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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월 31일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 선고를 내린 판사들의 명단이 담긴 보고서 공개를 앞두고 서울 충무로 진실화해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2007년 1월 31일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 선고를 내린 판사들의 명단이 담긴 보고서 공개를 앞두고 서울 충무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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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 전 이맘때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공무원 생활을 할 때였다. 국가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 활동을 통해 그들의 피해 사실을 결정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5년부터 2006년 사이에 신청한 사람에 대해서만 조사를 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피해 사실을 주장해도 조사할 수 없는 괴이한 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청 기간을 놓친 분들의 사건이 나에게도 접수되었다. 모두 4건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송우웅씨 간첩 조작사건이었다. 신청 당시 그는 이미 후두암 말기 환자로 3개월 정도의 생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진실을 밝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건을 배당한 국장은 처리해야 할 다른 사건이 많으니 가능하면 신청 기간 도과로 모두 기각하라고 하였다. 당시 위원회 활동 시한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내게 배당된 사건은 15건 넘게 남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사할 의무도 없는 사건을 무리하게 잡고 있다가 다른 사건 조사에 영향을 준다면 그야말로 큰 낭패였다.

그렇다고 신청 기간이 도과했다는 말 한마디로 사건을 정리하는 것도 위원회 조사관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고민 끝에 일단 인권침해 사실이 있었는지 먼저 확인하고 위법 사항이 발견된다면 그때 가서 좀 더 사건조사를 하고, 만약 위법 사항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조사를 종결하기로 했다.

곧바로 검찰청에 송우웅씨에 대한 과거 수사기록을 요청했고 얼마 뒤 사본을 받았다. 나는 일과 시간 이외의 새벽 시간까지 사건을 검토했다. 검토 결과 그가 중앙정보부에서 명백하게 불법으로 감금당하고 가혹행위 당한 것을 확인했다. 신청인에게 소명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그가 병원에 입원한 뒤였다. 심각한 후두암 진행으로 더 이상 말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신청인 조사는 할 수 없었지만 중앙정보부가 불법 행위를 한 것이 확인된 만큼 그냥 덮고 넘어갈 사건이 아니었다. 당시 참고인으로 조사받았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조사했다. 한결같은 대답은 중앙정보부 조사는 강압적이었고 미리 짜놓은 각본, 즉 송우웅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며 압력을 받았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피의자로 체포했던 송우웅을 수개월간 정보원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좀 더 거물급이었던 한 신문사의 사장 정○○의 간첩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송우웅을 그 신문사에 취업시켰다. 그곳에서 정○○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시켰던 것이다.

송우웅의 진술에 따르면 협조자 활동을 하면 그를 풀어주는 것은 물론 그를 중앙정보부에 취업시켜준다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믿고 송우웅은 열심히 정보원 활동을 했다. 그리고 결국 정○○은 1972년 9월 중앙정보부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렇게 사냥이 끝났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정○○ 체포 후 며칠 뒤인 9월 11일 송우웅도 체포되었다. 정○○이 체포되면 송우웅을 풀어주고 취업시켜준다는 중앙정보부의 말은 처음부터 거짓이었다. 오히려 더 큰 간첩 조직을 잡았다는 언론플레이를 위해 그는 정○○에게 포섭되어 지령받은 조직원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이러한 조사 결과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당시 보수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추천위원들로 장악된 소위원회에서 기각되겠지만 안건 상정 기록이 남는다면 피해자들의 재심에 도움 될 거라고 믿었다. 조작된 사실에 대한 내용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소위원회에 올렸고, 예상대로 신청 기간이 지나 접수된 사건이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나는 기각 결정 결정문과 통지서를 보내야 했다.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신청인을 생각하니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기각 통지서를 작성했다.
 
귀하께서 제출하신 진정사건에 대한 회신내용을 말씀드립니다.

