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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글 '카페 간판 밑에 쓰여 있는 말, 의미심장하네'에서 이어집니다.
 
바크만 산장에서 찍은 일출. 시계가 아침 5시 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크만 산장에서 찍은 일출. 시계가 아침 5시 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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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끝내고 산장으로 돌아갔다. 식당 겸 휴게실에서는 이야기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대화를 주도한 사람은 한 달 휴가를 내고 온 40대 중반의 네덜란드 여자. 오후 내내 전자 책만 보고 있어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호주 출신 50대 부부도 살며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남편은 물리학 박사로 연구소에 근무하고, 아내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일한다고 했다. 둘 다 말과 행동을 조심해서 하는 편이었다. 남편은 나랑 동갑이라 현장에서 친구로 삼았다.
 
바크만 산장. 올레길 여행자들이 쉬고 있다.
 바크만 산장. 올레길 여행자들이 쉬고 있다.
ⓒ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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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에는 이바구꽃이 밤새 피어오르고

다음은 사촌 사이인 10대 말 남자아이 둘. 한 명은 오타고대학 학생 또 다른 한 명은 테 아라오아(Te Araroa, 뉴질랜드 북쪽 끝 케이프 레잉하부터 남쪽 끝 블러프까지 총 3,000km를 걷는 도보 여행 코스)를 중간에 그만둬 위로 삼아 여행에 나섰다는 청년이었다. 그 밖에도 중국에서 온 여자, 미국 시카고에서 온 여자, 스웨덴에서 온 남자 등 열 명 정도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이런저런 이바구를 풀었다.

네덜란드 여자는 호쾌했다. 한 달 동안 뉴질랜드에 머물면서 위대한 올레길(Great Walks) 세 군데를 돌 예정이라고 말했다. 뉴질랜드를 찾아낸 첫 유럽인으로 기록되고 있는 아벌 타스만은 네덜란드 출신. 이 사실을 말하면서 뉴질랜드가 어쩌면 네덜란드 소유지(?)가 됐을지도 몰랐을 거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It is not my business) 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호주 부부는 약간은 웃음을 띠며 호주에 거세게 불어 닥친 산불을 피해 왔다고 했다. 이 부부는 그 뒤 3박 4일을 나와 같은 코스를 걸었고 산장도 공유했다. 참으로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 부부의 전형 같아 보였다. 사람 향기 물씬 나는 이바구꽃은 밤새 피어올랐다. 앵커리지만에는 우리들의 얘기가 물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훗날 우리는 모두 그날의 이바구를 떠올리며 추억을 되새길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수영장' 입구,
 "클레오파트라의 수영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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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 수영장'에서 얼굴에 물만 축여

다음 날 일정은 바크만(Bark Bay)까지. 만조(High tide) 때 걸으면 11.5km 4시간이 되고, 썰물(Low tide) 때 걸으면 8.5km 3시간이면 된다. 바닷길을 이용하면 한 시간이 줄어든다. 그날 아침은 만조 때라 산길을 타기로 했다.

아벌 타스만 해안 트랙은 말 그대로 '해안'(coast)을 따라 걷는 올레길이다. 30분 정도 걸었다 싶으면 만(bay)이 나온다. 어림잡아 열 곳이 넘는다. 총 길이 60km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 이어진다. 뉴질랜드의 위대한 올레길 열 곳 가운데 가장 쉬운 길로 꼽힌다. 어린아이나 어르신들도 즐겨 찾는 대중적인 올레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날 일정 중 내 눈을 끈 곳은 '클레오파트라의 수영장'(Cleopatra's Pool). 지명을 보면 대충 무엇을 말하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앵커리지만을 떠난 지 한 시간 만에 이곳에 도착했다.

수영장이 있는 계곡물은 속이 환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맑고 눈부셨다. 서른 해 전 이집트 카이로에서 봤던 클레오파트라 호텔이 떠올랐다. 주머니가 가난한 배낭여행자는 돈이 없어 그 호텔에 들어가지 못하고 멀찍이서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만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와야 했다. 
 
오네타후티만 바닷가 길을 따라 한 젊은이가 걷고 있다.
 오네타후티만 바닷가 길을 따라 한 젊은이가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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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약 부부', 이번 올레길 여행 최고의 사진 모델

수영장에는 이미 카이사르 몇 명과 안토니우스 몇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도' 역사에서 기억조차 하지도 않았을 그 절세 미인을 향한 뭇 남자들의 헤엄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심약한 나는 그저 클레오파트라의 나신이 거쳐 갔을 물 몇 움큼을 얼굴에 바르는 것으로 만족했다.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를 생각하며 원래 길로 돌아섰다. 폴스강(Falls River)을 따라 흐르는 물 사이로 갑자기 카약 떼가 나타났다. 토렌트만(Torrent Bay)에서 거슬러 온 것이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 가운데 내게 최고의 사진 모델로 다가온 노부부(당연히 그럴 것이다) 카약인에게 물었다. 아벌 타스만 해안 트랙의 가장 멋진 기억으로 남게 해줄 수 있냐고.

그들은 흔쾌히 오케이 표시를 해주었다. 사진도, 사람도, 카약도 그리고 내 기쁨도 완벽했다. 토렌트만을 비롯해 앵커리지만, 바크만, 아와로와(Awaroa), 토타라누이(Totaranui)에는 오래전 사람이 산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관광객을 위한 초호화 숙소(lodge)도 있어 꼭 걷기 여행이 아니더라도 마라하우에서 수상택시를 타고 이곳에 와 하룻밤쯤 인생 최고의 여행을 해도 좋을 듯싶다. 

