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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든피겨스> 스틸 샷
 <히든피겨스> 스틸 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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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보자. 국내에서 2017년 개봉했던 <히든 피겨스>는 NASA에서 근무했던 수학 천재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언제나 역사적 순간에는 남성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여성들은 기여를 하지 못했던 것 마냥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히든 피겨스>는 남성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흑인 여성들의 활약상을 다룬다. 

주인공들은 젠더와 인종적인 측면에서 약자였지만, 표면적으로는 차별과 싸워 '승리'했다. 인종별 화장실 구분을 없앨 수 있었고, 남성만 참여할 수 있는 중요한 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뒷맛이 깔끔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등장인물들이 차별에서 벗어난 건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차별을 덜어주는 상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장관급 여성 비율 30%'의 함정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던 '장관급 30%'를 볼 때마다 <히든 피겨스>가 생각난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 공직자·장관 30%'를 달성할 것이고, 임기 내에 단계적 남녀 동수내각을 실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지속적으로 여성을 기용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 

파격적인 인사도 있었다. 강경화 유엔 특별보좌관이 14년 만에 비외무고시 출신이자 최초의 여성 외교부장관으로 내정되었고, 피우진 전 육군 예비역 중령이 첫 여성 국가보훈처장으로 임명됐다. 그에 따라 언론들은 '여성 최초', '유리천장 깨졌다'는 표현을 쓰면서 앞 다투어 보도했다. 

물론 내각에서 장관급 여성의 비율을 높이는 일도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인선은 대통령의 의지가 상당 부분 반영되어야 가능하다. 또, '파격 인사'는 어디까지나 특별 케이스다. 풍부한 경력과 자격을 갖춘 여성 인재 중에서 '일부'를 기용한 것을 두고 '유리천장이 깨졌다'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뿐만 아니라 장관직 등은 유권자들을 직접적으로 만나면서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는 어때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활동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국회에 입성하는 여성 비율을 높여야 할 텐데, 여전히 여성에게 국회 문턱은 너무 높다. 2019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7%로, 국제의원연맹(IPU) 가입국들 중 118위다. 물론 처음으로 국회의원 여성할당제가 도입된 2004년 17대 국회는 여성 의원의 비율은 13%였고 이후 20대 국회까지 꾸준히 상승하긴 했다. 하지만 할당제가 도입되기 직전인 16대 국회에서의 여성 의원의 비율이 5.9%였던 것을 감안하면, 증가가 더딘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정치참여와 관련하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6년 보고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 대표성 확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전달하고 있다. 

* 폭넓은 의미의 '정치 영역'에서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낮다는 것은 단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젠더의 문제이며 젠더 관계의 변화를 통한 양성평등한 정치 문화 조성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임.
* 할당제가 운영되고 있음에도 여성의 정치대표성은 매우 낮은 수준임. 이는 실질적인 제재수단이 강력하지 않기 때문이며 할당제 시행 효과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국가들의 경우 이행에 대한 의무, 강행수단 등이 법률 등을 통해 제시되고 있었음. 
* 여성의 정치참여, 나아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를 위해선 여성의원의 수적 증가를 위한 공천 확대, 젠더정치를 위한 여성 정치인들의 역량 강화 등이 필요함 (중략) 젠더정치 교육 활성화, 여성 입문 기반 구축, 사회 문화전반에 걸쳐 정치가 남성에게 더 적합한 것임을 지워낼 수 있는 노력들이 필요함.
 
 
마이크 잡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최고위원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마이크 잡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최고위원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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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는 여성의 대표성 확대 문제를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로 인식할 때야 비로소 가능하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계속해서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것 같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2일 최고위원회에서 "(이번 총선에) 여성 30% 공천은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남 최고위원은 같은 날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이 상징적 존재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집단 내에 일정 수가 확보돼야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집권여당 민주당의 역할을 강조했다(관련 기사 : 민주당 최고위원의 우려 "약속했던 여성 공천 30% 쉽지 않다"). 

더 많은 여성들이 시민들을 대변할 수 있게 되길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의 역할이 이번 총선에서 중요해지는 것이다. 정당 지도부의 할당제 이행 의지도 중요하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이 없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동일한 보고서에서도 지적하는바, 대다수 국가에서는 할당제를 법으로 강제한 이후 여성의 정치 대표성이 높아졌지만, 아르헨티나는 한때 할당제 실시 후 여성의원의 비율이 오히려 감소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반적인 정치문화, 즉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인식 자체의 토대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선거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지만, 선거를 통해 시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헌법기관을 선출하는 일은 정치적인 효능감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이번에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적용되는 첫 선거이기도 하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시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전보다 더 많이 배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각 정당들의 복잡한 셈법을 뒤로하고,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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