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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난 주말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손녀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오직 휴대전화로 전송해온 사진만 봤을 뿐이다. 아들 부부가 멀리 지방이나 해외에 사는 것도 아닌데 아직 손녀를 만나지 못한 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이다.

2월 초 어느 새벽, 아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병원에 왔다고. 만삭인 며느리가 진통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아내와 난 병원으로 가려고 서둘러 일어났다. 하지만 아들은 우리가 병원에 와도 소용없다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면회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들도 며느리가 입원한 산부인과 응급실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아들은 병원에서 일한다. 그래서 사회에 감염병이 만연하면 그 분위기를 크게 실감한다. 병원 외부에 선별 진료소를 세우고, 모든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모든 면회는 제한된다. 몇 년 전 메르스 때 응급실에 온 확진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는 병원은 그때보다는 준비된 모습으로 코로나19를 대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선별 진료소 서울 아산병원에 설치된 '코로나19' 선별 진료소
▲ "코로나19" 선별 진료소 서울 아산병원에 설치된 "코로나19" 선별 진료소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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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자 체온 체크 서울 아산병원 모든 입구에서 출입자의 체온을 체크한다.
▲ 출입자 체온 체크 서울 아산병원 모든 입구에서 출입자의 체온을 체크한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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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건물에 다녀간 확진자, 혹시 나도?

며느리는 몇 시간 후에 그냥 퇴원했다. 아직 분만할 때가 되지 않았다는 진단이었다. 아들 내외는 병원 근처에 살고 있었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걱정되었다. 오다가다 혹시라도 감염 의심자와 마주친다면.

그런데 아들 부부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지난주에 코로나19 확진자 중 한 명이 내가 일하는 곳 바로 옆 건물에서 근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의 동선을 보니 어쩌면 오다가다 그를 만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가 격리되기 전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식당은 나와 동료도 가끔 가는 식당이었다. 같은 날은 아니었지만, 그다음 날에 그 식당 옆에 있는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고, 퇴근할 때는 그 건물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샀다.

문제는, 이 모든 게 그런 일이 벌어진 며칠 후에야 알게 되었단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 식당은커녕 그 건물 근처에 갔을까. 퇴근 시간 후 알려진 그 소식에 회사 단톡방(단체대화방)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음 날 아침, 그 식당이 있는 건물 근처는 왠지 횅해 보였다. 전철역과 연결되는 길이라 평소에 사람이 많이 다녔는데 썰렁해진 것이다. 그나마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재빨리 지나갔다. 나는 그 건물과 되도록 멀리 떨어져 걸었다.

회사에 가니 동료들은 어쩌면 마주쳤을 수도 있는 그 확진자에 대해, 그리고 간혹 들렸던 그 식당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기침이나 재채기라도 하면 그쪽으로 눈초리가 날아갔다. 사실 난 설 즈음 감기에 걸렸다가 회복되었지만 기침이 간혹 나곤 했다. 신경이 쓰여서인지 가슴이 간질간질한 게 자꾸 기침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난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나지막하게 잔기침을 했다. 내게 쏠리는 눈초리가 느껴졌다.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잔기침이 계속 나오니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예전이면 그냥 지나쳤을 일이지만 때가 때니 만큼 민폐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마스크를 써도 민폐는 민폐였고 눈초리까지 막을 순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좀 무리를 하면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오갈 거리이기는 했다. 다만 마스크를 끼고 걸으니 숨이 가빴다.
 
병동 면회 제한 서울 아산병원의 병동 면회 제한 안내
▲ 병동 면회 제한 서울 아산병원의 병동 면회 제한 안내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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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안전하게 만날 날을 기다리며

그리고 지난 주말에 며느리는 여자아이를 낳았다. 엄마도 아이도 모두 건강하다고 전해왔다. 병원에 가서 직접 볼 수 없으니 아들이 대신 전해준 것이다. 얼마 후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목소리를 듣는데 마음이 짠했다. 힘이 다 빠진 목소리였지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며느리는 이제 막 엄마가 된 것이다. 하지만 옆에는 아기와 남편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부모라 하더라도 면회가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친정어머니와 친정아버지는 얼마나 보고 싶을까. 물어보니 며느리는 조금은 울먹이며 그렇다고 했다.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수화기 너머로 전해주었다. 코로나19가 좀 수그러지면 그때 만나자고 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다니. 작년에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단 소식을 들었을 때도, 며느리 배가 점점 불러와도 별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아기가 태어나도 그 증거인 사진을 봐도 실감이 나지 않는 건 여전했다.

사진이 아닌 아기를 내가 직접 만나고 안아 봤다면 달랐을까. 아기가 젖 토한 냄새나 똥오줌 냄새를 내 코로 직접 맡아 봤다면 "아, 내가 진짜로 할아버지가 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왔을까.    

며느리는 병원에서 퇴원 후 아기와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거기도 당분간은 남편 외에는 면회가 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손녀가 누워있는 모습만 CCTV로 볼 수 있을 뿐이다. 며느리나 아들이 보내준 사진과는 다르게 조금씩 움직인다. 하지만 만질 수도 없고 체온을 느낄 수도 없는 건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 감염병이 돌면 그 당사자들, 환자나 의료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격리는 의심받는 자만이 쓰는 굴레는 아니었다. 감염병을 막기 위한 적극적 방어는 당사자들이 아니더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기침이 잦아들 때까지는 되도록 사람들 많은 곳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실내는 물론 길에서도 마스크를 계속 끼고 다닐 예정이다. 그제 뉴스에서는 어떤 확진자가 퇴원하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인터뷰까지 했다. 이제 숨통이 좀 트였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는 상황을 보니 손녀가 앞으로 살아갈 환경이 걱정되었다. 평소에도 난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지는 것 같다. 손녀뿐 아니라 모든 아이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할아버지가 되니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나 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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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을 위해 하프타임을 보내는 50대 남자. 월간문학 등단 수필가이자 동화 공부 중인 작가. 그리고 여러 매체에 글을 연재 중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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