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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온 나라의 민심은 들끓었다. 전국의 선각자들은 나라를 되찾는 길은 오직 국민의 힘뿐이고, 국민이 힘을 가지려면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아 민족주의 신문화운동을 벌였습니다.
 
구례 호양학교
 구례 호양학교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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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대표적인 신문화 학교는 1907년에 설립된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와 전남 창평의 창평의숙학회, 1908년에 설립된 평양의 대성학교입니다.
 
구례 호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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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지역에서도 광의면 출신 천사 왕석보 선생의 후학인 운초 왕수환, 지촌 권봉수, 남산 왕재소, 우천 박해룡, 석농 권석호 등이 주도하여 지금의 위치에 민족주의 교육을 목표로 1908년 8월 신문화 교육기관인 구례 사립 호양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구례 호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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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양학교는 뜻있는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설립되었고 매천 황현 선생이 직접 '재정 등을 지원해 좋은 일을 도모하자'라는 취지의 '모연소'를 작성하여 지역의 유림과 재력가로부터 부족한 학교 운영기금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타 사립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특징이며 구례 지역 최초의 신교육 문화의 발상지로서 구례의 자랑입니다. 또 그 설립정신은 우국과 애국충절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구례 호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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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람들은 이 호양학교를 통해 독립만세운동의 기초를 세웠고 신간회, 금란회 등을 조직하여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호양학교는 일제의 탄압으로 1920년 폐교되었고 2006년에 복원되어 현재는 학생들의 예절 교육 및 정신 교육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태그:#구례, #호양학교, #천사왕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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