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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비법'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특별한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만이 무조건 맞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로지 하나뿐인 엄마의 레시피입니다. 엄마의 일흔살 밥상을 차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음식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합니다.[기자말]
 엄마의 시금치나물
 엄마의 시금치나물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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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는 내게 각별한 식재료다. 어린 시절 나는 시금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뽀빠이나 먹는 채소라고 생각했다. 내가 시금치에 맛을 들인 건 첫 아이를 낳고 난 후였다.

때는 겨울.
나는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산후조리를 하던 한 달여 간, 엄마는 건새우와 표고버섯을 넣은 미역국과 함께 시금치나물을 자주 만들어주었다. 그때 시금치는 내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섬초'라 했다. 그 달큰하고 고소한 맛이라니. 섬초는 왜 맛있는 걸까. 엄마의 이야기인즉슨,

"섬초는 섬에서 자란 시금치라고 해서 섬초라고 하는데, 햇볕을 많이 받고 해풍을 많이 받아서 달짝 지근하지. 뿌리가 짧고 통통하고 질기지 않아서 맛있지."

여기저기 정보를 검색해도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 여튼 엄마도 어린 시절에는 시금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시금치를 먹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한다.

엄마의 기억 속에 시금치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우리의 소풍 김밥을 싸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소풍날 아침, 내 딴에는 일찍 일어난다고 일어났는데도 엄마는 그때 이미 김밥 재료를 다 만들고 김밥을 말고 계셨다. 엄마는 도대체 몇 시부터 일어나서 움직인 걸까.

엄마도 그때까지는 시금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섬초'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맛에 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엄마가 어린 시절에는 섬초가 없었던 걸까(자료를 찾아보니 전남 비안도에서 1950년대부터 섬초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상업적으로 판매하기 시작. 1996년 비금농협에서 '섬초'라는 이름을 붙여 상표등록을 했다고 한다).
   
생과 사를 아슬아슬 오가는 시금치여

이제 나물을 무쳐보자. 시금치 나물을 맛있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내가 만든 시금치나물은 대부분 물러터졌다. 엄마의 설명에 의하면 시금치 나물의 처음이자 끝은 '데치기'다. 데치기에 시금치 나물의 생사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중요한 대목. 물은 시금치 다 잠기도록 충분히 넣어준다. 그래야 시금치가 잘 삶아지기 때문이다. 물에 소금을 넣고 팔팔 끓인 뒤, 그 끓는 물에 시금치를 넣고 시금치를 한 번 뒤척여준다. 그리고 곧바로 불을 끄고 시금치를 건져낸다. 이 타이밍이 아주 중요한데, 몇 초 더 미적거렸다가 시금치는 '저 세상 음식'이 되기 십상이다. 시금치 나물은 생과 사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가운데서 태어나는 음식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금치를 저 세상으로 보냈던가. 대부분은 너무 '충분히' 삶았다. 늘 2~3초 더 미련을 부렸다. 아뿔싸하고 그제서야 꺼내면 시금치는 이미 축축 늘어져 있었다. 매사가 그랬다. 조금 더 늦게 가도 괜찮겠지... 조금 더 있다가 해도 괜찮겠지. 그러다가 낭패를 본 적이 많았다. 시금치의 2~3초에서 내 미련을 본다.

타이밍을 아는 엄마의 손길은 늘 단호하다. 채반에 건져올렸을 때 시금치의 이파리가 쫑긋 살아 있다면 잘 데쳐진 것이다. 그 시금치를 이제 손으로 지그시 짠다.

"절대 꾹 누르지 않고 손에 힘만 줘야 돼. 아끼듯이 짜야 돼. 지긋이 누르면서."

엄마가 아무리 설명하지만, 그 '감'은 도대체 잡히지 않는다. 알 듯 모를 듯하다. 도대체 몇 번 시금치를 짜봐야 그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마찬가지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글을 써야, 그 경지를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간단해 보이는 시금치 나물에도 참 많은 인간적 갈등과 고뇌와 고민과 결정의 순간들이 배어 있다.

이렇게 고이 짠 시금치는 양념장을 담은 질그릇에 넣는다. 나는 지금껏 시금치 위에 양념장을 올리고 무쳤는데 엄마는 반대다. 양념장을 미리 놓고 무쳐야 더 잘 섞인단다. 그리고 위에 다진 파를 올리고 무친다. 난 지금까지 '착착' 소리나게 야무지게 무쳐야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니다. 엄마는 말한다.

"털면서 무쳐야 된다."

직접 해 보시라.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무치는 건 서로 섞이게 조여줘야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시금치 나물은 서로의 공간을 내줘야 한다. 원재료를 살려야 한다. 양념은 어디까지 양념이니까. 너무 주물대면 시금치 결이 죽는다. 너무 질척거리는 주변 사람 때문에 피곤해 하는 모양새같다. 시금치, 알고 보면 예민한 녀석이다.

밭에서 방금 딴 싱싱한 시금치는 흙만 탈탈 털면 별로 손질할 것도 없다. 엄마 말대로 '엔간하면' 다 먹는다. 특히 겨울 시금치는 뿌리가 살아 있다. 추울수록 시금치 뿌리는 더 달달하고 고소해진다. 겨울철 채소들의 특징이다. 추워야 더 살아난다.

그래서일까. 추운 겨울에 엄마가 만들어준 시금치 나물을 먹으면 왠지 씩씩해지는 기분이다. 그 흔한 모양새와 평범한 색깔에도 위로를 받는다. 녹색을 좋아하는 엄마가 만든 녹색 시금치 나물. 시금치는 겨울의 푸른 맛이다.
 
▲ 병맛으로 만들어본 시금치나물 레시피동영상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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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환 여사의 시금치나물
1. 시금치를 다듬는다. 뿌리 근처의 흙만 털고, 잎사귀가 누렇게 변한 것만 살짝 떼어내고, '엔간하면' 다 먹는다.
2. 물에 소금을 넣고 팔팔 끓인다.
(Tip :물은 시금치를 담뿍 껴안을 만큼 많아야 좋다. 그래야 시금치가 잘 삶아진다)
3.끓는 물에 다듬은 시금치를 넣고 한번 뒤집어 준다. 그리고 가스불을 끈다.
4. 채반에 시금치를 받친 뒤, 두 손으로 '살포시' 짠다. 절대 꾹 누르지 않고, '아끼듯이' 짜야한다. 지긋이 누르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감'은 각자의 시행착오 끝에 얻을 것.
5. 양념장 준비. 양념장은 소금 1티스푼, 참기름 1티스푼 반
(Tip: 간장이 아닌 소금으로 양념하는 이유. 간장은 맛을 낼 때, 사용한다. 소금은 간을 맞추기 위해 사용하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음식이 너무 '시커매'진다. 말린 토란대나 고구마순, 시래기를 앙념할 때는 간장 넣고 주물럭주물럭해야 맛있단다.)
6. 양념장을 넣은 그릇에 살포시 짠 시금치를 놓는다.
7. 다진 파를 넣고, 털면서 무친다. 마지막에 통깨 넣고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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