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는 '원더우먼'과 '조커'의 뒤를 잇는 DC의 후속작이다. 영화는 연인이었던 조커와 헤어지고 혼자가 된 할리퀸이 고담의 다른 여성들과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할리퀸의 역을 맡은 배우 '마고로비'가 제작자로도 참여했다는 이 영화는, 애석하게도 개봉 초기부터 별점 테러를 당함과 동시에 부족한 개연성과 스토리 등을 이유로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와 상반되게, 몇몇 관람객들은 지나치게 낮은 별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2차, 3차 재관람을 희망하기도 했다. 하나의 영화를 두고 이토록 엇갈린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건 우리의 스토리야, 어디서부터 시작하든 그건 내 마음이야"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할리퀸과 고담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조커로부터 숱한 폭력을 당한 뒤 마침내 그와 이별한 할리퀸은, 이별의 아픔 말고도 한 가지의 난관이 더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조커의 연인이라는 방패막 아래 활개치고 다녔던 지난 날에 대한 업보였던 것.

그렇기에 영화 극초반의 할리퀸은 자신이 조커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숨기고 다닌다. 그리고 그건 할리퀸이 아직 조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그녀는 마침내 모든 것을 끝내기로 마음 먹는다. 그녀가 선택한 행동은, 바로 조커와의 사랑이 시작됐던 화학 공장을 폭파하는 것(이전 시리즈에서 본래 정신의학 박사였던 할리는 환자인 조커에게 반한 뒤 그에게 사랑을 증명하기 위하여 화학공장의 약품통으로 뛰어든 뒤 할리퀸이 된다).

그 선전포고 같은 행동으로 곧 고담의 모든 사람들이 할리퀸의 이별 소식을 알게되고 만다. 그리고 이 소식은 곧장 영화의 최대 빌런인 '로만 시오니스', 고담시 지하세계 권력자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마침 로만은 카산드라라는 어린 소매치기로부터 고담시 지하 세계 전체의 지배권을 차지할 금융 정보가 들어있는 다이아몬드를 도둑맞게 되고, 할리퀸은 혼자가 된 자신을 죽이려는 로만에게 목숨을 살려준다면 다이아몬드를 되찾아오겠다 약속한다.

하지만 로만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대상은 비단 할리퀸만이 아니었다. 다이아몬드를 훔쳐간 카산드라로 시작하여, 그런 이웃 동생을 지키기 위해 로만을 배신한 그의 부하 '블랙 카나리', 로만의 계략을 알아채고 그를 수사하기 시작한 베테랑 형사 '르네 몬토야', 그리고 로만의 일당에게 복수를 하기 위하여 돌아온 '헌트리스'까지. 로만의 표적이 된 다섯 명의 여자들은 힘을 합쳐 로만에게 맞서기로 한다.
 
마고로비가 그려낸 할리퀸의 이야기
 
배우 마고로비는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참여하던 중 이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 후에 마고로비는 캐스팅과 시나리오를 작업하는데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참여했으며, 모 인터뷰에서 <버즈 오브 프레이>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시퀄이 아닌 오리지널 스토리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거기에 마고로비는 여태 소비되어 왔던 할리퀸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단순히 조커의 애인,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빌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로서' 똑똑하고 직관적인 모습도 갖고있는 캐릭터라 이야기한 것이다. 실제로 이 부분은 영화 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할리는 영화 초반 자신에게 '멍청한 년'이라고 욕을 하는 남자의 다리를 박살내며 '누가 멍청하대? 난 정신의학 박사라고' 라는 대답을 돌려주기도 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헌트리스에게 그와 관련된 심리학적 충고를 해주기도 한다.

절정은 영화 중반의 오마주이다. 감독은 할리퀸의 독백을 이용하여 고전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OST인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의 마릴린 먼로를 그녀에게 오마주 하였다. 이 노래는 당시의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매력적이고 해학적이게 풍자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거기에 노래를 부른 마릴린 먼로는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에게 지니고 있는 편견인 '백치미'를 깨뜨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는 충분한 배경지식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할리의 숨겨진 면을 보여주려 했던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영화 속 인물들의 상처와 연대에 대하여
 

주연인물 5명은 각자의 사연과 상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장르적 특성상 이는 관람객에게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이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형사인 르네 몬토야이다. 앞서 설명했듯 르네 몬토야는 고담시 경찰서의 베테랑 형사이지만, 늘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 당하기 일쑤였다. 부하직원은 남자인 파트너 형사의 말밖에 듣지 않았으며, 과거 사건을 함께 해결했던 남형사는 그녀의 모든 공을 가로챈 뒤 홀로 승진하였다.

