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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겨울 거리. 잠시 시간을 내 슬프고 아픈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한 계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겨울 거리. 잠시 시간을 내 슬프고 아픈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한 계절이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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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풍족해서 아무 것도 모자라지 않는 부자가 아니어도 좋다. 최소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 노인과 장애인들, 정치·종교적 박해와 절대적 가난 탓에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도 배를 곯지는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이건 비단 나만의 희망사항은 아닐 것이다. 이성과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지구는 그처럼 아름답지도 공평하지도 못한 별이다. 이 명제 또한 상식과 이성을 갖춘 인간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삶에서 체득한 경험으로 이미 학습했을 터이니까.

그 이유가 자원의 부족이건, 첨단 기술력의 부재건, 부패한 정치인들 때문이건 '가난한 국가'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를 여러 차례 여행했다. 나 역시 한국에선 부자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지만, 보기 딱한 '상대적 가난' 앞에서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행에서 본 '절대적 가난'의 풍경들

인도의 뭄바이. 공항에 내려 숙소로 가는 동안 경악했다. 시간은 새벽 3시쯤. 택시와 화물트럭이 시속 100km 이상으로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수백 명이 이불 쪼가리 하나 덮지 않고 자고 있었다.

가난과 관련한 놀라움은 여행 기간 내내 계속됐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택시가 신호등 앞에 멈추거나, 정체된 도로에 서있을 때면 거의 예외 없이 손이나 발이 없는 아이들이 기자의 눈앞에서 서럽게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 숫자가 모두에게 일일이 몇 닢의 돈을 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시내도 뭄바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햄버거나 조각 피자, 탄산음료 따위를 파는 패스트푸드점 유리창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하염없이 나를 쳐다보는 어린애들을 보자니 차마 목구멍으로 빵 조각이 넘어가지 않았다. 주문한 음식을 통째 들고 나와 가게 앞 맨발의 아이에게 줬던 게 여러 번이다.

인도와 필리핀만이 아니다. '앙코르 와트'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시엠립과 프놈펜엔 크메르 루즈 집권 시절에 뿌려진 지뢰를 밟아 발목이 날아간 장애인 악사들이 곳곳에서 한 끼 밥을 위해 슬픈 현악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란의 사막도시 쉬라즈에선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이 한국 돈 500원도 되지 않는 싸구려 초콜릿을 팔아 일곱 식구의 밥을 벌고 있었다. 바구니에 담긴 초콜릿 20개쯤을 몽땅 사줬지만, 불편한 마음은 여전했다. 그렇다고 귀국하지 않고 매일 그 난민의 물건을 팔아줄 수도 없는 노릇.

한국에선 가난과 학대의 풍경이 사라졌을까

사실 비행기를 타고 가 먼 곳을 헤맬 것도 없다. 우리들 바로 곁에도 인도나 필리핀, 아프가니스탄이나 캄보디아 빈민처럼 아프고 슬픈 인생을 겨우겨우 견디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민소득 3만 달러,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 안에 든다는 한국임에도 제 때 밥을 챙겨 먹지 못하는 결식아동, 곰팡이 핀 쪽방에서 한 달에 20~30만 원으로 생활하는 독거노인, 정서적·육체적 학대와 모멸감에 눈물 흘리는 이주 노동자와 난민이 엄연히 존재한다. 누가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추위에 강물마저 얼어붙고, 산과 들판엔 따 먹을 과일 하나 없는 황량한 겨울이 오면 울컥울컥 떠오르는 시 한 편이 있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구세군 자선냄비에 자신의 성의를 보태는 학생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아는 듯해 보기에 흐뭇하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자신의 성의를 보태는 학생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아는 듯해 보기에 흐뭇하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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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자선냄비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연민을

인간만의 특징이라 할 연민과 동정이 사라진 자리엔 절제 없는 탐욕과 이기적 자기중심주의가 들어서기 십상이다.

옆집에서 아이가 매일같이 학대당하고 있어도, 노숙자가 역 앞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죽은 듯 엎드려 있어도 제 일이 아니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드물어진 세태.

신경림 시인은 '이기적인' 우리들에게 가난이 주는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을 다독일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를 아프게 묻고 있다. 또한 더 이상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하는' 세상이 아니기를 희구하고 있다.

그래서다.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란 시 속 구절은 동정과 연민이 사라져 더욱더 춥게 느껴지는 2019년 겨울 앞에 선 독자들을 반성하게 한다.

언제였던가? 가수이자 '음악을 통해 역사와 사회적 현상을 해석해낸' 작가 이지상이 웃음기 사라진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들려줬다. "아픈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자리를 함께 한 모두가 심각해졌다.

즐거움과 웃음이 아닌, 슬픔과 눈물이 '세상의 중심'이라니. 그 말에 담긴 역설적 의미를 여러 차례 곱씹어 보고서야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지상은 아마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식구들과 따스한 국과 밥으로 저녁을 먹으며 웃고 있을 때도 부모와 형제 하나 없는 외로운 이웃을 잊어서는 안 되고, 축하의 술잔이 마구잡이로 돌아가는 송년회와 동창 모임에서도 기댈 선후배와 친구 없이 사는 또 다른 이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게 타자의 고통을 더불어 아파해줄 수 있는 인간이고, 그런 인간이 중심에 서는 곳이 진짜 세상이다."

며칠 전엔 "계속되는 경제적 불황과 경기 침체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이 지난해에 비해 3%포인트 이상 줄어들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나부터 먼저 오늘 저녁엔 구세군 자선냄비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야겠다'는 소박한 결심을 해본다. 연민과 동정이 사라진 세상은 짐승들의 세계다. 다시 한 번 이지상을 인용한다.

"아픈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신경림, #이지상, #동정, #연민, #구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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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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