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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 수업이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지. 오늘 네가 다시 학생부에 불려 갔어. 수업시간 잠을 잤던 모양이야. 아니 점심시간 이후 잠이 들었을 테고 넌 수업 시작하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 그날 날씨는 마치 잔털을 날리며 날아오는 벌레 같았어. 수많은 털 중 하나가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고 다른 증상을 몰고 와 못 견디게 하는 고약한 범람이었어. 이미 오전부터 많은 아이가 교무실에 줄줄이 몰려왔단다. 모두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어. 그 말이 그날의 상황을 다 말해 주는 듯했지. 하루가 빨리 지나길 바라던 중이었어. 누군가의 정신 상태를 말하기에는 우리도 사실 제정신이 아니었고. 무사히 넘어가기만 해도 좋은 날이라는 말을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얘기하던 중이었어.

너의 눈웃음이 좋았단다. 평소에는 날카로운 눈빛이 어색하게 웃는 웃음 속에서 인상을 바꾸곤 했어. 눈자위가 부드러워지며 분위기를 바꿔 놓는 웃음이었어. 마치 학습된 차가움 이면의 너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약지 않은 푸석한 미소가 마주 앉은 사람의 경직된 마음까지도 풀어놓도록 만들었지. 그 미소 때문에 너의 지금이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며칠 전 자른 짧은 머리 때문에 너는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않았지. 그 머리를 네가 원한 거라면 너는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겠지. 너는 어색했겠지만, 그 머리는 너하고 썩 잘 어울렸어.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단다. 너는 계속 고개를 안 들었어. 그래서 한발 더 나아갔지. 어색하지 않다고, 잘 어울린다고. 정말 그랬단다. 어색하기는커녕 너의 부드러운 눈자위, 서먹한 웃음과 어울려 밝게 보이게 만들었어. 계속 예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지. 한사코 숙이고 있던 너의 고개가 드디어 들렸단다.

학기 초 다른 선생님들은 너와의 상담을 염려했단다. 너에게 마음을 푸는 나의 모습이 보였던 것 같아. 들려오는 소문으로 강하게 할 필요도 없지만, 너의 맑은 모습에 마음을 풀어놓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어. 마음 단단히 잡고 잘 준비하라고. 너의 강제전학은 모든 담임에게 불편한 사항이었어. 물론 나도 그랬어. 더군다나 그것이 폭력 때문이라는 말과 재판까지 이어졌다는 말은 사실 충격이었어. 네가 먼 이곳으로 온 사연은 충격이었지만, 마음이 아팠어. 이렇게 먼 곳까지 흘러올 수밖에 없는 너의 처지가, 어머니의 상황이 딱했단다. 엄마와 헤어지게 되었다는 말이 마음을 무겁게 했어. 그럴 수도 없지만 너를 어떻게든 돌보고 싶은 마음이었어. 너의 아빠를 믿지 못하는 나의 마음이 주제넘다는 생각도 했었지.

너와의 첫만남

너와 나는 같은 해에 이 학교에 왔어. 처음에 중학생들이 서열을 세운다는 것을 알고 나는 남자들의 그 세계에 기겁했단다. 우리의 가부장제 문화가, 그 이전에 폭력과 억압의 역사가 또는 인류의 역사가 너희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되는 듯한 느낌이었어. 그래도 1학년의 위계쯤이야, 하고 생각했어.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1학년이 무엇을 어떻게 서열 지을까 싶기도 했거든. 그런데 1학년이 입학하자마자 선배들을 만날 때 교사들에게보다 더 깍듯하게 정확한 동작으로 인사하고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어. 그런 아이들이 널 궁금해하고 있었어. 어디서 들었는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더라고. 전학생이 오는지, 어느 학교에서 온다는 애인지, 그 아이가 맞는지, 몇 반으로 배정되는지 등 그 무성했던 궁금증을 너는 한 달 만에 모두 정리를 했어. 그리고 아이들에게 점잖은 말로 대접을 받고 있더라고.

1학년 때 너의 담임은 과학 선생님이셨지. 같은 성별에 통 크게 배려하고 너의 상황을 잘 통제하시는 것 같아 담임과의 궁합이 좋다고 모두 한시름 내려놓았어. 본인이 후하게 칭찬받는 것 같았는지 과학 선생님은 너를 칭찬하셨어. 한마디 하면 알아듣고 그대로 따라 준다고. 그렇지만 아이들과 어울리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염려는 늘 하고 계신다고 했어. 사실 너의 첫인상을 후하게 점수를 줘서 그렇지 너희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교 1학년일 뿐이었거든. 또래의 아이들이 하루하루 벌이는 일 때문에 모두 바짝 긴장하고 있던 시점이었지. 살얼음을 탄다고 표현했었어. 어떤 선생님은 벌써 세 번째 상담을 진행했다, 누구는 기본 한 해에 4번은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지. 그렇게 네가 전학 온 해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2학년 때 너와 만났어.