귀하께서 우리 위원회에 진정한 사건은 지난 4. 27. 개최된 제131차 전원위원회에서 조사종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조사종결된 이유로는 귀하께서 진정하신 내용과 유사한 사건들이 앞서 우리 위원회에서 결정된 바가 있고, 진정인께서 진정하신 시점은 우리 위원회 신청기간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아직도 많은 사건이 신청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감안하면 진정인께서 진정하신 사건을 조사 개시할 경우에 다른 분들과의 형평성 시비를 가져올 수 있어 안타깝지만 귀하께서 제출한 진정사건을 직권으로 조사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위원회의 판단입니다.
(중략)

이상과 같이 우리 위원회에서 조사된 내용이 귀하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며, 향후 재심 등의 절차를 거치실 경우 이러한 조사내용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더욱 더 자세한 조사내용은 아래 담당 조사관에게 문의하시면 성심껏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통지서를 작성해 발송한 뒤, 송우웅씨 자택으로 전화를 했다. 젊은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었다. 지금까지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결과를 전했다. 아들은 덤덤히 듣고만 있었다. 나의 설명이 끝나자 아버지께 전달해 드리겠다고 했다. 차마 아버님의 쾌유를 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국가로부터 망가진 인생을 밝혀낼 어쩌면 생의 마지막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채 결국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져가게 한 내가 무슨 염치로 그에게 건강과 쾌유를 빌 수 있을까?

통지서를 발송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송우웅씨 아들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무슨 말을 듣게 될지 충분히 예상되었다.

"아버지가 조금 전 돌아가셨습니다."

명예라도 회복시켜드려야
 
 재심 신청을 위해 증인을 찾아다녔던 고 송우웅씨의 가족.
 재심 신청을 위해 증인을 찾아다녔던 고 송우웅씨의 가족.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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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웅씨 아들을 다시 만난 것은 2년 전인 2018년도 봄이었다. 사용하던 휴대폰이 고장나 바꾼 후 저장해 둔 전화번호가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이전 휴대폰에서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중 송우웅씨 연락처를 발견했다. 순간 미뤄두었던 숙제가 기억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돌아가신 분의 명예라도 회복시켜드려야 나의 마음도 조금은 편할 듯했다.

그러나 전화기를 앞에 두고 한참을 망설였다. 10년 전 부친의 사건을 기각시킨 나의 전화를 반가워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고통을 잊고 살던 가족들이 나의 전화로 다시 고통스럽고 불편한 기억으로 일상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되었다. '그래, 안부 전화라도 했다고 하자.' 나는 내 멋대로 이유를 만들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송태원씨?"
"네, 맞는데 누구신가요?"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진실화해위원회에 있던 담당 조사관인데 기억하세요? 오랜만에 어찌 계신가 궁금해서 안부 전화 드려봤어요."
"네, 잘 지내셨어요?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했는데 잘 지내시죠?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다행히도 밝은 목소리와 반가운 말투였다.

"예, 저는 여전히 과거사 일을 하고 있어요. 시민단체 만들어서 조작 간첩 피해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세요? 좋은 일 하시네요."


나는 그의 밝은 목소리에 용기를 내 말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아버님 사건 있잖아요."
"네, 제 아버지 사건도 해볼 수 있을까요?"


선뜻 나온 그의 말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네, 그럼요. 우리 한번 뵐까요?"
     
"재심을 할 만한 사유가 생겼다"
 
 재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502호
 재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502호
ⓒ 서창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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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웅씨의 진실규명을 시작하기로 한 우리는 얼마 뒤 사건의 증인을 만나기 위해 송씨 가족과 함께 부산을 찾았다. 송우웅씨가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정보원 활동을 할 때 만났던 그의 누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동생 송우웅의 억울함을 간직한 구순의 할머니는 수십 년이 지난 일에 대해 아직도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동생의 억울함을 토하듯 이야기를 꺼냈다. 1971년 잠시 만난 동생 송우웅은 중앙정보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꼭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 찾아온 송우웅씨 아들에게 힘내서 아버지의 명예를 꼭 풀라고 했다.

