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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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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n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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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건설 현장의 꽃이라 불리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다. 스물다섯에 높은 긍지를 갖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내 인생의 절반을 훌쩍 지나가 버렸다. 보통 출근하기 위해 눈을 뜨는 시간은 새벽 다섯 시다. 세면 뒤 외출복을 입고 거실로 나오면 아내가 우유 한잔에 사과 반쪽을 내놓는다. 그것을 먹곤 늦어도 5시 20분엔 집을 나선다. 이번 현장은 집에서 편도 60km가 조금 넘는다. 다행스럽게도 새벽엔 자동차가 그리 많질 않아 오전 6시 30분이면 도착한다. 자그마한 컨테이너 대기실에서 비슷한 시간에 출근한 동료와 쓴 커피 한 잔을 마시다 지정된 시간에 안전장구를 갖춰 현장으로 나간다.

우리는 각자 맡은 타워크레인 마스트 안으로 들어가서 수직 사다리를 타고 조종실까지 올라간다. 아침에 타워크레인 조종실로 한번 올라갔다 하면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내려오는 것 말고는 전체 9시간을 꼼짝없이 비좁은 조종실에 앉아 있어야 한다. 늘 그렇지만 타워크레인 조종실로 올라가면 이미 현장 작업자들은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종일 몸을 움직이며 일하는 작업자들이 조금이라도 힘이 덜 들게 타워크레인으로 필요한 자재를 최대한 안전하고 신속하게 운반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건설 회사가 예정한 기간 안에 건물이 완성될 수 있도록 협력 한다.

사실 건설 현장에 설치된 거대한 타워크레인의 원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러모로 궁금한 게 많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구조이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기기 힘든 자재를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 있을까. 또는 저러다가 곧바로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타워크레인이 엉성한 철 구조물로 되어 있어서 매우 위험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안전하게 설계 되어 있다. 나는 아직까지 타워크레인만큼 과학적이고 효율이 높은 크레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건설현장의 높은 공중에 설치된 어느 종류의 타워크레인이든 조종실 앞 붐의 길이에 따라 들어 올릴 수 있는 중량의 한계는 미리 정해져 있다.

물건을 안전하게 매달고서 좌우로 돌고, 트롤리를 [훅이 앞뒤로 움직이는 장치] 안으로 또는 밖으로 이동시켜 가며 현장 작업자들이 원하는 위치에 물건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조종실 뒤쪽으로도 짧은 철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 맨 끝부분엔 균형을 잡아 주는 맞춤 콘크리트 블록도 놓여 있다. 작업 중이거나 바람이 조금 세게 불기라도 하면 꽤 흔들리긴 하지만 경력이 충분한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그때그때 안전을 판단해 가며 조종하면 그렇게 위험하진 않다. 다만 일반 크레인과 달리 타워크레인 조종석은 물건을 훅에 매다는 곳과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모든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주로 신호수가 조종실로 전달해 주는 무전기 소리를 듣고 일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더러는 경력이 부족한 조종사를 얕잡아 본 신호수가 물건을 대충 매달아 놓고 무전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행동이다. 잘 보이지 않는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해 주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운반할 때도 이상 없었는데 설마 이번이라고 해서 무슨 일이야 벌어지겠어.'

이런 안전 불감증이 큰 사고를 부르게 된다.

건물이 한 층씩 만들어져서 위로 자꾸 올라갈수록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사각지대는 점점 더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잘 보이지 않은 곳에 있는 신호수에게 꼼꼼하게 따져 묻는다. 그래도 의심이 갈 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방법을 거치기도 한다. 왜냐하면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이처럼 안전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예정된 공사의 진척이 자꾸 느려져 때론 볼멘 소리를 하는 공사 관계자도 나오기 마련이다. 이럴 땐 여러 현장의 사고 사례를 들어가며 그들이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반감을 갖지 않도록 설득시키는 것도 해야 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석에서는 비가 조금 내려도 바깥이 잘 보이질 않는다. 또 바람이 규정 이상 불어도 구조물과 인양 중인 물건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기 때문에 사고 예방을 위해 작업을 중단하기도 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자재를 인양할 때 생기는 사소한 잡음도 절대로 그냥 넘겨선 안 된다. 소형 철 구조물 수백 개가 모여 공사 현장의 거대한 타워크레인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작은 문제 하나를 그냥 넘기게 되면 나중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조금이라도 이상한 반응이 느껴지면 곧바로 점검하고 제때 필요한 급유를 해야 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석 높이는 최소 20m에서 수백 미터까지 아주 다양하다.