페린 몬크리프, '아벌 타스만 국립 공원의 개척자'

아벌 타스만 국립 공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얘기해야 할 것 같다. '한 사람의 힘'(The Power of One)이 후세 사람들에게 어떤 기쁨을 주었는지를 조금은 주의 깊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페린 몬크리프(Perrine Moncriff 1893~1979).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뉴질랜드 넬슨으로 이민을 왔다. 어렸을 때부터 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아벌 타스만 지역의 새와 식물에 푹 빠졌다. 그 '에덴동산'을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상태로 후손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 숭고한 뜻은 1942년에 이뤄졌다. 피터 프레이저 당시 총리는 38,000에이커를 국립 공원으로 만들었다. 그해 12월 19일 카이테리테리에서 성대한 개막식이 열렸다. 1642년 이곳을 처음 눈여겨 봤던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벌 타스만의 후손도 자리를 함께했다.

한때 적이었던 마오리와 네덜란드는 "우리의 우정은 영원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마침 아벌 타스만이 뉴질랜드에 온 지 300주년이 되는 해라 더 뜻이 깊었다. 페린 몬크리프는 개발업자들이 이 지역의 나무를 다 베어 목재용으로 쓰려고 하자 이렇게 일갈했다.

"나무를 다 베면 사람이 쉴 그늘도 없어진다.(When the tree falls, there is no shade. 글의 흐름에 맞게 재구성)

그 뒤 페린 몬크리프는 '아벌 타스만 국립 공원의 개척자'(The Founder of Abel Tasman National Park)로 자리매김했다.(아벌 타스만 해안 트랙은 1950년대 중반에 만들어짐.)
 
토렌트만에서 만난 한국 여인. 우리 둘은 한국말로 얘기를 나눴다.
 토렌트만에서 만난 한국 여인. 우리 둘은 한국말로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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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렌트만에서 40대 초반의 한국 부부 만나

토렌트만에서 40대 초반의 한국 부부를 만났다. 오클랜드 호익에서 휴가를 맞아 온 사람들이었다,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뉴질랜드 남섬 깊은 곳에서 한국말을 쓸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은 잘 몰랐다. 올레길에서 한국 사람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바크만 산장에서 여독을 풀었다.

셋째 날은 아와로아 산장까지. 13.5km를 4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이날 나는 이번 올레길의 진수를 맛봤다. 바크만에서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면 통아 채석장(Tonga Quarry)이 나온다. 이곳에서 캔 돌들은 웰링턴과 넬슨의 초창기 건물의 골격을 만들었다. 그때의 영화를 증명하듯 바닷가 앞에는 역사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여길 지나면 곧바로 오네타후티만(Onetahuti Bay)이 나온다. 아벌 타스만 해안 트랙의 '해안' 길 중 가장 멋진 길이다. 모래밭 곳곳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침엽수가 퍼져 자라고 있었다. 그 부분의 모래만 유독 파란색을 띠었다. 나무의 액이 흘러내려 그렇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날 저녁 산장에 모인 올레길 친구들 모두 이 얘기를 하기도 했다.  
둘이 먹다가 스무 사람이 죽어도 모를 피자 맛
 
올레길을 걷다가 피자집을 만났다.
 올레길을 걷다가 피자집을 만났다.
ⓒ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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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신기하고 오묘해 배낭을 풀고 나무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시끄러운 새 소리가 귀를 때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10cm는 넘어 보이는 부리를 무기로 한 검은 새들이었다. 검은머리물떼새(oystercatcher).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받고 있는 새 종류였다.

검은머리물떼새들이 내 뒤를 좇아오며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는 통에 자연 관찰을 그만둬야 했다. 인근에 있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괴성을 질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새도 새였지만 나무 밑에 수놓은 파란색 자연 물감은 이번 올레길 여행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숙소인 아와로아 산장을 한두 시간 정도 앞두고 갈림길에 섰다. 표지판에는 '웰컴 투 아와로아 로지 앤드 카페 10분'(Welcome to Awaroa Lodge and Café 10 min)이라고 쓰여 있었다. '웰컴'도, '로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카페', 그것도 10분만 걸으면 된다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사실 10분이 아니라 20분 넘게 걸린다).

올레길 친구들이 거기에 다 있었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거나 달곰한 커피를 즐기며 산길 걷기에 지친 몸을 달래는 중이었다. 허기에 젖은 나는 하와이안 피자($25, 엄청나게 컸다)와 사과 주스 두 개를 시켰다. 그 맛은 두 사람이 먹다가 스무 사람이 죽어도 모를, 지상 최고의 맛이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여기에서 공개적으로 널리 알린다. 아와로아 피자가게에서 피자 한 판을 먹었다. 배가 부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Awaroa Café & Pizzeria
03)528 8758
11 Awaroa Bay

맛은 내가 책임진다.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로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이다.

-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아벌 타스만 해안 트랙 지도
 아벌 타스만 해안 트랙 지도
ⓒ NZ DOC(보존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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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발행되는 뉴질랜드타임즈에도 실립니다,


태그:#뉴질랜드 올레길, #NZ GREAT WALKS, #아벌 타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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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뉴질랜드로 이민 와 책 읽고, 글 쓰고, 걷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책방을 운영했고, 지금은 한솔문화원 원장과 프리랜서 작가로 있습니다. 남은 삶도 읽고 쓰고 걷고, 이렇게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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