지 못할 인연들을 만났습니다. 99일 동안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며 저는 한 뼘 더 성장했습니다. 많은 분들을 통해 희망을 얻었고 제 삶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슬픈 시간이면서 그리고 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마사회와 어제 마지막 합의를 했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교섭이었습니다. 교섭위원들님께 너무 감사드리고, 너무 고생하셨다고 꼭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과 한 마디 없는 무능한 문재인 정부에 분노합니다. 사람이 먼저고, 노동존중 사회로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촛불은 이제 꺼졌습니다. 반드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100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남편을 보냅니다. 99일 간 투쟁을 하면서 한 번도 제 남편에게 좋은 곳으로 가라고 말을 못했습니다. 아직도 보내줄 수 없었고 보내기 싫었습니다. 그랬기에 어젯밤에는 남편을 보내는 오늘이 올까봐 잠들기 싫었습니다. 제 남편이 차가운 길거리 한복판에 누워 있었지만 제 옆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보낼 수 없었는데 이젠 보내줘야 합니다. 너무나도 사랑했고 우리 가족에게 존재만으로 빛이 났던 제 남편을. 저 하늘의 별이 되어 더 밝게 빛이 날 수 있도록, 가는 길 외롭지 않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투쟁으로 얻은, 더 강한 엄마가 되어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남편의 죽음을 함께 아파해주시고 기사 써주신 기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겨울은 봄을 데리고 왔고 제 마음에도 이제 봄이 왔습니다. 남편의 유서 마지막 내용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도 행복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어 시민대책위원회는 문씨 장례 일정을 발표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한국마사회 적폐권력 청산 문중원 열사 노동사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날과 8일 오후 6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추모제를 치르고, 발인은 9일 오전 9시에 진행된다. 장지는 경남 양산시 솥발산 공원묘원이다.

"싸움은 계속될 것"
 
 7일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옆 시민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7일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옆 시민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최준식 시민대책위원회 공공대표(공공운수노조 위원장)는 "문중원 기수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면 말을 타지 못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 그리고 마사대부 과정에서의 비리 때문에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비록 한계가 있는 안이지만, 시민대책위원회는 100일 전에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이 합의안을 수용했다"라고 말했다.

합의서에 따르면, 마사회는 사망사고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 사업을 추진한다. 마사회는 또한 문씨의 사망사고 책임자가 밝혀질 경우, 형사 책임과 별도로 마사회 인사위원회에 면직 등 중징계를 부의하기로 했다. 합의서에는 이밖에 경쟁성 완화, 차별금지와 같은 제도개선과 유족 위로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최준식 공동대표는 "문중원 기수 장례를 치른 후 시민대책위원회는 '마사회 적폐권력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로 전환하기로 했다"면서 "한국마사회의 불법 부패구조를 바꾸고 제대로 된 공공기관으로 만들기 위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