수직 사다리를 타고 안전하게 조종실까지 올라가는 것은 상당한 요령이 필요하다. 한 번에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위치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난 뒤에 다시 올라가는 것이 좋다. 일정한 간격마다 사람이 서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있어 가능하다. 그렇게 운전석까지 올라가더라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가 많다. 여름이면 흘린 땀으로 인해 속옷이 흠뻑 젓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조종사는 수직 사다리 너머로 자신의 몸무게와 비슷한 추를 와이어로 연결하여 그네를 타는 것처럼 엉덩이를 걸터앉아 천천히 오르내리기도 한다. 이 기구를 이용하면 매달린 추의 무게 때문에 올라갈 땐 그만큼 힘이 덜 들게 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오전과 오후 타워크레인 위로 올라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화장실을 들렀다 가야 한다. 만약 깜빡 잊게 되면 일을 마치고 내려올 때까지 소변을 참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소변은 어떻게 해결한다 치더라도 갑자기 배가 아플 땐 화장실을 가야 한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정도는 갑자기 배가 아파서 내려오는 일도 종종 생긴다. 이처럼 물 한 모금을 맘대로 마시지 못한 체 배출하고 싶은 욕구도 억제해 가며 좁은 공간에 종일 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이제 나는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몸에 익숙해져서 괜찮은 편이다.

한 번은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다. 프랑스산 장비였는데 외국인 정비사가 고장 난 타워크레인을 고치기 위해 조종석까지 올라와서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이 너무 뚱뚱해서 안으로 쉽게 들어가질 못했다. 그동안 내가 수백 번도 더 많은 불만을 가졌던 게 바로 이것이다. 자기네 손으로 만들어 놓고 너무 비좁아 조종실로 들어가질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타워크레인 위에서 종일 살다시피 하는 조종사를 생각한다면 조종석 규모를 현재 보단 몇 배 더 넓게 만들 수 없냐는 거다. 요즘은 작업 중에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수시로 주시해야 할 모니터가 대여섯 개나 된다.

예전과 비슷한 크기의 조종석 내부에 추가로 설치된 것들이기에 그만큼 좁아졌으며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전기히터, 에어컨, 풍속계, 충돌 방지기, 몇 개의 무전기, 휴대폰 배터리 충전 등 꼭 필요한 제품의 전원 코드마저 충분히 꼽아 쓸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물론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전기선을 별도로 연결하여 쓰고는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떤 타워크레인 조종실 바닥은 위험하게 꼬인 전선으로 가득하다. 이런 문제가 자꾸 불거지는 것은 제작 단계에서부터 한번 밖으로 출고되면 최소 20년은 사용하게 될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질 않았다는 증거다.

오죽하면 자기네가 만들어 놓고도 조종석이 비좁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까 싶다. 때문에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일을 하러 올라가면 감옥과 같단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비좁다는 불만을 우회로 토로한다. 하다못해 작은 종이컵 하나를 올려둘 적당한 선반도 없는 장비가 많다. 때문에 대부분의 타워크레인 운전석엔 공사 현장에서 쓰는 합판을 대충 제작하여 창가 틈에 끼워 놓고 사용한다. 같은 현장에 몇 달씩 근무하다 보면 각자 작은 가방 하나 정도 분량의 꼭 필요한 개인 물품이 있는데 이런 것도 마땅히 올려둘 만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물론 나는 이런 편리한 장치들이 법을 위반한 행동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인허가 절차에 큰 문제가 없다면 타워크레인 조종석을 대폭 넓히고 편의 사양도 많이 설치되어 나오길 희망한다. 30년 가까이 타워크레인 조종사로 근무해온 사람의 마지막 바람은 월급이 조금 더 올랐으면 한다. 공사 현장에서 위험하고 힘을 쓰는 것은 모두 도맡아 하는 것 치고는 월급이 너무 적다. 더구나 타워크레인 조종사 대부분 현장 일이 끝나면 임대사로부터 계약이 해지되어 곧바로 실업자가 된다. 이들은 새 일자리를 잡을 때까지 아무런 수입도 없이 살아가야 한다. 요즘은 건설경기 침체로 최소 1년은 기다려야 한다. 또한 타워크레인 임대료도 너무 낮게 책정 되어 있다. 기술 발달로 최근 건물 층수는 크게 높아졌어도 공사 기간은 오히려 짧아졌다.

그런데도 임대료는 30년 전과 비슷하다. 그동안 아파트 분양가는 최소 네다섯 배나 올랐는데 왜 건설기계 임대료는 그대로 인지 모르겠다. 자세히 알고 보면 건설회사는 아파트 세대에 들어가는 도배 비용도 안 되는 적은 금액으로 건물 골조 공사를 마무리 하는 것과 같다. 도대체 그 과도한 분양가는 어디에 쓰인단 말인가? 이 글을 계기로 전국의 건설 장비 임대료가 현실화 되어 타워크레인 조종사뿐만 아니라 건설 기계를 다루는 모든 노동자 삶의 질이 나아지길 기대한다.
 

태그:#건설현장의 꽃,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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