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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영국에서 치러진 조기총선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대한 찬반을 결정하는 선거에 가까웠다. 그리고 브렉시트 찬성 세력으로 볼 수 있는 보수당은 650석 중 368 석을 차지했다. 이번 총선은 2차대전 이후 치러진 총선 중 보수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선거 중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영국의 EU 탈퇴는 보다 가속화될 예정이다.

이번 보수당의 승리와 지난 브렉시트 선거는 런던 외의 지역들과 경제적으로 중간 이하에 해당하는 인구의 지지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승리였다. 그러나 보수당의 승리는 기존의 도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계급에 기반한 정당 대결 구조가 공고화 되어 있는 영국에서 경제적 중간 계급 이하의 유권자가 대거 보수당을 지지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중하층 이하에 해당하는 이들이라면 복지확대를 강조하는 노동당에 투표를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이들은 보수당을 지지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트럼프의 탄생 역시 미국의 중하층 계급의 지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건이었다. 기존 관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탄생은 어떤 관점으로 설명 되어야 할까. 이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한 책이 존재한다. 데이비드 굿하트가 집필한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2019, 원더박스)가 그 책이다.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데이비드 굿하트, 2019, 원더박스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데이비드 굿하트, 2019, 원더박스
ⓒ 원더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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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웨어(Anywhere) vs. 섬웨어(Somewhere)

우선 저자는 새로운 사회 균열 구조를 애니웨어(Anywhere)와 섬웨어(Somewhere)의 개념 정의와 분류를 통해 보여준다.

전형적인 애니웨어(Anywhere)는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대졸자들이다. 이들은 인구의 20~25%P를 이루고 있으며 노동당, 자민당, 녹색당, 스코틀랜드 독립당과 같은 진보정당에 투표하며 고향을 떠나 대학을 다니고 전문직에 종사한다. 즉, 애니웨어 집단 사회적 이동성이 높은 집단이며 소득 역시 상위 계층에 속한다. 이로 인해 이들은 정책 결정자 중 다수를 이루며 여론 시장에서도 큰 힘들 발휘한다. 이들은 국가나 고향에 대한 애정이 옅으며 개인주의와 능력주의를 신봉한다.

섬웨어(Somewhere)들은 인구의 50% 내외이며, 중간 소득을 벌며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취직한 형태가 많다. 이들은 과거 영국에 대한 향수가 있으며 국가나 고향에 애착 역시 강하다. 이들은 노동당을 지지하다가 영국독립당으로 지지정당을 바꾸었거나, 보수당 지지자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숫자로는 다수지만 여론시장에서 약한 영향력만을 갖는다.

 
애니웨어(Anywhere)와 섬웨어(Somewhere)의 특징
 애니웨어(Anywhere)와 섬웨어(Somewhere)의 특징
ⓒ 데이비드 굿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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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이 격돌한 지점이 바로 '이민' 문제이며, 그 상징적 사건이 영국의 유로존 탈퇴 문제가 걸렸던 브렉시트 투표였다. 영국의 권력 상층을 차지해온 애니웨어 계급이 밀어붙였던 이민정책 확대는 백인 하층 노동자 계급, 즉 섬웨어들이 문화적 상실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이들 섬웨어들이 정서적 반발을 일으킨 것이 브렉시트 투표 찬성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즉, 자신들의 기호에 맞게 과도하게 권력을 남용해온 애니웨어에 대한 섬웨어의 반격이 브렉시트 투표 찬성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에 대해 경제적 좌파, 우파로 나뉘어왔던 정치 구조가 개방 대 폐쇄라는 요인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지적하는 것이다.

외면 받아온 평범한 이들, 섬웨어(Somewhere)

섬웨어 집단은 보수 성향이 강하고 공동체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섬웨어 집단은 온건한 국가주의 성향을 보이며 문화와 경제에서의 급격한 변화, 대규모 이주, 과거와 달라진 성력할 등에 불편함을 느낀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하지 않은 형태의 개방만을 지향한다. 그리고 이들은 지난 세계화 기간 동안 자신들의 주장이 번번이 좌절되어온 이들이다.

