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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가던 길을 멈추고 비를 피하는 게 보통의 사람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양반임네 하고 똥 폼 잡으며 유유히 걸을 것 같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사촌오빠다. 그를 30여 년 만에 올 봄 집안 일로 만났다.

표정은 항상 웃는 얼굴이다. 잘 나가는 자식 자랑도 하지 않는 평범한 집안 남자다. 뽀얀 피부에 범생이처럼 앉아 있다가 주변에서 도울 일 있으면 조용히 일어나 돕는다. 쟁반을 나르고 찻잔을 들어주고 과일을 옮기며 필요한 사람 옆에 가만히 놓아준다. 대화할 때도 그냥 들어주면서 고요히 주변에 앉아 있다.

세월만큼 길어진 사연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내기에는 부족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종교가 같아 서로 도움이 되는 묵상 글과 일상을 주고받던 어느 날 예상 밖의 동영상이 오기 시작했다.

송가인 노래가 실린 유튜브다. 처음엔 요즘 가요계를 뒤흔들 정도로 핫한 송가인이라 보내나보다 가볍게 생각했는데 전혀 가볍지가 않았다. 송가인 콘서트에서 정말 해보다 더 해맑은 표정으로 찍은 사진을 보냈다.
 
뜨거운 여름 같은 마음으로 찾아나선 콘서트장.
▲ 열정 뜨거운 여름 같은 마음으로 찾아나선 콘서트장.
ⓒ 이복희,이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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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용하기만 한 줄 알았던 오빠가 송가인 광팬이 되어버렸다. 동영상과 사진을 고이 간직하다가 그것도 갈증이 났는지 직접 몸을 바치는 광팬이 되어 전국으로 쫓아다닌다. 자전거로 전국을 순회하더니 이제는 한 여인, 마약 같은 귀염둥이 송가인을 찾아 전국을 여행하는 열혈 팬이 되었다.

"동생도 송가인 카페 가입하고 스밍(스트리밍)해서 들어봐, 스트레스 풀려."
"미안해용. 음악엔 도통 관심이 없는 분야라서 그런데 오빠는 어떻게 송가인 팬이 된 거야?"


그 사연을 듣자니 이렇다. 오빠는 평소 취미로 MTB(Mountain Bike) 자전거를 즐겨타는 사람이었다. 높은 산에 오르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자전거 라이딩을 즐겼다.

7월 말 여름이었다. 평소 라이딩을 끝내고 나면 시원하게 씻고 간단한 간식과 더블어 음악을 듣곤 하는데 어쩌다 유튜브에서 송가인의 티얼스를 듣게 되었다는 것. 아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충격이었다. 오빠의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였다는 것.

"아니! 송가인이 누구야?".

그때부터 송가인에 몰두했다는 오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그녀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 종편 방송 프로그램인 '미스트롯'에서 송가인이 1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 종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기에 모를 수밖에 없을 터였지만, 너무 늦게 송가인을 알게 되어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고.

가슴을 후벼 파는 송가인의 노래를 다 듣지 못 했다는 게 너무 분하고 원통했다. 그래서 아내와 얘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방송이 진즉에 있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들으니 화가 더 났다. 오빠는 큰소리로 따졌단다.

"그렇게 멋진 방송을 왜 안 알려 줬냐?"
"당신은 종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왜 그런 걸 알려 주겠냐?"


맞는 말이긴 했지만 천상에서 들려오는 송가인의 노래를 처음부터 듣지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 때문인지 너무너무 억울해서 진정시킬 수가 없었단다. 오빠에게 송가인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또 듣고 싶고 가슴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신비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송가인 옆에는 항상 구름떼 같은 관중이 모이고 공연장이나 행사장에서 송가인이 엔딩하지 않으면 안된단다. 송가인 이후엔 관중이 거의 빠져 나가서 취한 조치라고. 그야말로 엔딩요정 송가인이다. 팬클럽 어게인 회원뿐 아니라 많은 중장년층이 열광하고 있다.

오빠는 '미스트롯 1년도 안 되어서 최고의 행사비를 줄 정도'로 송가인 없으면 행사가 안 될 정도란다. 지역행사 날짜도 송가인 일정에 맞춰야 할 정도라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한다며 줄줄이 알사탕 엮듯이 자랑이다.

오빠 말로는, 11월 3일 열린 송가인 단독콘서트가 평화의 전당에서 열렸는데 1, 2 ,3층을 가득 메웠다고. 방송을 하지 않는 지상파 MBC에서도 송가인 콘서트를 무려 3차례나 방송했단다.
 
옷보다 더 빨개진 마음들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광장의 열기.
▲ 구름떼처럼 몰려든 광팬심 옷보다 더 빨개진 마음들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광장의 열기.
ⓒ 이복희,이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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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중장년층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송가인이 혜성처럼 나타나 트로트문화에 빠져들게 했다는 게 오빠의 분석이다. 요즘 SNS에서는 송가인 그림자라도 밟아 홍보하려는 사람들로 기막힌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한단다.

오빠는 말한다. 지난 7월 말 송가인 공식 팬 카페 어게인에 가입해서 지역행사 때마다 공연 보고 팬카페 회원들과 현장에서 "송가인님"을 만나고 온다고. 그럴 때마다 큰 에너지를 가득 받는단다. 휴가 한 달을 내고 송가인 행사를 따라 전국 일주하는 특급 직장인 열성팬도 있단다.

지난 17일 청주에서 공연이 있었다. 궂은 날씨에도 서울은 물론 전남 나주, 여수, 영광 지역 등 여러 곳에서 찾아온 팬들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송가인 노래를 들으며 내 노년은 금빛처럼 빛나는 행복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오빠. 수줍음이란 온데간데없이 벙그러진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는다. 

태그:#송가인가수, #어게인 팬클럽, #힐링, #중,장년 인기, #살아가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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