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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친일파 생가가 '탄생지?'... 황당한 안내판
② "친일파 '탄생지' 안내판, 아직도 버젓이 서 있다"

일제에 부역한 사실을 '공사에 헌신했다'라고 표현하는 등 인촌 김성수 생가에서 친일 미화 안내판을 보고 고창군 홈페이지 게시판에 집단 항의를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가까이 지나서 군청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동안 내용을 수정하거나 안내판 자체를 철거해 달라는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내부에서 나름 심사숙고했을 텐데, 답변은 예상대로 두루뭉술했다. 끝을 흐리는 그의 대답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함이 역력했다.

"왜곡한 건 맞지만..."
 
인촌 김성수 생가의 안내판 정부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인정된 김성수, 김연수 형제가 마치 애국지사인 양 서술되어 있다.
▲ 인촌 김성수 생가의 안내판 정부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인정된 김성수, 김연수 형제가 마치 애국지사인 양 서술되어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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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인촌 김성수 생가 안내판은 그 집안의 후손들이 세운 것이라, 우리 군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비록 안내판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건 맞지만, 현행법상 사유지에 세운 사유재산이라서 아무리 공공기관이라도 함부로 할 수가 없으니 양해 바랍니다."

결국 안내판을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답변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사유지 안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역사를 왜곡하든, 정의를 조롱하든, 사유재산권이 가장 중요한 권리라는 말을 공무원의 입을 통해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곳이 사유재산이라는 것도 쉬이 납득되지 않았다. 현재 인촌 생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록 국보나 보물처럼 국가 지정 문화재보다는 '급'이 낮다고 해도, 엄연히 지방 정부로부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유산이다. 문화유산이 공공의 자산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안내판을 후손들이 세웠을지언정 그것을 읽는 이들은 부러 그곳을 찾아온 관광객들이다. 왜곡된 내용을 그들이 마치 사실인 양 받아들이게 될 텐데, 사유재산이라며 나 몰라라 하는 건 담당 기관의 직무유기 아니냐고 따졌다. 최소한 그곳에 문화유산 해설사라도 상시 배치해 사실을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역사에 문외한인 관광객들을 탓할 순 없지 않느냐는 추궁에 그는 연신 현재로선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역사 왜곡을 일삼아도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게 현행법이라면, 담당 공무원으로서 법 개정에 당장 팔을 걷어붙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대신 군청에서 관계자들끼리 대안을 협의 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추후 그 안내판 옆에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공인된 내용과 대법원의 최종 판결문 등을 기록한 팻말을 세울 계획입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인촌 생가의 대문 앞에는 세 가지 안내판이 나란히 세워지게 될 것이다. 사다리꼴 스탠드 형의 공식 문화재 표지판과 문제의 안내판, 그리고 군청에서 따로 세운다는 팻말이 그것이다. 현재 문제의 안내판은 고작 A4 용지 두 장 남짓 크기의 공식 표지판을 압도하고 있어, 세우겠다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크기도 마땅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 속 한 단어가 자꾸만 귀에 거슬렸다. 바로 '추후'라는 것. '검토'라는 단어와 함께 수년 전부터 숱하게 들어왔던 말이다. 두루뭉수리 나중이라고 눙치지 말고, 그때가 정확히 언제냐고 물었더니 내년에 예산을 반영하고 검토를 거쳐 정해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결국 '검토 후 조치하겠다'는 말로 다시 회귀한 셈이다.

'추후'라는 말

사실 새 안내판을 세우고자 결정했다면, 기록할 내용은 물론, 예산과 시간은 그다지 문제될 것 없다. 담당자에게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렀지만, 오로지 군수든 담당 부서장이든 결정권자의 의지의 문제일 뿐, 다른 건 핑계에 불과하다. 지금이 아닌, 내년을 들먹이는 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담당자가 바뀌게 되면 똑같은 과정을 다시 반복하게 될 것 같아서다.

거듭 새 안내판을 세울 기한을 확정할 수 있는지를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여전히 두루뭉술했다. 아직 확정된 바는 없지만 담당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 고작 이런 답변을 듣자고 수차례 글을 쓰지도 않았고, 바쁜 지인들을 설득해 함께 방문한 것도 아니다. 하여 그에게 역으로 나름의 해결책을 제안했다.

인촌기념사업회나 하다못해 울산김씨 문중에 지방정부의 이름으로 공문을 보내 안내판 내용을 수정하거나 철거해달라고 요청하라고 했다. 공문에 기한을 못 박고, 정해진 기한을 넘기고도 처리되지 않으면 지방정부가 임의 조치하겠다는 내용을 명시하라고 주문했다. 명백한 역사 왜곡인데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조차 무시하는 내용이므로,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저들이 먼저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목청을 돋우진 못할 것이다.

이런 제안에 담당자는 대번 탐탁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봐야 지방정부가 보낸 공문 따윈 대놓고 무시할 테고, 만약 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철거를 하게 되면, 사유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걸며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해결이 어렵다고 말한 근거가 사유재산권도, 현행법도 아니었던 셈이다. 곧, 지방정부의 일개 담당자로서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기득권 세력과 맞서는 게 두려웠던 거다. 그의 말을 에둘러 표현하자면, '체급'이 하늘과 땅 차이인데, 관광객들이 자꾸만 맞서 싸우라고 하니 난감하다는 이야기였다.

저들의 권세가 두려워 역사 왜곡과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척 눈 감는다면, 우리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외면하는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을 욕할 수도 없다. 역사와 정의의 잣대가 안팎으로 다르다면 어느 누가 진정성을 믿어줄까.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문제의 안내판 철거와 같은 친일잔재청산 노력은 별개일 순 없다.

"당신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급여를 받고 살아가는 공무원입니다. 버젓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문화재 안내판을 교체하는 것은 당신들의 '공무'입니다. 기득권 세력 앞에서 눈치를 살피는 건, 공무원으로서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짓입니다. 부디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을 믿고 지금 당장 '공무'를 엄정하게 집행해주십시오."

마지막 남긴 이 말에, 그는 다음에 또 연락하자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그가 다시 연락할 일은 없을 듯하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미 '답변 완료'라는 메시지가 떴다. 정작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는데, 마치 다 해결된 것처럼 답을 달아놓았다. 이번 주 토요일(28일)에도 청소년들과 함께 인촌 생가를 다시 찾아간다.

역사 왜곡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안내판 하나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는 공무원들의 소심한 행태가 안타깝다. 그래놓고선 무슨 실적 올렸다는 듯 서둘러 '답변 완료'를 단 그들의 부지런함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문제의 안내판 앞에서 매번 사람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첨삭 지도하듯 짚어주어야 하는 인솔자의 처지도 괴롭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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