검찰을 찾아 수사기록을 찾고 그 밖의 친척들을 더 만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던 우리는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인의 도움으로 2018년 10월 18일 재심을 신청할 수 있었다. 다시 반년 정도가 지난 2019년 5월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제21형사부)에서 재심 결정을 위한 공판이 열렸다. 당사자 송우웅씨는 사망했지만 아내와 가족의 진술을 토대로 불법감금과 기망행위 등으로 인해 간첩으로 조작된 사실을 주장했다.

그리고 다시 5개월이 흐른 9월 18일 서울지법 재판부는 불법감금 등의 불법 수사로 인해 재심을 할 만한 사유가 생겼다는 취지로 재심을 결정했다.

2019년 11월 5일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에서 송우웅의 재심 개시 공판이 열렸다. 송우웅씨의 아내, 아들, 그리고 며느리가 함께했다. 그리고 원곡법률사무소의 서창효 변호사가 곁을 지켰다. 아들 송태원씨는 재심 개시 전에 열렸던 공판 때는 긴장하지 않았는데 이번 재판을 앞두고는 긴장이 되어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법정 앞에서는 어머니가 불안해 할까 봐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에게 긴장하지 말라, 잘 될 것이라고 말하며 안심시키려는 모습이었다. 함께 온 며느리도 연신 여유 있는 웃음을 지었다. 좋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이 시작되고 고인이 된 송우웅씨를 대신해 아들 송태원씨가 피고인 자리에 앉았다. 이름과 주소 등을 확인한 뒤 재심 청구 취지를 물었다. 옆에 앉은 변호인이 일어나 재심을 청구하게 된 계기와 무죄를 바라는 의견을 진술했다. 검사는 이전 재판에서 피고인이 인정했던 부분에 대한 증거능력을 다퉜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증거능력이라니? 수십 일간 가두어 고문하고 협박해서 만든 허위진술에 증거능력이 있다는 것인가? 이미 재심개시결정을 한 재판부에서 '임의성 없는 상태에서 강압에 의해 꾸며진 진술과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결정한데 대해 검찰은 다시 증거능력을 들먹이고 있었다.

과거사건에 대해 깊은 반성과 성찰 있어야
 
 재심 재판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은 서창효(왼쪽) 변호사와 고 송우웅씨 아들 송태원씨.
 재심 재판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은 서창효(왼쪽) 변호사와 고 송우웅씨 아들 송태원씨.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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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억지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난 1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공판이 열렸다. 그리고 무죄가 선고되었다. 피해자가 사망한 지 10여 년이 흘러 진실규명을 바라던 소망이 이뤄졌지만 결국 가해자와 국가의 사과는 없었다.

피해자 송우웅씨의 아들 송태원씨는 재심 직후 재심의 기쁨보다는 검찰의 항소에 더 신경을 썼다. 기쁘지 않으냐는 질문에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네요. 그냥 다행이다 싶어요. (검찰 항소 여부) 일주일 정도 더 기다려보고 마음 놓고 기뻐하려고요"라며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다.

무죄를 선고받아도 기뻐하지 못하는 피해자.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항소 포기는 물론 피해자를 찾아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검찰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어려운 재심 변론을 포기 않고 끝까지 맡아준 서창효 변호사와 원곡법률사무소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답답함도 들었다. 검찰은 과거사 등 반인권 사건에 대해 직권으로 조사한다는 이야기를 이미 여러 번 했다. 그러나 1000여 명에 달하는 납북귀환어부 사건이나 100여 건에 다다르는 재일교포 사건 등도 여전히 검찰 스스로 직권조사를 하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니 알려지지 않는 시민을 잡아다 간첩을 만든 이런 개별 사건에 대해 검찰은 바로잡을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생긴 이래 민주화 전까지 국가보안법 피해 사건이 6000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 실체적 사건도 있겠지만, 과거사위원회 조사에 견주어 보면 조작되거나 과장, 확대되어 실체 없는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과거사 사건을 검토 없이 무죄 의견을 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민주화 시기 이전의 과거사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어 검찰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법 집행을 삼가야 한다. 특히 실체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증거능력 등등을 운운하며 부당하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집행한 과거사건에 대해 깊은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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