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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19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 한해 업무도 슬슬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만큼,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미뤄두었던 연차휴가를 마지막에 몰아 쓰는 이들이 많다.

특히 올해는 25일 크리스마스와 1월 1일 휴일이 연달아 수요일에 있어서 그 사이에 나흘 휴가를 내면 총 일주일간 연휴를 즐길 수 있다. 이를 기회로 누군가는 따뜻한 동남아로 여행을 떠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멀리 갈 것 없이 도심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불 밖은 위험해' 모드로 따끈한 방바닥에 찰싹 달라붙어서 지난 드라마를 정주행하거나 낄낄대며 만화책이나 웹툰을 보기도 할 것이다.

모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한 충전 방법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번아웃 증후군'이란 말이 이제는 익숙해진 시대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아무런 의욕도 느끼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2019년 상반기에 직장인 4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5.1%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모든 직장인이 겪고 있는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삶에 있어 일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일중독 사회'의 특징이다. 잠을 자도 피로가 누적되는 것 같고 속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며 일과 자기 자신,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충전하고 있습니까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에너지까지 회식 등으로 탈탈 털어 쓰는 연말이 되면 정말이지 재충전이 절실해진다. 달력에 표시된 휴가 날짜만을 보며 버틴다. 그런데 충전을 위해 떠난 여행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종일 재미나게 TV를 봤지만 마음의 구멍은 채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며칠의 휴식으로는 충전이 부족한 걸까. 외국처럼 한 달을 제대로 휴식한다면 나아질까.

이런 경우 스스로에게 충전을 또 다른 일처럼 해치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충전이 되는 방법이 나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나의 몸과 마음에게 휴식을 주는 것이 아닌 또 다시 남 보기에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휴식과 충전도 평소에 해봤던 사람이 잘하는 것이지, 연말에 시간과 돈이 주어졌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잘할 수는 없다.

마땅히 방법을 못 찾는 이에게 '목적 없이 하는 걷기'와 '가벼운 독서'를 추천한다.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이자, 내가 올 한해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호되게 아프면서 직접 체험한 방법이다.

서구에서는 일찍이 심리치료의 측면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독서치료를 뜻하는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hy)를 쓴 조셉 골드는 밥을 먹듯 의무적으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독서는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방식, 세상에 관계하는 방식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사고방식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다.

목적 없이 걷는 것도 어색하고 업무 보고서가 아닌 책을 읽어본 지도 너무 오래된 이에게 추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지금 소개하는 책을 활용한 힐링이다. 인간의 심리와 학습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교육공학 전문가이자 지식생태학자인 유영만 교수는 깊고 어려운 얘기를 쉽고 재미나게 대중에 전달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대중매체에 나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책들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그의 88번째 책인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역시 문턱 낮은 책이다.
 교육공학 전문가이자 지식생태학자인 유영만 교수의 88번째 책인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은 직관적이고 쉬운 문장으로 삶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
 교육공학 전문가이자 지식생태학자인 유영만 교수의 88번째 책인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은 직관적이고 쉬운 문장으로 삶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
ⓒ 비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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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을 통한 힐링과 충전

이 책은 그가 독서하며 사색한 끝에 얻은 깨달음을 '자존과 자유', '일상과 상상', '관심과 관계', '배려와 존중', '희망과 용기', '반성과 성찰', '통찰과 지혜', '독서와 창조' 등 총 8개의 주제로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매력은 한 장에 딱 한 문장만 있다는 점이다. 한 단락도 아닌 한 문장. 우리나라 법원의 판례처럼 '~하는 바이나'로 연결되며 도무지 끝나지 않는 문장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는 개념어들이 이어져 읽고 또 읽어도 알 수 없는 문장또한 아니다. 88권의 책을 내고 다수의 팬을 거느린 대중 작가답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직관적인 문장들로 이뤄져 있다.

그렇지만 그 쉬운 문장이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난 요즈음 산책을 나가기 전에 한 문장을 가슴에 품고 간다. 얼마 전 고른 문장은 "속도가 빨라지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가 좁아집니다"였다.

7년 전 '신의 직장'으로도 불리던 대학교 교직원을 그만두고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협동조합으로 생업의 무대를 옮긴 후 줄곧 빠르게 달려왔다.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통 협동조합에 대한 생각과 공부, 활동이 전부였다. 덕분에 <오마이스쿨> 강사로 활동하며 번역서를 포함해 9권의 책을 내고 여러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등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에 나 역시 빠르게 소진됐고, 무엇보다 매너리즘에 빠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5월 마음이 못 견디고 파업을 했다.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이전처럼 속도를 낼 수 없게 됐다. 하루 만에 할 수 있었던 일을 일주일 걸려 할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속도가 느려지면서 안 보이던 것들이 다시 보였다.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는 엽서 뒷면에 그림을 그렸고, '느려도 괜찮아'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줬다.
  
 “속도가 빨라지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가 좁아집니다”라는 문장을 골라 나를 돌아보고 풍경을 그리며 나와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속도가 빨라지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가 좁아집니다”라는 문장을 골라 나를 돌아보고 풍경을 그리며 나와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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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이렇게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문장들이 정성스레 한 땀 한 땀 새겨져 있다. 저자는 "한 문장은 한 사람의 고심이 고스란히 담긴 생각의 정수"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 번 보고 지나쳐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 마음 속 깊은 울림으로 삶의 파란을 일으킬 수 있는 문장이 독자들의 삶을 움직이기를, 그렇게 선순환이 반복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엽서 형식으로 되어 있기에 나처럼 풍경을 그릴 수도 있고 한 문장이 마음 속 울림을 묘사해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전해볼 수도 있다.

연말 충전을 위한 '문장 테라피'를 지친 당신에게 권해본다.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 파란만장한 삶이 남긴 한 문장의 위로

유영만 (지은이),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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