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 07:14최종 업데이트 20.03.1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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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스무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동갑내기 스무살이 궁금했다. 그래서 2000~2002년에 태어난 1000명에게 물어봤다. 무슨 생각들 하고 있냐고. 그랬더니 더 깊이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러 배경을 가진 2000년생 14명을 직접 만나 차분히 대화를 나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고. 한국사회가 지난 20년 동안 키워낸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우리 사회의 20년 후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스무살은 곧 세상을 바꿔나가기 시작할 테니까. [편집자말]
"학교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한번도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없어요. 너무 싸우니까." - 대학생 여성 B씨

"싸울까봐 현실 정치 얘긴 잘 안하는데, 페미니즘 얘기는 정치보다 더 꺼리는 주제에요. 정말 대립이 첨예한 주제죠." - 대학생 남성 I씨.


대학에서 페미니즘 혹은 성평등 토론이 사라졌다. 남녀 사이 의견차가 너무 커서 불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주제로 꺼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직접 만난 스무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상황을 증언했다. 오마이뉴스는 창간20주년을 맞아 전국 만 18~20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스무살 머릿속'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더 나아가 지난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여러 지역 출신 대학생과 직장인 등 2000년생 14명을 직접 만났다. 이 여론조사와 대면 심층 인터뷰를 통해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현재 스무살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다음은 페미니즘과 관련한 남자 대학생들의 목소리.

"페미니스트들은 왜 그렇게 생각할까 궁금하기는 하다. 왜 여성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지. 사람은 다 똑같지 않은가." - G씨

"적어도 지금의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너무나도 배부른 소리인 것 같다. 이제는 차별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다. 유리천장이 남성에게 있다." - E씨

G씨의 경우엔 페미니즘을 '여성 우월주의'로 간주했고, E씨는 지금은 오히려 남자가 차별받는 세상이라는 생각이다.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전일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기준으로, 2017년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34.6%다. 남성이 100을 받는다면 여성은 65.4를 받는다는 통계는 한국의 남녀차별 사례를 이야기할 때 널리 인용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 세대에는 그렇지 않을 거란 게 '남성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봤는데, 그 때 태어나신 분들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 회사도 잘리고 하면서 겪어온 고충은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2000년생들은 82년생 김지영처럼 되진 않을 거라고 봐요.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차별의 선례가 있다고 해서 미리 차별을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대학생 남성 H씨

E, G, H씨는 과거와 현재의 여성차별은 인정하지만, 2000년생에게는 그런 여성차별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은 매우 적은 반면, 같은 기간 여자는 사회로 나아갈 경쟁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남자가 불리하다는 생각도 공통적이었다.

"군가산점은 철폐됐지만 '여자 가산점'은 존재한다"는 H씨는 로스쿨이나 의과대학, 약학대학 등이 남자는 입학할 수 없는 여자대학교에 개설돼 있는 것도 불공정이라 생각한다. 유망한 직종으로 가는 문이 여자에게 더 넓게 열려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남자 스무살은 여성차별 시정을 위한 제도와 정책들을 '남성차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2000년생이 왜 82년생 김지영 얘길 하나요?"
 

ⓒ 봉주영

 
전국 만 18~20세 10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여성만 챙긴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십니까?"라 질문에 스무살 남녀의 응답은 완전히 갈렸다.

남성은 65.6%가 동의("매우 동의" 20.9% + "다소 동의" 44.7%)했고 34.4%가 동의하지 않았다("매우 비동의" 5.5% + "다소 비동의" 28.9%). 반대로 여성은 86.1%가 동의하지 않았고("매우 비동의" 33.4% + "다소 비동의" 52.7%), 동의는 13.9%("매우 동의" 2.4% + "다소 동의" 11.5%)에 불과했다.

더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사회에서 남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두가지 질문을 각각 던졌더니, 남녀의 반응이 '데칼코마니'처럼 대립구도로 나타났다.

우선, '여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는 명제에 대해 남성은 20.6%만 긍정했고, 대다수인 79.4%는 부정했다("매우 그렇다" 1.8% - "그런 편이다" 18.7% - "별로 그렇지 않다" 47.4% - "전혀 그렇지 않다" 32.0%). 하지만 여성은 78.0%가 긍정했고 22.0%만 부정했다("매우 그렇다" 33.2% - "그런 편이다" 44.8% - "별로 그렇지 않다" 19.5% - "전혀 그렇지 않다" 2.5%).

반대로 '남자가 더 차별받고 있다'는 명제는 여성의 절대 다수인 87.2%가 부정 쪽으로 몰렸다("전혀 그렇지 않다" 28.9% - "별로 그렇지 않다" 58.3% - "그런 편이다" 12.6% - "매우 그렇다" 0.2%). 하지만 남성은 긍정 47.4% - 부정 52.6%로 갈렸다("매우 그렇다" 11.3% - "그런 편이다" 36.1% - "별로 그렇지 않다" 43.4% - "전혀 그렇지 않다" 9.2%). 남자들도 '남성 차별'엔 갸우뚱하는 이들이 꽤 있는 것이다.
 