학급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하니? 2학년 올라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지. 무사히 넘어가긴 했지만, 그 일이 교사들에게는 쉽게 넘길 문제는 아니었단다. 너희는 게임을 가지고 내기를 했었지. 돈도 오갔고. 그 돈 문제가 길게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한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와 학교폭력을 이야기했어. 어느 날부터인가 당신 아들이 큰돈을 요구하고 가지고 나간다고. 사용할 만큼 충분히 주는데도 다음 날이면 또 달라고 해서 집안의 큰 분란이 있었다고 했어. 결국에 그 아이가 피시방에서의 일을 다 얘기했다고 했지. 금액이 크기도 했고, 그 어머니는 학교폭력이라고 규정했단다. 네가 같이 피시방에 간 것도 사실이고 아이들이 네 이름을 거론하며 돈을 거듭 요구한 것도 사실이고, 너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어.

다른 아이들의 증언을 얻은 후 네가 그 일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길게 설명했어. 그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정작 당사자인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다행히 문제가 잘 해결되어 안심했단다. 너의 어머니와는 통화를 여러 번 했었거든. 학교로 찾아오셔서 만나 뵙기도 했단다. 너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지. 아무튼, 너의 그런 모습 때문에 그 이후로 일이 벌어질 때마다 교사들은 신중하게 접근하게 되었어. 섣부르게 누구라고 예단하지도 않고 피해 학생의 부모님이라고 찾아와도 확실하게 파악될 때까지는 학생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했어. 나름 수사본부를 차렸었지. 우리끼리는 학교 파견 경찰 팀이라고도 했으니까. 그렇게 너의 시간은 참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었어. 2학년 가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어린 학생의 낙담한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패싸움 소식을 들은 건 학교를 나서기 직전이었어. 이미 퇴근한 교사들도 여럿이었고. '오늘도 무사히' 구호대로 그날의 하루가 끝나 다행이라고 말할 때였지. 한주먹 하는 너의 친구들이, 채팅방에서 다른 학교 아이들과 너로 인한 말싸움 끝에 한 판 뜨자고 했다는 얘기였어. 너를 향한 비난과 조롱을 참을 수가 없어서 이미 며칠 전 날짜를 잡았던 거고. 실제 패싸움이 약속된 날까지 교사들 모두 누구도 모르고 있었던 거지. 깜찍한 녀석들이라니. 어떻게 그걸 그렇게 잘 감췄는지. 그런데 한 녀석이 도저히 말을 안 할 수 없을 만큼 불안했던 것 같아. 자신도 가야 하는데, 정말 가도 되는 건지 걱정하던 끝에 전화로 알려온 거였어. 내겐 아니었고 학생부 선생님을 통해 연락을 받았단다. 자기 딴엔 고민을 한다고 너무 늦게 연락한 것이 문제였어. 학년 담임들이 모두 모여 싸움이 일어나는 집결지로 달려간 것은 사고가 이미 벌어지고 난 뒤였어. 우리가 할 일은 너희들의 보호자 자격으로 경찰서에 같이 가는 것뿐이었지.

그날 상대 학교의 학생이 크게 다쳤어. 광대뼈가 부서졌지. 수술을 잘해도 신경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나도 앞이 캄캄했단다. 왜 그랬냐고 물을 수가 없었어. 이미 벌어진 일인걸. 네가 뒤늦게 합류한 것도 알았고. 아이들을 지키려고 갔다는 얘기에 기가 막혔단다. 경찰이 모인 학생들을 불러 얘기를 끝내고 교사들에게 간단히 상황을 얘기했어. 싸움을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싸움을 주도한 것이 너였다고. 다른 아이들이 끼어들지 않은 것은 처음 싸운 아이가 너무 크게 다쳤기 때문이라고. 피해 학생의 부모님을 불렀고 너의 부모님께도 연락했다고 전달받았어. 너의 어머니는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다친 학생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지.

어머니는 다친 학생의 보모에게 무릎을 꿇었어. 잘못했다고 빌었단다. 본인이 자식을 잘 못 가르쳤다고 했어. 이미 경찰서에서도 어머니는 여러 번 빌었지. 어머니의 죄송 소리에 너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갔고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도 너도 딱하다 생각했어. 어찌해야 하나. 네가 마음을 잡고 잘 지내는 것 같았다고 했어. 너와 떨어져 지내며 곁에서 돌보지 못하는 마음을 어머니는 힘들어하셨지. 그날, 너의 아버지는 오시지 않았어. 아버지의 부재가 너와 어머니의 상황을 잘 말해 주었지. 네 편이 절실했는데. 어둠이 짙은 경찰서 밖의 풍경이, 그 어둠이 너의 눈동자에 가득 들어있었어. 어린 학생의 낙담하는 얼굴이, 표정이 오래 잊히지 않았어.

