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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한 산악회. 나는 재작년 1월, 추월산 산행에 처음 참가했다. 산악회 버스는 일정구간마다 정차를 해서 회원들이 탈 수 있도록 했다. 각 정류장마다의 시간도 정해져 있었다. '오케이 병원', 오전 6시 15분. 내가 버스를 탈 장소와 시간이다.

일요일 새벽, 아무도 없는 길을 커다란 등산 가방(산악인의 자존심은 큰 배낭이다)을 메고 걸었다. 정류장 근처에 왔지만 정확히 어딘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어둠 속에 몇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회원인가 보다 하고 가까이 가서 인사를 했다.

버스는 정확한 시각에 왔다.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팀장이 빈 좌석을 안내해줬다. 버스 안은 조용했다. 다른 산악회 버스를 타보면 서로 잡담을 하느라 시끌벅적하고, 처음 온 회원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게 예사인데 여긴 좀 이상했다. 나한테 별 관심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가지고 온 책을 꺼내서 읽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순창에 도착했다.

등산 초입부터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 40대 남자 회원 두 명이 맨 앞에 서서 러셀(눈 쌓인 산을 오를 때 선두가 눈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하며 길을 만들자 그 뒤로 회원들이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걷기 시작했다.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는 듯, 조용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산에서 내려와보니 떡국이 있었다. 여성 회원 한 분이 함께 올라가지 않고 음식을 준비하신 것 같았다. 회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상(추억의 접이식 양철 밥상)을 펴고 의자(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니 스툴)를 놓았다. 상 하나당 의자 5개. 배식과 상차림까지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게 돌아갔다.

주차장 아스팔트 위에서 뜨거운 떡국을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추위와 고단함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 30분쯤 먹었을까? 갑자기 버스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났다(이게 신호다). 그러자 모두 일어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그릇 더 먹으려고 했던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서 돕는 시늉을 했다. 밥상은 접으면 큰 쟁반처럼 되는데, 그것을 포개어서 차에 싣고 의자와 쓰레기를 치웠다.

산에 다니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었을 때였다. 매주 혼자 다른 산에 가는 것이 힘들고, 경비도 많이 들어서 산악회 여러 곳을 다녀봤다. 친목이나 사교가 목적인 곳이 많아서 처음부터 너무 친밀하게 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친한 사람들끼리 야유회를 온 것처럼.

내가 생각할 때 야유회와 산악회는 다르다. 산에 대한 전문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 적은 비용으로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곳. 산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곳. 나보다 산에 미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산악회다. 여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 때문인지 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한 줄로 올라가는 회원들
 한 줄로 올라가는 회원들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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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당당히 종주팀의 마스코트로서 산악회 중심에 있다. 버스 좌석이 누구의 지정석인지부터 산행지 안내문 배부 타임, 차량 내 쓰레기 수거 시점(군산 톨게이트를 지나면 바로 한다)까지 이제 알만큼은 안다고 할 수 있다.

산악회 안에 '아부지'도 있다.

한 번은 어느 선배님이 나한테 자신의 딸과 나눈 얘기를 했었다.

"내가 딸한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했어. 그랬더니 딸이 아부지는 결혼해서 뭐 좋은 게 있었냐고, 왜 결혼하라고 하냐고 하더란 말이지. 그래서 내가 속으로 그랬어. 너를 낳았지 않았냐고 말이야."
"따님한테 직접 얘기하지 그러셨어요."

이때부터 선배님은 대기업 연구실에 일한다는 딸 얘기를 자주 했다. 나를 보면 딸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그 뒤부터 그를 '아부지' 라고 불렀다.

울산 가지산을 갔을 때였다. '아부지'는 늘 '한번 해병은 죽어도 해병'이라며 군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울산에 사는 군대 동기가 찾아 오기로 했다고 했다. 새벽에 차에 타면서부터 친구분과의 전화 통화에, 옛 추억 얘기에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내가 물었다.

"아부지, 그 친구분 몇 년 만에 만나는 거예요?"
"십 년도 넘었지."

십 년 동안 안 만난 20대 시절의 군대 동기. 지금은 70대인 선배님이 괜히 친구분한테 무리하게 만나자고 한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것도 (30분만에 먹는) 하산주 마시는 장소에 오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십 년 만의 조우를 양철 밥상을 두고 하게 되는 거다.

6시간 정도의 산행을 마치고, 산악회 버스 있는 곳으로 갔다. 버스는 (오늘따라) 외진 다리 밑에 주차돼 있었는데 어떻게 설명 하셨는지 그곳에 친구분 부부가 기다리고 계셨다. 눈물이 글썽한 채로.

따로 말씀 나누시라고 한 상을 차려드렸다. 옛 이야기를 얼마나 나누었을까? 어김없이 버스 시동이 걸리자 그들은 일어서야 했고, 아부지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먼저 차에 올라 타 버렸다. 남겨진 친구분한테 (딸로서)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분은 "저 친구와 군대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겼는지 모른다"며 눈물을 훔치셨다. 그걸 보고 차에 올라 타니 아부지도 눈이 벌겋게 되어서 울음을 참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식지 않을 만큼 뜨거운 감정이란 뭘까 생각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진정이 된 아부지가 (예의 천진난만함으로) 친구와의 추억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친구분이 해병대에서 아부지하고 죽을 고비 많이 넘겼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랬지. 저 친구하고 나하고 사건이 많았지."
"그런데 그때 전쟁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죽을 뻔했어요? 대구에 계시는 진짜 아부지는 월남전에 참전했어도 군대 얘기 잘 안 하시는데."

그 순간 폭소가 터졌고, 조용하던 버스 안은 소란스러워졌다. 모두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나 보다. 아부지는 멋쩍어하더니 육군 무슨 부대냐며 화제를 돌렸다.

사람을 떠나고 싶어서 산으로 갔었다. 야유회와 산악회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3년 전 나는 사람을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지금은 조금은 달라진 나를 느낀다. 그것이 사람 때문인지, 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태그:#산악회, #해병대, #야유회, #양철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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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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