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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자 하는 자, 청계천으로 가라!

아마도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떠올려볼 수 있다. 새로운 기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김씨가 있다고 가정하자.
 
전자공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김씨는 어느 날 자동 재활치료 의료 기구를 개발하기로 결심을 했다. 많은 도면들이 인스트럭쳐블 같은 온라인 공간에 오픈소스화되어 있겠다, 요즘 학교에 메이커스페이스도 있겠다, 유투브나 메이커 커뮤니티에서 모르는 건 물어보면서 만들어볼 수 있겠다 싶어 일단 시제품을 만들어 보고자 작업에 착수했다.

독학과 고군분투 끝에 도면을 만들었고 시뮬레이션도 한 번 거쳤다. 3D프린터로도 목업 작업을 한 번 거쳤고, 이제 실제 재료로 목업 작업을 할 차례다. 그런데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막막해서 메이커 커뮤니티와 자작 커뮤니티에 고수들의 조언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이런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청계천에 가보세요. 거긴 못 만드는 게 없어요." 김씨도 청계천의 명성은 자주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청계천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선다.  

을지로4가에 내려 세운상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로 온라인 통해 구매했던 여러 전자기기 부품들을 볼 수 있었고, 이를 파는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신기해 하면서 이 상가를 오르락 내리락 구경했다. 어디에 들어가서 만드는 법을 물어봐야 하는지 고민하다 "발명 개발 전문, OO전자"라고 적혀 있는 가게를 발견했다.

어디선가 봤던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의 기술장인들을 소개하는 프로에서 봤던 기술자 같다. 못 만드는 게 없다고 소문난 발명가이자 기술장인이라고 소개됐던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도면을 내밀며 묻는다. "이거 만들 수 있어요?"

여기서 두 가지 상반된 상황이 발생한다. 하나는 그가 목업 작업과 시제품 개발을 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목업 작업을 통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시제품 개발까지 나아가서 직접 제품을 출시하게 되는 경우이다. 어떤 이유 때문에 이렇게 서로 다른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청계천 일대 상공업의 두 가지 상반된 길
 
 입정동 초입 세운3-1 ,4 ,5구역의 철거가 진행되는 경관.
 입정동 초입 세운3-1 ,4 ,5구역의 철거가 진행되는 경관.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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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정동 초입인 세운3-1, 4, 5구역에 우뚝 선 세운힐스테이트 아파트 스케치.
 입정동 초입인 세운3-1, 4, 5구역에 우뚝 선 세운힐스테이트 아파트 스케치.
ⓒ 힐스테이트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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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제품 개발에 실패한 경우는, 아파트 재개발로 인해 산업생태계가 파괴되고, 세운상가에 몇몇 유통업체들과 기술박물관 정도만 남아 도심부 상공업 지역이 자랑하던 '협업체계에 기반한 산업생태계'가 모두 해체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은 2018년 12월 세운3구역으로 불리는 입정동 정밀지구 일부가 헐리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철거 과정 속에서 기계금속제조업과 공구와 부품 유통업들이 강제퇴거 당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축적된 도심 상공업 지역의 산업생태계가 깨지고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변 공장들의 소음 등에 대한 여러 민원들이 제기되고, 주변 상권의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이 젠트리키페이션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의 산업생태계를 지키고자 했던 공장과 자재상 그리고 공구상들은 하나 둘씩 이 지역을 뜨기 시작했고, 서로 다시는 협업할 수 없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사실, 2004년 청계천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오랜 세월에 거쳐 서울시는 청계천 일대의 상인들과 장인들을 계속해서 쫓아냈다. 이러면서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의 제조산업 생태계만이 아니라, 청계천 8가 일대 용두동과 황학시장에서 청계천 3가 입정동 정밀지구와 수표동 공구거리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청계천 시장이 모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는 어쩌면 1960년대 말, 청계천변을 둘러싸고 있었던 판잣촌을 밀어내고 세운상가를 짓기 시작했던 그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시계획행정과 건설자본이 오랫동안 고유한 문화를 형성해왔던 도심부 도시조직들을 다 부수고 새로 지으려는 욕망들을 본격화히면서부터. 

