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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함에도 배제당하고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취급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장애인의 삶을 조명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몸 상태가 장애를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장애를 만드는 것인가. 어떤 이들은 과거보다 장애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나 나아진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회는 이들을 온전히 품지 못하고 있다.

고인이 된 25살의 장애인 청년노동자 설요한씨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그를 '거부'했는지 알 수 있다. 지난 12월 18일 오후 대학로에 위치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일터 '들다방'에서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정책실장을 만나 도대체 무엇이 고인을 극단적 선택으로 밀어붙인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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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장애인 청년노동자를 죽음에 내몰았나

3년 전이었던 2017년,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는 중증장애인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 제외 조항을 삭제하고, 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 개 확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개혁하라는 요구를 하며 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점거했었다. 끈질긴 투쟁의 성과로 2018년에 고용노동부와 전장연은 중증장애인 ▲공공부문 일자리 1만 개 도입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개편 민관협의회체를 구성했다.

2019년에는 중증 장애인 노동권 보장과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중증 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을 내놓았다. 사업은 동료 상담, 자조모임 등 '동료지원활동'을 통해 비경제활동 또는 실업 상태에 있는 중증 장애인의 취업의욕을 높여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동료지원가의 자격은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에 따른 중증장애인이자 고용보험미가입자다. 본인 역시 중증장애인이면서 취업의사가 있는 중증장애인을 만나 경제활동을 촉진한다는 의미 있는 노동을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설요한씨의 죽음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고인은 지난 12월 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을 시작했다. 11월말 까지 여수지역의 중증장애인 40명을 발굴하고 개별상담을 하며, 장애인의 자조모임을 결성하여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12월 지자체와 지역장애인공단에서 중간 실사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그동안 진행했던 실적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기관에서 임금을 반납해야 한다는 많은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주변 동료와 가족에 의해 확인됐다. 그는 생의 마지막 날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지막 문자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가족들은 아들의 죽음은 업무 중 스트레스로 인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2017년 11월부터 85일간 점거 농성을 했을 때 3가지 요구를 했습니다. 3가지 요구가 서로 다른 정책적 요구 같지만 사실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죠. 근본적 배경은 1991년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이었습니다. 사실상 의무고용제 이외에는 장애인에 대한 국가와 지방정부의 고용 외 책임이 전무했죠. 정책 자체도 실패했지만 경증장애인 중심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비경제활동 인구로 구분이 되고, 특히나 발달장애인 중심으로 성인기에 가서 전공과로 가는 것까지 힘들지만 직업재활시설에 들어가는 것조차 바늘구멍 찾기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투쟁은 '보호'라는 미명하에 중증장애인 노동 문제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던 근본적 문제제기부터 출발했습니다.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라는 이름으로 사실은 공공부문이 담당해야할 영역, 노동이 우리 사회의 기여라는 측면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면 차라리 공공일자리라는 이름으로 중증장애인이 일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동료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동료지원활동, 지금은 취업연계라는 딱지가 붙어있지만 요. 지역사회를 바꿔나가는 권익옹호활동, 인권활동이나 문화예술 활동까지 그동안 제안했죠. 더불어 공공일자리를 만들어야 최저임금 폐지도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조현수 실장은 농성 투쟁 당시 주요하게 요구했던 사항 중 장애인고용공단 개혁 문제가 여전히 주요한 과제라고 했다. 이는 장애인 고용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1990년 1월 장애인고용촉진등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고 그해 9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설립됐다. 장애인이 직업생활을 통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업주의 장애인고용을 전문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세워졌다. 공단은 장애인 전체 고용률 40%, 고용의무사업체 의무고용 이행률 60%, 전체 인구대비 평균임금 수준 77%라는 '숫자' 중심의 '경영 목표'를 지향한다.

"농성 끝나고 공공일자리 관련 민관협의체 구성을 했을 때 고용노동부도 방향과 취지에 대해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 양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 실적으로 정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큰 쟁점이었죠. 우리가 얘기한 질적인 변화와 가치가 부처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떻게 계측이 가능하냐는 식이었어요. 기획재정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취업연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죠.

고용노동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중증장애인이 취업 의욕을 갖는게 중요한 과제였어요. 그것들이 교묘하게 결합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정부부처도 공단도 30년간 해결하지 못한 중증장애인 공용문제를 동료지원가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큰 착각입니다."


