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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관광객들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면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 몬주익 언덕이다. 그곳에 가면 마라톤 영웅 황영조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상하이에 가면 한국인이 꼭 들르는 곳이 루쉰(훙커우) 공원이다.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미얀마는 어떨까? 미얀마에 온 한국인들이 들르는 곳은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지'이다.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을 비롯한 총 9명의 독립투사들만이 묻힌 아웅산 국립묘지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을 비롯한 총 9명의 독립투사들만이 묻힌 아웅산 국립묘지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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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국립묘지'는 한국의 동작동 국립묘지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을 비롯한 총 9명의 독립투사들만이 묻힌 곳이다. 이들은 1947년 7월 19일 회의 중 암살범에 의해 희생당했다.

이곳을 굳이 한국인 관광객들이 들르는 까닭은 '아웅산 테러' 때 희생당한 분들의 순국사절 추모비(2014년 건립)에 헌화, 묵념하기 위해서이다.

미얀마 여행을 떠나오기 바로 전인 지난 16일 이기백 전 국방부 장관이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의 별세 소식을 전하는 언론마다 빠지지 않은 이야기가 '아웅산 테러'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야기였다. 그는 테러 당시 머리와 배에 파편이 박히고 다리를 크게 다쳤지만, 10시간 이상 수술 끝에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은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아웅산 테러가 일어난 1983년은 기자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그 당시 희생당한 열일곱 분 중 유달리 이범석 외무장관이 기억에 남는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 했는데, 가이드의 생생한 설명 덕분에 분단의 아픔을 다시 한번 일깨울 수 있었다.

당초 동남아 순방지에 미얀마는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군부 정권이라는 공통점에 착안해서 뒤늦게 순방지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 첩보를 미리 입수한 북한은 3인의 공작조를 미얀마에 보내 전두환 대통령 암살을 준비했다. 이들은 아웅산 묘지 참배 계획을 입수하고, 전날 미리 폭탄을 설치한 후 얼마 떨어진 3층 건물에서 전두환 대통령 방문에 맞춰 폭탄을 터뜨릴 계획을 세운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영빈관에 머물러 있었고, 다른 정부 고위 관료들은 인근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10월 9일 오전 참배를 앞두고 정부 고위 관료들은 미리 도착해서 도열해있었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을 위해 준비된 의전 차량이 고장을 일으켜 교체되는 바람에 전두환 대통령은 당초 일정보다 늦게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두환 대통령은 영빈관 직원들을 치하하는 시간을 갖고, 기다리고 있을 장차관들을 위해 비서실장을 우선 보냈다.

이계철 주미얀마 대사 역시 관저에서 머물다 출발하여 서둘러 아웅산 국립공원으로 향했는데, 그의 외모가 전두환 대통령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비서실장과 주 미얀마 대사가 도착하자, 미얀마 의전 관계자는 전두환 대통령이 도착한 것으로 판단하여 의장대 연주를 시작하였고, 그 연주 소리에 북한 공작원은 폭파 버튼을 눌러 행사장이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사실 그 전날 경호팀에서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사전 답사를 강력히 요청했으나 미얀마 군부에서 자신들이 이미 확인을 한 상태라고 자존심 상해했으며, 당시 미얀마 경호 책임자가 권력투쟁에 밀려 경질된 상황까지 겹쳐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불상사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 후 북한 공작조는 미리 준비된 탈출로를 따라 양곤항으로 가서 준비된 북한 선박을 타고 탈출할 예정이었으나, 미얀마 정부가 남북 관계를 고려하여 북한 선박을 미리 떠나게 함으로 그들은 추격한 미얀마 군경과 총격전 끝에 신기철 씨는 현장에서 사살되고, 체포된 김진수(진용진이라는 설도 있다)는 1986년에 사형이 집행되었고, 강민철은 자백을 한 점을 들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2008년 53세에 옥사했다고 한다.

미얀마 정부는 이후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했다가 2006년 다시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사실 오랫동안 미얀마 정부는 '아웅산사태'를 치욕스럽게 여겨 한국인의 현장 접근을 막아왔고, 추모비 건립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기백 전 장관을 비롯하여 교민들의 노력 끝에 2014년에야 관리소 옆에 순국사절 추모비를 건립할 수 있고, 추모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모든 순방 계획을 취소하고, 황급히 귀국했으며 미국 공군에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미 전투기 두 대를 파견하여 호위하게 했다고 한다.

이날 순직한 사람 중에는 심상우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도 있는데 그는 개그맨 심현섭의 아버지라고 한다. 
 
2014년에야 관리소 옆에 순국사절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가 가능해졌다.
 2014년에야 관리소 옆에 순국사절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가 가능해졌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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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앞 1달러, 1달러를 외치는 미얀마 아이들에게 꽃을 사서 이범석 외무부 장관 앞에 꽃을 놓고 묵념을 했다. 다른 일행들도 각자 꽃을 놓고 추모의 시간을 갖었다.

그때 살아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 후 감옥에 가고, 아직도 1021억 원의 미납 추징금을 내야 하는 형편이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데, 알츠하이머를 핑계로 재판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골프를 치고, 12.12 기념 만찬을 벌이는 등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를 모시다 먼저 순국한 열일곱 분의 장차관들은 그런 전두환 전대통령의 행태를 보며 어떤 마음일까 싶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그런 대결의 역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고, 핵 위협으로 더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이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미얀마, #아웅산 테러,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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