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아빠는 이제 따로 살기로 했지만 너랑 같이 있고 싶어." (아빠 찰리)

8살 헨리는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다. 친구처럼 장난치며 게임을 하고 나란히 누워 책을 읽고 그렇게 늘 함께였던 엄마 니콜과 아빠 찰리가 더는 같이 살지 않기로 했음을 그에게 알린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헨리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함없음도.  

헨리는 엄마와 뉴욕을 떠나 로스엔젤레스의 외가에서 잠시 지내다 새롭게 얻은 엄마 아빠의 집을 번갈아 오간다. 이혼 소송에 들어간 엄마 아빠를 따라 변호사 사무실도 가고 '모르는 아줌마'로부터 자신의 일상을 관찰 당하기도(법원의 양육권 결정을 위한 평가) 한다. 

그렇게 부모가 이혼을 하고 딱 1년이 지난 할로윈데이. 헨리는 우연히 엄마가 이혼 조종 기간에 아빠에 대해서 쓴 메모를 발견하고 마침 집에 찾아온 아빠와 그것을 같이 읽는다. 다음 대목을 읽던 아빠의 목소리가 떨렸고 그래서 올려다본 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음을 본다.  

'난 그를 본 지 2초 만에 사랑에 빠졌다. 난 평생 그를 사랑할 거다. 이제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엄마 니콜의 남편 찰리에 대한 메모 일부)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이미지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이미지 ⓒ 홈페이지

 

헨리는 어땠을까? 태어나 당연한 듯 같이 살아온 엄마 아빠가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했다고 할 때, 엄마와 놀고 싶지만 "아빠와 있을 차례"라는 이유로 억지로 집을 나설 때. 언젠가부터 잘 웃지 않는, 자신과 거리를 두고 저만치서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엄마 아빠를 볼 때.   

내 8살을 견주어 짐작해보면 분명 헨리도 느꼈을 것이다. 무언가 유쾌하지 않은 변화가 그들 가족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하지만 엄마 아빠의 "당신은 늘 내가 뭘 잘못했고 얼마나 부족한지 절실히 느끼게 했어!" "그래서 다른 여자랑 놀아났어?" "난 매일 눈뜰 때마다 당신이 죽길 바라!" 이런 살벌한 대화 속 깊은 갈등은 결코 몰랐을 것이다. 왜? 엄마 아빠가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당 부럽기도. 내가 아는 여러 부부들이(나의 부모님을 포함) 이혼 자체를 피하려다 그때까지 쌓아온 사랑의 감정, 기억까지 산산조각 내고 이혼을 선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자식을 위해서였음에도 그 날카로운 파편들이 자식들의 마음 깊숙이 박혀드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이 얼마쯤 혼란과 슬픔의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몇 번의 사랑과 이별 패키지 연애를 해보고 엄마 아빠도 부모이기 전에 각기 다른 한 사람, 남자 여자임을 자각하면 그들의 갈등, 헤어짐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날이 온다. 

그러니 이혼 자체가 나쁘거나 틀린 선택은 절대 될 수 없다. 부부에게는 물론 특히 자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모습으로 함께 살았는가'이다. 헨리는 분명 깨닫게 될 거다. 자신이 엄마 아빠로부터 그들의 이혼과는 별개로 얼마나 한결같이 큰 사랑을 받았는지. 헤어짐이 가장 힘들었을 당사자들이지만 최소한 자신 앞에서만은 갈등과 증오를 드러내지 않은 최선의 배려도.

나의 부모는 이혼을 하지 않았다. 행여나 당신들의 선택이 후에 자식의 사회생활, 결혼에 악영향을 미칠까 하는 우려가 컸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간 갈등과 증오를 숨기지 못했다. 해소하지 못하니 더욱 증폭됐고 그 갈등과 증오가 언제나 집 안 가득 차서 불안했고 자주 폭발해 모두가 피를 흘려야 했다. 그 상처는 성인이 된 지 한참인 지금도 아물지 않았고. 

만약 어떤 이유로든 결혼 생활이 지옥 같은 부모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들이 지켜야 할 것은 불행한 결혼이 아닌 사랑의 기억과 감정임을.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를 위해서. 자신이 불행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려 애쓰면 그 상대도 불행에 물들기 십상. 자식에겐 부모의 이혼이 아닌 불행한 부모가 진짜 상처가 된다. 부모가 그렇듯 자식도 행복한 부모를 볼 때 가장 행복하고 그런 삶을 배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이른 결론이 이혼이라면 죄책감에 망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어떻게'다.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이미지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이미지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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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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