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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희(古稀)를 보낸 지 10년, 올해는 내 팔순(八旬)의 해다. 세월은 참으로 잘도 간다. 남은 생을 어찌 살아 갈 수 있을까? 지나간 세월보다 남은 짧은 세월을 최선을 다해 유종(有終)의 미(美)의 삶을 거둘 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지나온 삶을 과연 후회 없이 살아왔는가 묻는다면, 후회 많은 삶이었다고 하고 싶다. 그간 살아온 세월들이 격동의 시대였기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순간들이 많았다. 어쩌면 기쁘고 즐거움보다, 질곡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허나 한편으로 궤변도 늘어놓는다. 시대와 조상을 잘못 만나서, 아니 운이 없어서라고 자위도 해 보았다. 허나 스스로 게으름을 피우며 노력도 않으면서 남 탓이라고 한다면, 이는 정도(正道)가 아니기에 반성하기도 했다. 한편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기회와 변화도 있었기에, 노력한 만큼 작은 결실을 거두기도 하였다.

 해방공간과 6․25 전쟁 전후에서, 철부지였던 어린 내가 맏형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때 각인되었던 아픔이 성년이 되어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조국분단 과도기에 스물두 살의, 장형이 죽임을 당한 후, 육십년 만에야 진상이 규명되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 참으로 슬프고도 기쁜 순간이었다.

 반백년 전, 나 또한 '가면 죽는다'던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용기는 어디서 났는지 나도 모른다. 그때 1965년 파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도전이었다. 참전 13개월 동안 전쟁에서 생과 사를 바라보면서 깊은 상념에 빠지기도 했었다. 생명의 중요함에도 분단국의 평화와 통일을 더욱 갈망하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또한 부역자로 신원 조회의 대상이 되어 좌절했고, 둘째 형이 의용군과 국군에 참전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상이 제대를 했다. 그 후 세 번의 선거로 집안이 기울어져, 진학의 꿈도 접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배우고 아는 게 힘이다' 생각하며 주경야독으로 학업에 임하였다. 모든 것을 포기할 뻔도 했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았던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기로이기도 했었다.

 또한 슬픔은 열일곱 살에 청상과부가 되신, 양할머니가 우리 8남매 손 자녀를 마치 산모처럼 척척 받아내고 양육하신 것이다. 이런 연유로 양할머니가 열녀로, 부모님이 효자효부로, 3남이면서 50년이나 부모님을 모신 효열 3대가로 이어 왔었다. 8남매 중에서 내가, 기준과 중심을 잡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집안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어쩌면 풍비박산의 집안이 되었을지도 모를 처지였었다.

 이런 사실이 자화자찬으로 비추어질까 송구한 마음이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자성하고 자책하면서 다짐했다. 과연 남은 세월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지나온 삶을 잘 마무리하고 과오를 뉘우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 성실히 노력하는 길을 걸어왔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믿음으로 사는 길이, 하나의 방법이 된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부족한 글쓰기다. 초등학교에서 글짓기에 흥미가 있어 성년에 더욱 살아나면서 결국 만학의 꿈을 갖게 되었다. 가방끈이 짧다는 자괴감도 있었지만, 열심히 노력해 배우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언제나 부족하기만 했었기에 욕심도 부렸다. 진력하여 여러 권의 책을 펴냈지만, 한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나는 다방면의 글을 쓰고 있다. 다양한 문학의 장르 외에 칼럼도 쓰고, 또한 붓글씨도 쓰고 있어 서예로 쓴 작품을 자주 선보이기도 하지만 부족하기만 하다. 글은 수없는 퇴고와 연마를 거듭해야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진한 작품을 내고 만다. 결국 미진한 작품이 나오면, 바로 후회를 하곤 했었다.

 후회는 스스로 게으름과 여유 없는 시간을 활용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에게 제일 크게 다가온 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조국,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어찌 치유하느냐 하는 무거운 과제다.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말로만 노래하지 말고, 바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실천운동에 앞장서 펴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실행을 위해 평화통일에 진력하는 여러 단체에 일원이 되고, 간부가 되고 단체에 책임을 맡아야 했다. 분단의 현실, 여기에는 일제에 36년을 지배당하고 해방 아닌 분단이, 분명 외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 8천만 동포들이 모두 분단을 외면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나라 잃은 설움에도 31세 안중근 의사와 24세 윤봉길 의사가 처자식을 두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정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윤봉길 의사는 우리 윤문의 형제항렬이기도 하시다. 8․15 광복이 바로 분단으로 이어져, 74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갔다. 지구촌에서 가장 오랜 분단국, 언제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룰지 난망하기만 하다. 허나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을 이겨내는 우리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의 소원은 평화통일 조국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일보다 더 절박하기만 하다. 나는 통일교육위원으로, 평화연대회원 간부로, 평화만들기, 희망연대, 통준사 공동대표로 매진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기만 하다. 아무리 통일을 원하지 않는 동포나 주변 외세가 존재해도, 이를 극복해 내야만 한다고 다짐한다.

 지구상에 너무도 오랜 분단조국에 통일을 위해서는, 존경하는 안중근, 윤봉길 두 의사와 선현들의 뜻을 따라가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사실 오래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남루한 후회를 했었다. 분단 조국의 통일도 이루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 통일을 방해하는 용병군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한없는 자괴감을 느끼곤 했었다.

 베트남 인민들은 17도선을 평정하여 세계최강대국인 미국을 이겨내고, 당당히 남북베트남이 통일을 이뤄냈었다. 진실로 베트남 통일을 축하하고, 우리가 용병으로 참전해 저지른 잘못을 다시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오래전 베트남은 남북통일 평화를 이루어 냈다. 베트남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당당히 이겨낸 위대한 민족임을 세계만방에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만 했다.

 통일된 베트남을 몇 차례 다녀오면서 그들에게 우리가 지은 죄과를 용서해 달라고 했었다. 그들은 지난 원한을 모두 용서한다고 했다. 그들은 당당히 외세 강대국을 물리치고 세계만방에 통일된 베트남의 발전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지난 용병 참전으로 그들 아픔과 슬픔을 안겨준 사실에 진정으로 사죄하였다. 이에 그들은 우리의 지난 잘못을 용서 해주었다.

 필자는 올해 팔순을 맞이하면서 지난 파란만장한 삶을 돌아보았다. 스스로 지난 삶을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나 부족하고 미진한 일들도 많기만 하다. 그러기에 항상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비록 늙어간 나이지만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를 재촉하기도 하고 있다.

 비록 두 분 안중근, 윤봉길 의사(義士)들처럼 젊지 않은 팔순의 나이지만, 그 분 의사님의 뜻을 따라 행하기를 다짐하며, 내 생애를 '마무리 잘하는 삶'으로 정의·평화·통일의 길을 과감하게 가는 길이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좌우명으로 삼았던 최선을 다한 삶을 살면서, 나와 맺은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한반도에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8천만 동포와 후손들이 꿈이요 소원을 이루는 그날까지 진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 회원. 한국문인협회 수필회원. 서예초대작가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인권연대 웹진 <수요산책>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윤영전님은(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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