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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시작도, 공무원 시험도, 문화센터 강좌도 모든 것들이 짧게는 두 주, 길게는 두 달 정도 밀렸다. 방송에서도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를 외친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우리 집은 두 주 전부터 거의 자가 격리 상태로 지내고 있다.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직장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기꺼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한다.

덕분에 가족 모두가 삼식이다. 아침 챙기고 잠깐 지나면 점심, 시장에 들를 겸 잠깐 바람 쐬고 오면 저녁이다. 아이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있다가 때가 되면 나온다. 때는 모두가 다르다. 각자의 배꼽시계가 지시하는 때다.

삼식이들을 위해 찌개나 국은 번갈아 하루에 한 번, 반찬은 한 끼에 하나씩만 준비한다. 하루에 세 가지 반찬, 사실은 그것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슬슬 요령이 생겨 만인의 간편식 라면으로, 어느 하루 점심은 각자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하기도 한다.

비빔국수나 칼국수 등 분식을 왕창 준비해서 각 방으로 배달해 한 끼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음식을 하면 습관처럼 맛을 묻는다. 맛없게 먹으면 해 주고도 공이 없으니 그야말로 매일 매 끼니를 나만의 요리 대전을 치르는 중이다.

시장에 나갈 때마다 반찬거리로 이것저것 사 온다. 이전 같았으면 그렇게 사 온 것들도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썩히기도 하고 싹이 나서 버려지기도 했겠지만, 1식 1 찬이라도 매 끼니를 해야 하니 버려지는 재료는 없다. 냉장고나 식재료 창고 구석에 숨어있던 것도 다 찾아내서 조리하니 본의 아니게 냉장고 파먹기를 실천한다.

감자조림, 두부조림 등의 조림, 달걀찜이나 달걀 프라이, 버섯 볶음과 어묵볶음, 시금치, 콩나물 무침이나 햄이나 소시지 부침 등을 번갈아 한다. 여기에 김치와 냉장고에 있는 젓갈을 찬으로 내놓으면 그래도 1식 3-4찬은 된다. 가족들 모두가 밑반찬을 해놓고 여러 번 상에 올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뻔한 재료로 매번 비슷한 조림, 볶음, 무침을 하고 있다. 이러다가 집밥에 물리면 그때는 어쩌나 걱정이 된다.

자가 격리 통보를 받은 사람들은 미리 준비도 없이 갑자기 격리돼서 지자체에서 보내주는 인스턴트로 지낸다고 한다. 그들에 비하면 드나듦이 자유로우니 불평을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격리의 경중이 문제가 아니라 온 사회가 초긴장상태로 지내야 하는,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이 상태가 언제까지 갈까 걱정은 된다.

매일 아침 시사 방송을 통해서 진단하고 검사하고 전화하고 치료하느라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직도 진단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밀려 있고, 그 숫자도 워낙 크니, 나의 불평은 어린아이의 밥투정과 같은 작은 불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2월과 3월을 어떻게 보냈나 생각해 보았다. 무언가 새로 시작해야 할 것 같아 평생교육도, 도서관의 문화 강좌도 열심히 들었고 다음엔 무엇을 배워야 할까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그렇게 차근차근 묶여 있다는 생각 없이 지나간 1년 365일이었는데, 올해는 2월과 3월, 그 모든 하루하루가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씩 열흘씩 혹은 한 달씩 모든 일정이 뒤로 밀리는 것을 보며 새삼스럽게 그냥 하루가 아니고 소중한 하루라는 것을 깨닫는다.

태그:#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일상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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