결국 양적 중심의, 숫자 중심의 기준은 동료지원가 사업 목적과 실제 운영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월 60시간의 노동 시간과 65만 9650원의 임금, 월 4명의 참여자 발굴, 동료지원활동 참여자 1명을 월 5회 만나 취업의욕 고취 및 직업연계 해야 한다는 부담감, 게다가 실적을 채우지 못할 경우 기관에서 임금을 반납해야 한다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기관에까지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에 아마 설요한씨 스스로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분명 동료지원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이들을 위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사람을 대면하는 일을 하다 보니 감정노동도 수반된다. '내가 이런걸 한다고 해서 취업이 되겠냐'는 질책 아닌 질책을 정부 대신 이들이 듣는다. 이 때문에 동료지원가들은 보람도 느끼지만 한편에선 자괴감도 느낀다.

중증장애인 노동권 - 경쟁, 실적이 아닌 협업의 가치 실현해야 

"장애 유형은 다양합니다. 다 같은 장애가 아닌 거죠. 제게 교육 받았던 한 분은 전맹의 시각장애인 여성이었는데 그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본인이 중도장애를 입은 중년의 남성에게 가서 어떤 동료지원을 할 수 있을까라고요. 시각장애인이라면 몰라도 지체장애라는 엄연히 경험 자체가 다른 분에게 '우리는 장애인이니까 동료예요'라고 하면서 지원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난해한거죠. 다른 장애 유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참여자분들이 취업으로 연결되는 분들은 거의 없지만, 취업 연결을 생각안할 수 없어요. 장애인의 현실이 취업을 하면 수급권이 박탈되니까요. 동료지원가 발굴할 때도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해요. 참여자 발굴 자체가 어렵죠."


조현수 실장은 이 사업이 개선할 지점이 상당히 많지만, 중증장애인 노동권 확대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중에서 가장 시급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실적, 경쟁 중심의 운영 원칙이라 지적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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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동료지원가는 재활 중심이면서 비장애인 기준이었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권리 중심이고 중증장애인 기준입니다. 누군가는 그 정도 서식, 일지 작성하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하겠지만 중증장애인 입장에서는 쉽지 않죠. 아무리 근로지원인이 있다고 해도 수행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에게 맞춰진 서식이라던지 작성법이 필요하죠.

중증장애인의 노동 문제를 고민하면 결국 협업을 고민안할 수 없어요. 모든 노동이라는 게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노동 문제라고 하면 개인의 노동능력, 건강의 문제로만 작동되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성찰, 고민으로 폭 넓게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의 가치를 생각할 때, 중증장애인 노동을 이야기할 때 협업을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실제 많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그런 고민을 안고 있죠. 기관에 부여되는 것은 성과와 실적이다 보니 협업에 대한 노력보다 개인이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버려요. 그런 구도에서 중증장애인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노동환경이 모두 장애인을 고려해서 만들어지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장애를 배제하지 않는, 장애인 노동자를 배제하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뇌병변 장애인들이 사무직 노동을 장시간 한다고 했을 때 자신에게 맞는 보조기나 환경이 마련되지 않아 힘을 과도하게 쓰게 되고, 이로 인해 관절염이 생기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적어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어지는 정책과 문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조현수 실장은 2017년 농성 당시 한 분의 발달장애인이 한 이야기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고 했다. 바로 '민주노총 조합원'이 되고 싶다고 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되기도 한다. 이런 바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노동의 범주, 정의를 다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 조현수 실장. 그는 이 문제가 절대 장애계 만의 싸움이 되지 않길 바란다며 함께 고민하고 연대해줄 것을 그리고 장애인 청년노동자였던 설요한씨를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전장연은 2020년 1월 1일 새해부터 서울고용노동청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2년 만에 다시 중증장애인 노동권 문제를 중심에 두고 다시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이들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공개 사과와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의 전면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학자 수전 웬델은 '장애는 구경거리가 아닌 모든 사람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 삶의 형태로 등장한 것'이라고 했다. 설요한씨의 살아생전 경험을 살펴봤을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그의 장애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몰이해는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얼마나 그동안 많은 '설요한'을 놓쳐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나래 상임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발행하는 노동안전보건잡지 <일터>에 실립니다.


태그:#장애인노동권, #장애인일자리, #공공일자리, #고용노동부, #설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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