상사는 로만을 수사하겠다는 그녀를 계속 억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이어가는 그녀에게 끝내 정직 처분을 내려버린다. 이는 과장된 면이 있다 하더라도 아예 없는 일로 치부할 순 없다. 실제 여성이라는 이유로 결혼이나 임신 등의 사유를 들며 승진에 불이익을 주는 일은 우리의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으며, 거기에 대응하면 해고를 당하는 사태 역시 빈번히 일어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몬토야가 로만의 일당을 해치우는데 주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은 또다시 남자 상사에게 넘어간다. 결국 그녀는 경찰서에 사표를 던져버린다. 참다못해 직장을 그만둬버리는 몬토야의 모습은 통쾌한 한편 씁쓸함이 더 크다.

바로 이때 헌트리스는 로만 일당으로부터 되찾은 재산을 이용해 자경단을 꾸리게 된다. 거기에는 직장에서 나온 몬토야와, 성폭력을 일삼던 보스 로만이 죽자 자유가 된 블랙 카나리가 합류한다.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여성들의 연대라고도 볼 수도 있는 장면이다. 할리 역시 다이아몬드를 판 재산을 불려 고아였던 카산드라를 제자 삼게되는데, 이는 국내영화 <미쓰백>에서도 볼 수 있었던, 연대로 이루어진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라 봐도 괜찮을 것이다. 여지껏 남자 주연들 간의 의리와 활약을 그려왔던 유사 장르 영화와는 다르게, <버즈 오브 프레이>는 여성이 주연으로 나오는 범죄 액션 영화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셈이다.
 
그럼에도 부족한 개연성과 이야기의 구조
 

영화가 혹평을 듣는 데에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다. 보는 이에 따라 정신 사납다고도 느낄 수 있는 전개 방식과 억지스러운 전개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영화는 중간중간 할리퀸의 나레이션으로 끊어진 장면들을 이어붙인다. 작품 내의 캐릭터가 관객에게 말을 걸 듯 진행하는 연출은 영화 <데드풀>에서도 쓰였지만, <버즈 오브 프레이>는 그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해 오히려 난잡해 졌다는 것이 사람들의 평가이다.

또한 할리퀸의 캐릭터성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았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보였던 매력적이고 섹시하며,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도발적인 캐릭터성이 본 영화에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영화가 할리퀸의 지적인 면을 나타내려 한 것이 그 이유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만큼 이 부분에 있어서는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할리퀸의 매력이 반감되었다는 의견도, 충분히 잘 살렸다는 의견도 함께 나오고 있다. 또 하나 작품을 유치하게 만드는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있다. 바로 로만의 일당으로부터 궁지에 몰린 할리퀸 일당이 '죽여주는 목소리'를 가진 블랙 카나리를 앞세워 위기를 극복하는 장면이다. 카나리가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자 로만의 일당은 나가떨어지고, 할리퀸은 그 소리의 음파를 타고 추진력을 얻어 카산드라를 납치한 로만을 뒤쫓아 간다. 많은 이들이 이 부분에서 영화의 질이 떨어졌다는 평을 내렸다.

카나리가 자신의 비명으로 적을 제압하는건 DC 애니메이션에도 나왔지만, 이를 영화 스크린에 그대로 옮기기에는 억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영화를 보던 이들마저 몇몇은 '아 이건 좀' 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외 악역을 다루는 방식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일관성을 유지하는 액션 등이 이 영화가 혹평을 듣게 한 추가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이 영화 역시 보는 사람의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높은 집중력과 분석력을 가지고 영화를 평가하며 보는 이들에게 있어, 이 영화는 개연성이 부족한 싸구려 어드벤처 영화가 될 지도 모른다. 반대로 가벼운 마음을 가진 체 아무 생각 없이 즐긴다면, 꽤 봐줄만한 액션 오락영화 정도의 값어치는 한다는 것이 관람객들의 입장이다.

캐릭터들의 개성은 뚜렷하며, 주인공 할리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아크로바틱한 액션 역시 한 번 쯤은 봐줄 만하다. 만일 거기서 더 나아가 각 주연인물들의 행보에 자신만의 해석을 부여한다면, 한층 더 넓어진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영화의 기나긴 엔딩 크레딧이 끝나면 쿠키 영상이 기다리고 있다. 할리퀸에게 골탕 먹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부디 지루함을 견뎌내고 볼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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