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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7일 오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설치된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 천막 농성장 철거를 두고 종로구청과 시민대책위가 대치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오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설치된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 천막 농성장 철거를 두고 종로구청과 시민대책위가 대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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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현장에 머릿수 보태는 일 정도밖에 하지 못하고 있지만, 함께 하다 보면 언젠가 해결이 될 것이라 기대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정부가 매년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나는 이 사회의 잔인함과 거리에 내몰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듣고 방치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사망사고 소식과 죽지 않고 일하게 해달라는 노동자의 외침,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운구차에 안치한 채 거리에 내몰린 유가족의 호소를 외면하는 정부의 모습을 지켜보면, 가지고 있었던 실날 같은 희망도 어느덧 사라져버린다.

문중원 경마기수가 한국마사회의 부정 경마 지시와 불공정 채용 문제 등 비리를 고발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어느덧 100일이 다 되어간다. 고인의 죽음은 2005년 부산경남경마장 개장 이후 한국마사회에서 발생한 일곱 번째 죽음이다. 지금도 거리에서 고인의 유가족은 고인의 시신을 운구차에 안치한 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지난 2019년 5월 기자회견을 통해 공공성 강화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마사회는 공공기관으로서 공공성을 우선해야 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마사회는 공공성을 외면한 사업을 시행했고, 불평등한 고용구조를 유지했으며, 승부조작 등 중대한 불법행위를 저질러왔다. 그런데도 한국마사회는 내·외부로부터 어떤 견제도 받지 않고, 심지어 지속적인 노동자들의 죽음에도 반성 없이 둔감한 모습으로 대응했다. 이처럼 한국마사회는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기업인 것이다.

한국마사회에서 발생한 고인의 죽음은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기업의 살인'이자 '인재'이다. 즉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사안이다. 하지만 정부는 사안의 해결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오히려 정부(형식적으로 서울 종로구청이 행정대집행)는 지난 2월 27일 경찰과 용역을 동원하여 고인의 추모공간 철거를 강행했다. 유가족의 호소에 대해 지금까지 한발도 나서지 않았던 정부의 첫 조치가 추모공간의 철거였다는 것에 유가족들과 우리는 충격과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철거된 추모공간은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공간이자 제2의, 제3의 문중원이 생기지 않도록 기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바꾸자는 다짐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공간을 강제적으로 철거한 것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자 기수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을 외면한 것이다.

정부가 이 사건을 비롯한 노동문제를 다루는 태도를 지켜보면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죽음과 차별의 문제가 제대로 개선될 수 있을지, 책임 있는 해결을 정부에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거리에 내몰려 있던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으로 28년 만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누더기가 되어버렸으며, 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겠다던 정부의 공약은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무력화하는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스스로 포기했다.

집권 초기 노동존중사회를 약속했던 정부는 이제 사회적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만약 조금이라도 약속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제라도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그 방향은 친기업적 행보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

오는 3월 7일은 고인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이 날 100일 공동투쟁으로 청와대를 향한 "죽음을 멈추는 1000대 희망차량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노동존중사회를 약속한 정부가 '노동포기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면, 100일이 오기 전에 신속히 한국마사회의 반인권, 반노동적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상처받은 유가족 앞에 사과하고,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유가족과 이 싸움에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호소에 이제는 답해야 한다.

태그:#문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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