생각만큼 수습이 빨리 진행되지 않았지. 더디 진행되는 것이 너에게 더 불리해지는 상황이었어. 어머니는 계속 무릎을 꿇었고 합의금은 계속 늘어났어. 다행히 다친 학생의 수술 후유증은 없다고 했지. 나서서 일을 벌인 아이들, 너의 친구 부모님들의 태도가 너와 어머니를 더 힘들게 했을 거야. 처음엔 같이 합의금을 마련하자고 했었지. 그래야 한다고 당연하게 말했었어. 정말 고맙게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금액이 점점 커지니 슬슬 뒤로 물러섰지. 폭력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였어. 심정으로는 미안하고 도덕적으로 피해자에게 사죄하지만, 금전적 보상을 할 수 없다고 했어. 난 지금도 이 말이 싫단다. 심정으로 미안하고 도덕적으로 사죄하는데 왜 보상은 안 하는 건지. 그들의 미안한 심정이, 도덕적 사과가 진심이긴 한 건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사죄와 오락가락하는 이중의 잣대가 다친 학생의 부모를 더 화나게 했을 거야. 그래서 너와 너의 어머니는 더 괴로웠고.

그날 이후 너는 일상을, 잡념을 몰고 온 바람에 내어 주었어. 모든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지. 지지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었어. 방정식은, 탐구는, 역사는, 문학은 당장의 너를 위로할 수 없었을 거야. 그게 내일의 합의를 이끌 수는 없었으니까. 너는 매일 엎드려 있었지. 가끔 수업 활동에 참여하도록 이끌면 마지못해 끌려왔어. 너의 착한 심성이 의리상, 인정상 따라가도록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그런데 그날 날아온 벌레의 잔털이 너를 간지럽혔을 거야. 참을 수 없었겠지. 참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고. 괴롭히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겠지. 그만하자고 달래보려 했을 거야. 그런데 조금씩 건드리는 장난이 넌 더 싫었겠지. 그때 마침 수업을 담당한 선생님이 너를 건드린 거지. 선생님께 한 말이 아니었다고 했었어야 해. 빨리 끝내야 하는 다른 일 때문에 넌 이 일에도 조급했던 것 같아. 네가 했다고 얼른 말해버렸지.

두 주 후면 소년원에 가야 했지. 머리도 빡빡 밀어야 한다고 들었어. 보호관찰관이 전화해서 이야기해주었단다. 폭력적일 수도 있고, 질서와 위계가 엄격하다고 했어. 흔들리는 너의 눈빛이 불안했어. 그곳에 보내도 되는지. 감당할 수는 있는 곳인지. 그 이후에는, 다가올 파장까지 생각하느라 마음이 복잡했어. 흔들리는 나의 눈빛을 네가 보았는지, 사고 안 치고 잘 지내다 오겠다고 말했어. 한 번 가겠다고 했더니 안 오셔도 된다고도 했고.

수업시간의 일만 없었어도 조금씩 마음을 풀어놓을 곳이 있었는데.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너도 학급 단체 춤을 준비했었지. 물론 체육대회 행사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함께 계주 연습도 하고 단체줄넘기 연습하는 곳에서 같이 있기도 했고. 잠깐씩이라도 네게는 웃음이 필요했어. 마음에서 다른 것들을 털어버릴 수 있는 움직임도. 체육 시간을 이용해서 학급 대항 축구대회를 했을 때 날개를 단 듯 비상하는 모습을 보았었어. 그렇게 천천히 뛰다 날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징계라는 이름으로 너는 교실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바로 그곳으로 가게 되었지. 운동장에 미리 걸어놓은 만국기 깃발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느낌이었어.

너의 봄은 누구보다 더 선명하고 예쁘길

한 달이 지나고 너는 학교로 돌아왔어. 새벽에 내린 서리가 살얼음을 띄다 햇빛에 부서지는 때였어. 운동장을 둘러싼 나무들이 마지막 잎을 떨구고 있었지. 교무실에서 일을 도와달라고 했고, 너는 옆에서 부르고 나는 입력하고 했어. 말을 할 수가 없었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도 몰랐고. 그렇게 일이 끝나고 오래 너의 손을 붙잡았어. 짧은 머리에 깡마른 얼굴이 부드러운 눈자위를 날카롭게 만들었어. 너의 마음도 벨까 걱정스러울 만큼 날이 선 단단한 모습이었어. 어머니 안부를 물었지. 잘 계신다고 말했어. 엄마가 당하고 사는 것이 불쌍했다고 했어. 그게 싫었는데, 바보라서 당하고 산다고 책임을 지웠다고 했지. 그렇게 엄마가 너에게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고. 이제는 안 그러겠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했어.

이듬해 넌 대안학교로 옮겨갔어. 기술을 배워 빨리 직업을 갖겠다고 했지. 너의 겨울은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를 동반하고 너를 할퀴며 통과하고 있었어. 얇은 패딩을 걸친 너의 어깨가 위태로워 보였어. 한 사람의 인생에 고통의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네게는 이제 끝났다고 말해 주고 싶었어.

그 모진 시간을 너는 잘 견뎌냈겠지? 너의 봄은 누구보다 더 선명하고 예쁘길 오래 빌고 있어.

태그:#학교폭력, #소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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