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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라고 함께 외친 단체 활동가들과 예술가가 함께 제주로 떠났습니다. 제2공항 예정지에서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제주의 모습을 목격하고, 제주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각자의 제주를 마음에 품고, 한껏 느끼고 왔습니다. 제주에 대한 사랑과 아픔을 나눕니다.[기자말]
한때 내 별명은 구멍이었다. 사회생활 초창기,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일에 이른바 '빵꾸'를 많이 낸다고 상사가 붙인 별명이었다. "아유, 이 구멍..." 상사의 한숨을 뒤로하며 퇴근하던 날, 이 빡빡한 조직에 나 같은 구멍이라도 있어야 숨 쉴 틈이 생기는 거 아닌가 중얼거렸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내가 제주도를 좋아했나 보다. 실수 없이 매끈하게 제 할 일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치어 한없이 쪼그라든 기분이 들 때면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 노랫말처럼 "더이상 얽매이긴 우린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싶을 때 제주의 허허로움이 그리웠다.

그 허허로움이 답답함을 뚫어주었다. 멀미 날 것 같은 속이 시원해졌다. 출퇴근길 지하철에 눌려 납작해진 몸, 바늘 하나 꽂을 데 없을 것 같은 좁아진 마음이 제주도에 와서 비로소 큰 숨을 쉬고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경험.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갈수록 주변에는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숨 쉬는 섬, 제주
  
 제2공항 부지, 돌담 너머로 무밭이 보인다
 제2공항 부지, 돌담 너머로 무밭이 보인다
ⓒ 이매진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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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주는 그 자체가 숨 쉬는 섬이다. 살아있는 것치고 숨 쉬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만 제주 땅은 대부분 용암이 식어 굳어진 현무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용암이 급하게 식으면서 그 안에 갇혀있던 가스들이 구멍을 만들며 빠져나간 것이다. 구멍 숭숭 뚫린 이 검은 땅은 거센 바람, 세찬 비를 받아들이며 초록빛 생명을 품어왔다.

돌하르방에만 구멍이 있는 줄 알았던 나는 제주 땅 곳곳의 숨구멍을 보았다. 바로 숨골이다. 숨골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숨이 들고나는 골짜기 정도로 풀이하면 될까. 그런데 골짜기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숨골은 밭 한중간에도 있고 곶자왈 곳곳에 숨어있기도 했다. 작은 동굴 입구처럼 보이기도 했고 돌무더기 벌어진 틈새 같기도 했다.

제주 사람들 말에 따르면 비가 철철 내리는 날이면 숨골로 빗물이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오는 제주에서 숨골이 없으면 물이 안 빠져서 밭농사를 못 지을 거라고 했다. 제주 당근, 무가 맛있는 이유도 거기 있었다. 물을 가두지 못하는 제주 땅에서 무, 당근이 알아서 수분을 머금기 때문에 아삭한 식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숨골로 들어가는 물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제주도 사람들은 숨골을 통해 지하로 스며 들어간 물을 식수로 마시고 있다. 우리도 한 번쯤 마셔봤을 물, 삼다수가 그 물이다. 겨울에는 숨골에서 따뜻한 김이 올라오고 더운 여름에는 냉기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혼인지에서 찾은 한 숨골 입구에 가까이 가보니 과연 훈기가 느껴졌다. 거칠거칠한 빵 껍질 같은 땅 거죽 아래로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을까 생각하니 신기했다. 숨길이기도 물길이기도 한 그 구멍들. 보이지 않는 그 구멍들이 제주를 숨 쉬게 한다.
 
 제주 제2공항 부지에서 발견한 숨골
 제주 제2공항 부지에서 발견한 숨골
ⓒ 이매진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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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구멍들을 덮어버리는 매끈한 건물들

제주 제2공항 건설은 오름을 자르고 동굴을 메우지 않고서는 진행될 수 없다고 한다. 무와 당근, 귤이 자라는 밭이 아스팔트로 덮인 활주로가 될 것이다. 번쩍거리는 외장재를 두른 매끈한 건물들이 들어설 것이다. 관광업 종사 인구가 많기는 하지만 여전히 흙과 바다에 기대어 밥벌이하는 사람들이 많은 제주에서 지금의 풍경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수산리 청년 회장님은 결국 동네 사람들이 자기 살던 곳을 떠나는 수밖에 없을 거라 했다.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더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어진 동네를 차지하는 자들은 손마디가 울퉁불퉁하고 얼굴이 볕에 그을린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매끈한 얼굴을 한 자들일 것이다.

진은영 시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같은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진은영, <용산 멜랑콜리아>)이라고 읊었다. 제주 제2공항은 재앙이 될 것이라는 구호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시인의 말을 두려운 마음으로 떠올렸다.
 
 제2공항 부지를 찾은 답사단
 제2공항 부지를 찾은 답사단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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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은 죽음의 숨을 쉬는 일

물숨이라는 말이 있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좋은 물건을 하나라도 더 따려고 욕심을 내다가는 제 숨 길이를 넘는 물숨을 쉬게 되고 그러면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숨 길이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넘지 않는 것이 해녀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 많이, 더 편리하게, 더 빨리... 우리를 부추기는 욕망은 끝이 없다. 제주의 환경 수용력은 이미 한계 상황에 달해있다.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가 쌓여가고 제주 바다는 물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지고 있다.

연 관광객 1500만 명. 하와이보다 2배나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는데 더 많은 관광 수요를 위해 제2공항을 짓자는 것은 물숨을 쉬는 짓이다. 그 끝에는 파괴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생생하게 숨 쉬는 자연보다 번지르르한 쇼핑몰, 리조트가 중요한가? 농사짓고 물질하며 이대로 살게 해달라는 호소는 왜 개발, 수익, 효율 등의 이름 앞에 뭉개져야 하는가?

답답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던 길, 비자림 부근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숲입니다.'

그랬다. 제주는 온통 싸움 중이었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한 싸움 말이다. 철새가 날아오르는 하늘, 오래된 나무들이 우뚝한 숲, 검고 기름진 땅, 푸른빛 가득한 바다,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이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숨 쉬게 한다.

숨 쉴 수 없는 제주는 거대한 무덤이다. 사랑하는 것들이 이 땅에서 지금처럼 숨 쉴 수 있도록, 매끈한 건물에서 납작해진 사람들이 언제라도 찾아와 숨 쉴 수 있도록 우리는 싸울 것이다.

제주 제2공항, 제발 이제 그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치자'는 여성환경연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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