30년 전만 해도 영국의 공론장에서 가장 큰 힘을 갖던 이들은 섬웨어였다. 섬웨어의 세계관이 곧 영국의 세계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애니웨어의 세계관이 영국의 세계관이 되었다. 그 상징적인 모습이 영국 노동당 당수이자 총리를 지냈던 토니 블레어의 주장이다. 토니 블레어는 세계화라는 변화는 불가피하며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분명 세계화는 애니웨어에게 유리하며 섬웨어에게 불리한 지점이 있는 변화였다.
 
영국의 근로빈곤층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영국의 근로빈곤층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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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섬웨어를 대표한다는 노동당의 당수이자 총리가 애니웨어에게 유리한 변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저자는 섬웨어 집단을 비판하지 않는다. 이들은 인종차별을 하는 것도 아니며, 이민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섬웨어 집단은 급격하고 대대적인 변화에 거부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브렉시트 찬성이었으며 영국 보수당의 대승이었다.

섬웨어(Somewhere)의 역습과 무너지고 있는 민주주의

저자는 위와 같은 섬웨어들에 대한 외면이 포퓰리즘 성장으로 이어졌음을 주장한다. 포퓰리즘은 대개 엘리트에 대한 적대감과 하나의 일반 의지(general will)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성장한다. 구체적으로 의회와 정당이 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그의 주변인들인 엘리트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는 불만을 품은 다수의 섬웨어들에 의해 포퓰리즘이 성장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미국의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저소득, 저학력 백인들의 트럼프 지지였다.

저자는 영국의 섬웨어 집단이 개방에 기반한 그간의 경제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리지 못하였고, 엘리트들을 반대하는 차원에서 포퓰리즘 운동으로 합류하였음을 지적한다. 또한 저자는 포퓰리즘이 경제현상이라기보다는 문화적 현상으로서 경제적으로 유리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거부감에서 지지하는 흐름이라는 점 역시 지적한다. 위와 같은 배경이 있기에 포퓰리즘은 좌파, 우파, 민족주의, 중도주의 모든 진영에서 그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포퓰리즘 정당은 노동자 계급 정당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을 대변해주는 정당, 즉 섬웨어를 대변해주는 정당이 포퓰리즘 정당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각 국의 노동당들은 이에 더해 고학력자들이 자유주의, 생태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현상까지 겹쳐서 매우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진보 정당들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노동 계급은 이에 대해 반대하는 정서를 지녔지만 이들을 대변한다는 진보정당들은 이민 문제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내걸 수도 없었고 두루뭉술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잠시 멈추어야 할 때

저자는 애니웨어 대 섬웨어라는, 아직까지는 잠복하고 있는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우선 저자는 비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된 온건한 포퓰리즘을 주목한다. 이들이 브렉시트와 트럼프를 지지한 이들이라는 것이다.

영국에서의 이들은 신노동당 집권기에 외면 받아왔다. 신노동당은 이민과 급격한 사회변화라는 애니웨어적 사고에 경도되어 이를 우려하던 평범한 사회구성원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보수당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사회권력에서 외면당한 이들이 온건한 포퓰리스트가 되어 브렉시트와 영국독립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섬웨어를 위한 정책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에 대한 애니웨어의 반격으로 인해 교착상태가 유지될 것으로 저자는 예상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브렉시트나 트럼프 당선과 같은 사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비례대표제를 통해 포퓰리즘 정당이 책임감 있는 정당으로 변할 수 있게 유도하며, 단기 이민자들에게 지원되는 복지를 축소하며 공공부문에서 영국시민을 우선 채용해야 한다는 도전적 제언도 더한다. 저자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영국에서의 섬웨어와 애니웨어의 공존과 화해이기 때문이다.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데이비드 굿하트 (지은이), 김경락 (옮긴이), 원더박스(2019)


태그:#브렉시트, #섬웨어, #애니웨어,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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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사회복지학 학사 졸업. 사회학 석사 졸업. 사회학 박사 수료. 현직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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