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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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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까치 설날과 우리 우리 설날이 이제 막 지난 지금, 우리만큼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친구가 있으니, 바로 냉장고이다. 이 친구는 명절이 지나면 주인이 가져온 갖가지 음식을 보관하느라 피곤에 시달린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차례 음식은 굉장히 다양하고 스펙타클한 조합을 가지고 있다. 전, 고기, 만두, 잡채, 떡국, 포, 한과, 각종 과일까지 한 상에 올라가는 이 음식들을 명절 한끼에 소화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설 연휴 동안 모두 먹고 즐기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이 남은 음식들은 냉동실 한켠에서 딱딱하게 굳어있다 버려지기 일수다. 이 아까운 음식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다행스럽게도 냉장고의 다른 한 켠에는 이를 해결해줄 멋진 친구가 있다. 바로 맥주다.

맥주는 몰트, 홉, 효모 그리고 물이라는 네 가지 재료가 주는 다양한 조합과 브루어의 아이디어로 인해 백여개가 넘는 스타일이 가능하다. 설 음식의 스펙타클함을 상대하기에 훌륭한 술이다. 

맥주와 음식을 조합 또는 매칭(matching)하는 것을 푸드 페어링(Food Pairing)이라고 한다. 맥주가 가지고 있는 맛과 향, 알콜 게다가 색깔과 탄산까지, 넓고 깊은 맥주의 스펙트럼은 음식과의 다양한 페어링(pairing)을 통해 냉장고 속 잠자는 공주를 깨울 수 있다.

한국 만두와 독일 고제의 역사적 만남
 
 속이 꽉 찬 얇은 피만두도 이집의 별미다.
 만두 자료사진.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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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예쁘게 빚은 만두는 맥주와 환상적인 궁합을 보이는 음식이다. 특히 냉동실에 있는 남은 고기만두는 언제나 우리의 원픽이다. 얇은 피 속 두둑한 돼지고기와 그로 인한 육즙은 은은한 육향과 감칠맛으로 우리 입안을 행복하게 물들인다.  

이런 고기만두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맥주는 바이스비어(weissbier)다. 독일 정통 밀맥주인 바이스비어는 쓴맛이 낮고, 탄산이 풍부하며 은은한 바나나향과 날카로운 정향으로 둘러 쌓여있는 아름다운 여인과 같다. 

정향은 고기만두의 육향과 이내 친구가 된다. 정향을 만난 육향은 부드러운 실루엣이 되어 은은하게 퍼진다. 낮은 쓴맛은 감칠맛의 수호자다. 바이스비어의 부드럽고 낮은 쓴맛은 감칠맛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 준다. 또한 돼지고기의 지방으로 인한 느끼함은 풍부한 탄산이 해결할 것이다. 만두의 폭풍흡입이 예상되니 소화제를 준비할 것.

하지만 신김치가 잔뜩 들어간 김치만두라면 조금 다른 친구가 필요하다. 발효로 인한 강한 신맛과 묵은 풍미는 바이스비어가 감당하기에 너무 세다. 신김치의 풍미와 '맞짱'을 뜰 수 있지만 비슷한 성격을 가진 맥주 친구가 필요하다. 

이럴 때는 비슷한 풍미와 강도를 가진 고제(gose) 맥주가 어떨까? 고제는 김치와 같이 자연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는 독일 라이프치히 출신의 맥주다. 젖산균의 신맛과 야생효모에서 나오는, 김치와 비슷한 묵은 향은 이 둘을 베프로 만들어 줄 것이다. 만두를 통해 이루어지는 한국 김치와 독일 고제와의 역사적인 만남을 축복하라. 

전이 가진 치명적 느끼함은 '트리펠'로 해결
 
 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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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차례 음식의 꽃, 바로 전이다. 달걀에 코팅된 동태, 호박, 새우, 맛살과 같은 재료
가 기름에서 노릇하게 익을 때, 우리의 후각과 미각세포는 정신을 잃고 만다. 하지만 기름으로 인한 과한 느끼함은 이내 냉동실 행을 예약한다. 전을 맛있게 먹기 위해 기름의 느끼함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이다. 

이때는 트리펠(tripel)이 구세주가 될 수 있다. 트리펠은 9% 정도의 높은 알콜 도수와 풍부한 탄산을 가지고 있는 벨기에 친구다. 전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느끼함은 트리펠과 만나 깨끗하게 클렌징된다. 기름으로 코팅된 혀와 입안은 트리펠 한 모금으로 깔끔해지며 은은한 서양배와 꽃향은 전의 다양한 풍미와 멋지게 어울린다. 