ⓒ 봉주영

 
"늘 느끼는 여성차별" 스무살 여성들에게 차별은 현재진행형

스무살 남성들의 생각과 달리 스무살 여성에게 여성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녀차별을 겪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만 18~20세 여성의 절대다수인 79.4%가 "있다"고 답했다. 대다수가 학생인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직접 겪었다는 것이다.

대학생 B씨는 "생활 속에서 여성차별을 느끼면서 산다"고 말했다.

"여성임금이 적고 여성 고위직이 적다는 통계도 분명히 인정해야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느끼는 차별이 큽니다. 여성을 성적대상으로만 보는 남자들이 있다는 게 시시때때로 느껴지고요, 여성이라면 약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고, 실제로 내 주변에도 있구나 하고 느껴요."

대학생 F씨는 학내에서 페미니즘 논쟁이 사라진 데 대해 "논쟁이 원천봉쇄 당한 느낌"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갈등 요소 그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다, SNS에 아주 약간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인격권을 침해하는 여성혐오성 댓글이 달릴까봐 주저된다"고 말했다.

스무살 여성 대부분은 '여성차별은 있고 남성차별은 없다'는 생각이다. 스무살 남성 절대 다수는 '여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는 명제를 부정하며, 더 나아가 절반 정도는 '남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무살 남성 일부는 여성차별을 여러 세대에 걸친 사회적 문제로 보기보다는, 취업경쟁과 같은 당면 현실에서 남성이 불리한 점에 집중한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스무살 남녀 간의 투쟁 구도가 격화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가부장제 탈피 향해 한걸음 - 자녀에게 누구의 성을?]
여 : 부모 성 모두 33.6% 〉 아버지 성 15.4% 〉 어머니 성 12.6%
남 : 아버지 성 40.2% 〉 부모 성 모두 19.6% 〉 어머니 성 5.9%

 

ⓒ 봉주영


하지만 스무살 남녀 모두 성차별의 주요한 뿌리 중 하나인 전통적 가부장제에서는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부장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름 물려주기'에 대한 스무살의 생각을 물었다. 지난 2008년 민법 개정에 의해 '부성주의'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해졌는데, 다만 부모의 혼인신고 때 향후 태어날 아기의 성은 어머니의 성을 따를 것이라고 미리 신고를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실효성 논란이 있는 상황이다.

현행 제도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자녀에게 아버지의 성 대신 어머니의 성을 붙여 이름을 지을 수 있게 한 제도에 대해선 스무살 남녀 절대다수가 공감을 표했다. 부성주의 탈피의 가능성을 연 이 제도에 대해 스무살 88.5%(남자 82.9%, 여자 94.5%)가 공감했다. 비공감은 11.5%(남자 17.1%, 여자 5.5%)에 불과했다. '어머니 성도 물려줄 수 있다'는 데에는 남녀 모두 공감도가 높은 것이다.

그래도 남녀 간 온도차는 존재했다. 한발 더 나아가서 앞으로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누구의 성을 물려주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결과는 "아버지의 성을 사용할 것" 28.3%,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모두 사용하고 싶다" 26.3%, "어머니의 성을 사용할 것" 9.1% 순이었고, "생각해본 적 없다"가 36.3%였다.

성별로 살펴보면, 여자의 경우엔 '부모 성 모두'가 33.6%로 가장 많았고, '아버지 성'(15.4%)과 '어머니 성'(12.6%) 양쪽이 비슷했다. 남자는 '아버지 성'이 40.2%로 가장 많았고, '어머니 아버지 성 모두' 19.6%, '어머니 성' 5.9% 순이었다.

오마이뉴스 창간 20주년 특집 '스무살 머릿속'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월 7~11일 전국 만 18~20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패널조사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p이며, 2020년 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으로 성별/연령대별/지역별 인구비례 가중치를 적용했다. ★

 
덧붙이는 글 기사에 등장하는 심층 인터뷰 스무살 프로필

B : 여성. 서울 내 중상위권 대학 1학년. 서울 강남 8학군 일반고 졸업. "중산층이다"
E : 남성. SKY 대학 1학년. 서울 지역단위 자사고 졸업. "우리 집은 서민"
F : 여성. SKY 대학 1학년. 서울 강남 8학군 일반고 졸업.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 가정.
G : 남성. 지방 국립대 1학년. 대전 일반고 졸업. "중산층이다"
H : 남성. 서울 내 국립대학 1학년. 대전 지역단위 자사고 졸업. 차상위 계층 가정
I : 남성. SKY 대학 1학년. 제주도 비평준화 일반고 졸업. "집안이 부유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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