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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북산악연맹 비장애인 산악인과 추진복지재단 발달장애 청소년이 함께 걸으면서 만들어낸 땀내나는 이야기입니다.[기자말]
많은 분들의 배웅을 받고 떠납니다!
 많은 분들의 배웅을 받고 떠납니다!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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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네팔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글을 쓸 생각이었다. 지금은 귀국한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이다. 그 사이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거나 양손에 마비가 와서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백수다. 정확히는 작가지망생으로, 바쁜 일은 전혀 없다. 고정적인 스케줄이라면 일요일마다 산에 가는 일이 전부다.

그런데도 이제껏 쓰기를 미뤄온 이유는 '제대 후유증' 때문이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나로서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군대에서 생사고락을 하고, 제대를 하면 당분간은 사회에 적응하느라 어리둥절할 것이다. 또 가능하면 군대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왠지 모를 향수에 젖어 군대 얘기를 떠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현상.

눈이 오면 제설작업했던 것이 생각나고, 축구를 보다 보면 다리가 제멋대로 움찔거리며 당장이라도 운동장에 뛰어들고 싶을 것이다. 마트에서 초코파이를 발견하게 되면 아련한 눈길을 거두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군대와 비교하는 것이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나한테는 그와 비견할만한 경험이었다. 12명의 원정대원들과 스물다섯 끼의 밥을 식판에 담아서 먹었다. 아침 기상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그날 산행 일정에 맞춰서 각자 해야 할 지령이 전달되면 그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쓰고 나니 ('고참'들) 얼굴이 떠오르고, 손가락이 오므려지기도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써보려고 한다. 가능하다면 초코파이라도 먹으면서 읽기를 권하고 싶다. 미리 말해두지만 단체 생활로 인한 어려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무엇이 있었는지는 나도 글을 쓰면서 찾아가려고 한다. 다시 히말라야에 오르는 심정이 되어 본다.

깨끗한 건 꿈도 꾸지 말아야 했다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 도착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 도착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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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오후 2시 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으로 날아갔다. 총 비행 시간은 6시간 40분. 이 시간 동안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할 만큼 들떠 있는 참가자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인왕이었다.

승무원이 음료 카트를 밀고 통로에 들어설 때부터 인왕이는 "저기 뭐가 든 거예요?" 하는 질문을 거듭했다. 점점 자기 차례가 다가옴에 따라 인왕이의 흥분도 고조되는 것 같았다. 겨우 콜라 한 잔 받아들고 감격하는 인왕이를 보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모든 게 신기하고, 감탄할 것들이었다. 좌석 앞에 달린 모니터로 영화를 보는 것도, 기내식을 먹는 것도 말이다. 오히려 태연한 내가 이상했을 테다.

공항에 도착해서 비자발급을 받는데, 관광객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았다. 더욱 놀라운 건 공항 직원들의 느린 업무 처리 속도였다.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는데, 대기줄은 전혀 줄어들지가 않았다. 장장 2시간 30분을 기다려 공항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기다리고 있던 현지 가이드가 대원 모두에게 메리골드 꽃 목걸이를 걸어주며 환영을 해주었다. 나는 간신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입국 심사, 줄어들지 않는 줄
 입국 심사, 줄어들지 않는 줄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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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네팔은 '다사인'이라는 우리나라의 추석과 같은 명절 기간이었다. 그래서 공항에 직원도 적고 입국자들이 많았나 싶기도 했다. 아니, 한국의 빠른 속도에 길들여진 우리가 네팔 속도에 맞추는 신고식을 한바탕 한 건지도 모른다.

저녁은 카트만두의 한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호텔로 갔다. 호텔 로비에서 직원이 우리의 이마에 빨간 연지를 찍어주었다. 이 붉은 점을 '티카'라고 했다. 일종의 부적의 의미가 있기도 하고, 네팔에서는 다사인 축제기간에 티카를 찍어준다고 가이드가 설명해줬다.

아직은 네팔을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트리뷰반 공항에서 경험한 네팔식 수세식 화장실 빼고는. 좌변기는 있는데, 물 내리는 장치가 없었다. 옆에 보니 물이 든 양동이와 바가지가 있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곧 알아챌 수 있었다(앞으로 이 행위는 너무도 자연스러워진다). 에너지 절약에는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내 안에서는 거부하고자 하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깨끗한 화장실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히말라야는 꿈도 꾸지 말았어야 한다. 정신이 바짝 들도록 나 자신을 혼쭐 내려다가 하루 종일 출국과 입국심사로 진이 빠졌으니 봐주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여드레 동안은 롯지(네팔 산장)에서 자야 하니 당분간 편안한 잠자리는 기대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5성급 호텔의 잠자리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첫날밤은 5성급 호텔에서, 지령을 듣는 중
 첫날밤은 5성급 호텔에서, 지령을 듣는 중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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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에 계속)

태그:#히말라야, #전북산악연맹, #추진복지재단,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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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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