수 십가지 전 중에 육전은 조금 다른 맥주와 함께 해도 좋다. 육향이 도드라지고 씹는 질감이 있는 육전은 풍부한 탄산과 부드러운 풍미를 가진 쾰쉬(Koslch)와 최고의 궁합을 보인다. 쾰쉬의 은은한 풀향은 육향과 멋드러지게 어우러지며 풍부한 탄산과 드라이한 바디는 느끼함을 저 멀리 날려버린다.  

이제 냉장고에 있는 전을 두려워 하지 말자. 맥주가 전의 느끼함에서 해방시켜 주리라.

퍽퍽한 산적 살려내는 마법의 '둔켈'
 
 소고기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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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양념이 되어 있는 두툼한 쇠고기 산적은 빠질 수 없는 차례 음식. 하지만 지방이 없는 퍽퍽한 육질은 안타깝지만 젓가락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한다.  

간장양념과 잘 어울리며 퍽퍽한 육질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친구가 없을까?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성격이 다른 친구라면 산적의 베프가 될 수 있다. 바로 둔켈(dunkel)이다. 

어두운 색의 라거(lager)인 둔켈은 산적의 간장 양념을 만나 짠맛을 감칠맛으로 바꿔주는 마법을 부린다.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이 둘은 처음 만나도 어색하지 않다. 둔켈은 간장의 짠맛을 살짝쿵 가라앉히고 감칠맛을 폭발시킨다. 

또한 둔켈의 낮은 알콜도수와 뭉근한 단맛은 기름이 적고 퍽퍽한 산적의 육질을 부드럽게 만든다. 친구의 장점은 살려주고 단점은 가려주는 둔켈은 말 그대로 산적의 천생연분이다.

맛있지만 헤비한 잡채 길들이는 '스타우트' 
 
 내게 잡채란, '시월드'의 상징이다.
 잡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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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소울 푸드(soul food)이다. 잡채의 시금치, 당근, 계란, 소고기 등이 만드는 향의 변주는 간장과 참기름 그리고 설탕을 통해 고급스럽게 정리된다. 적당한 짠맛과 감칠맛 그리고 씹을수록 느껴지는 단맛은 잡채의 매력이지만 한편으로는 느끼하고 무거워 많이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스타우트(stout), 어두운 색의 에일(ale)인 이 맥주는 느끼한 잡채 세계를 평정할 강호의 고수이다. 특히 로스티드(roasted) 풍미와 가벼운 바디를 가진 아이리시 드라이 스타우트(Irish dry stout)는 그동안 숨겨져 있던 비기(祕記)와 같다. 간장의 짠맛과 참기름의 고소한 풍미는 진하게 구운 몰트 향과 만나 멋진 조화를 이룬다. 또한 드라이한 바디는 잡채의 느끼함을 한결 가볍게 만든다. 전설로만 전해오는 잡채 무한흡입의 비기가 드디어 강호에 드러나는 격. 

한과의 장점 증폭시키는 '바이젠 도펠복'
 
 한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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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큰함이 가득한 우리의 디저트 한과. 동서양을 막론하고 디저트는 치명적인 즐거움을 주는 존재다. 테이블 위의 즐거움은 디저트를 통해 마무리된다. 맥주는 이 행복감을 유지시키는 도우미가 되어야 한다.  

한과류가 가지고 있는 단맛을 폭발시키고 특유의 끈적임을 제어하여 행복감을 이어줄 맥주는 바이젠 도펠복(weizen doppelbock)이다. 바이젠 도펠복의 뭉근한 단맛과 묵직한 바디는 한과가 가지고 있는 달큰함을 폭발시킨다. 또한 비교적 높은 알콜도수와 풍부한 탄산은 한과의 끈적이는 느낌을 저 멀리 날려 보내 치명적 즐거움을 지속시킨다. 

한과 종류에 따라 새콤한 과일향이 난다면 플랜더스 레드에일(flanders red ale)이나 푸룻 람빅(fruit lambic)이 좋을 수도 있다. 플랜더스 레드에일과 푸룻 람빅의 산미와 과일 풍미는 테이블 위의 색다른 즐거움을 안내할 특급 도우미가 될 것이다. 

맥주 푸드 페어링이라는 요술램프를 비벼볼까?

푸드 페어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다. 하지만 즐거움은 단순히 음식과 맥주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편안한 분위기, 건강한 몸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야 말로 푸드 페어링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냉장고에 설음식이 쌓여 있더라도 너무 고민하지 말자.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이 담겨있는 음식이 있고 바로 옆에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맥주도 있다. 이제 남은 차례 음식을 냉장고에서 해방시켜줄 요술 램프만 문지르면 된다. 푸드 페어링이라는 요술 램프를. 수리수리 마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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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맥주문화협회장으로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beerg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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