김씨가 제품 개발에 성공한 경우는, 지역 산업생태계의 활성화를 위해 세운재정비촉진계획과 수표도시환경정비계획 등의 재개발 사업을 중단하고,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세운상가군 도시재생 사업을 '청계천·을지로 일대 도시재생'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입정동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아파트 건설을 취소하고 건축 계획을 변경해 도심부 제조업 지원을 위한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의 1층은 메이커스페이스와 함께 기존에 퇴거했던 상공인들과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입주해 있고, 2층부터는 지역의 기술자들을 소개하고 연결해주는 기술중개소와 기술아카데미 교육 공간들, 그리고 소공업에 대한 자료실과 실험실 등이 있다.

2018년 12월에 입정동 일부가 강제철거되고 상공인들이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퇴거하게 되면서 산업생태계 일부가 허물어지고 있었는데, 서울시가 이러한 상황에 분노한 시민들의 건의를 받아들이고 지역의 주체들과 함께 숙의적·민주적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산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이 지역을 '제조산업문화특구'로 지정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그러면서 재개발 국면도 전환되어 도시재생도 전체 지역을 대상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여러 상공인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소통해가면서 도시제조업의 기반을 다시 다질 수 있는 여러 사업들을 한다. 이 과정에서 건물들이 리모델링되고 새로운 기술과 젊은 기술자들이 유입되면서 더욱 더 활성화된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도 만들고, 제품도 개발하고, 관광도 하러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에 방문한다.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가야 할 미래
 
 아파트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세운 3-1, 4, 5구역에서 재개발 중단과 산업생태계 활성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공인과 시민들.
 아파트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세운 3-1, 4, 5구역에서 재개발 중단과 산업생태계 활성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공인과 시민들.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최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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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의 다양성을 존중하라"라는 구호가 새겨진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상공인과 시민들.
 "도시의 다양성을 존중하라"라는 구호가 새겨진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상공인과 시민들.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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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재개발이 지속된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산업생태계가 전부 파괴된다고, 그리고 재개발이 중단된다고 해서 꼭 지역의 산업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 둘은 최선과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본 가상의 시나리오이자 시뮬레이션 작업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이러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도시적 삶의 조건을 만들자고 요구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도시적 권리이다. 청년 주거비율 향상이라는 수치적 목적은 도심부 생산공간들을 허물고 어디에나 있는 아파트를 짓는 개발사업 추진의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들의 일상을 이루는 여러 사물들과 이를 만들어내는 여러 산업들에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제조기반시설이자, 발명가·예술가·메이커들의 작업장과 실험실인 이 청계천·을지로의 도시제조업을 보존하고 재생산하고 활성화하려는 고민이다.

우리는 이 지역에 어떤 미래가 오길 원하는가?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식은 전체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개발에 적당한 공간을 내려다보는 혹은 건물 꼭대기에서 이 지역을 내려다보는 조감도의 시선이 아니라, 실제 상공인들과 이용자들과 이 공간을 방문하는 시민들의 시선으로 전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민주적 숙의 과정에서 혹시나 목소리가 배제되는 자가 없는지 이게 정말 공공적인 성격을 띠는 것인지 계속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청계천·을지로의 미래는 과거와 현재를 무작정 부숴버린 공간에, 상인들의 고통과 절규가 남아 있는 장소에, 깔끔하고 세련된 고층의 아파트와 빌딩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개발로 인해 산업생태계가 파괴되고 오랜 역사문화유산이 사라진다 한들, 즉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이 사업에 참여한 건설자본은 최대한 빨리 PF를 일으키고 고층 아파트를 세워 자신들의 배만 채우면 된다. 그들에게 재개발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상공인들은 장애물일 뿐이기 때문에 폭력적인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이들을 몰아내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우선으로 지켜져야 할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이 지역을 만들어왔던 상공인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이 지역을 오고가는 다른 시민들의 도시적 삶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가 바라는 청계천·을지로의 미래는 이러한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최혁규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과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이론과 미디어이론 그리고 과학기술학을 공부했고, 기술사와 영상문화,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동료들과 청계천·을지로 일대 기술자들의 기술-지식의 역사와 현재를 조사하며, 재개발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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