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폭발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여기에 출렁이는 국제 정세. 영화 <백두산>의 상상력은 그야말로 발칙하다. 그간 여러 재난 상황을 그린 한국영화들이 많았는데 우선 이 영화는 그 규모부터 남다르다. 첫 장면부터 서울 강남대로가 쑥대밭이 되니 말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재난 장르물이라고 할 순 없다. 전역을 앞둔 장교 인창(하정우)이 어쩔 수 없이 북한에 침투하게 되고, 포섭된 스파이 리준평(이병헌)을 만나면서부터는 진한 우정과 의리가 드러난다. 어쩌면 재난영화의 탈을 쓴 또 다른 휴먼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19일 개봉한 <백두산>은 그 상상력과 그걸 구현해 낸 국내 CG 및 특수효과 등 기술력의 집합이다. 영화적 요소를 빼놓고 이 부분을 보면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한 결과물이다. 260억원 대 예산으로 이 정도의 블록버스터를 구현해냈다면 가성비만큼은 최고라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상상력의 산물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 게 <백두산>의 미덕이라면 영화적 요소에선 꽤 아쉽다. 배우 이병헌, 하정우, 마동석, 그리고 전혜진, 배수지 등 내로라하는 스타급 배우와 연기력 있는 배우가 모였는데 결론을 향해 이야기가 나아감에 있어서 이들이 맡은 캐릭터들이 기능적 역할 그 이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북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인창과 리준평은 그런대로 설득력을 갖고 갈등을 쌓아가는데 이 역시 시나리오에 단편적으로 설정된 캐릭터성 이외에 특별히 보이는 게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깊이 갈등하고 고뇌하는 캐릭터들의 생동감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간 강한 신체성으로 활용돼 온 마동석이 화산폭발을 예견하고 이를 막는데 기여하는 교수로 등장한다는 점은 신선하지만 그 역시 이야기 안에서 크게 생명력을 갖지 못하고 위기 상황을 설명하고 이야기 전개를 매끄럽게 하는 데에 쓰이는 게 전부다.
      
민정수석 전유경(전혜진)과 인창의 아내 최지영(배수지)은 비중 면에서 보자면 그간 이런 대형 블록버스터, 특히 남성이 전면에 선 멀티 캐스팅에서 소모됐던 여성 캐릭터에 비해 진일보 한 면이 있다. 하지만 애초에 설정 자체가 한계가 있어서 이 캐릭터들 역시 크게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컷마다 등장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정도다. 특히 재난 상황의 공포감과 인창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품어야 하는 지영 캐릭터가 생동감이 떨어져 보인다. 배우의 해석과 표현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연출의 문제였을까. 

이야기의 흐름과 주제의식은 단순해 보이지만 <백두산>은 그 어떤 대형 프로젝트보다 세밀한 계산과 공감력이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북한의 관계가 전면에 등장하고, 미국과 중국 등의 외교적 태도와 자국 중심주의가 표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뉴스에서 보고 들은 것 외에 어떤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관객에게 주려면 제작진의 상상력이 크게 발휘됐어야 한다. 

휴화산의 폭발, 냉전 시대 마지막 산물을 휴머니즘과 잘 버무리려던 제작진의 노고는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야기를 무리 없이 잘 수습한 것만으로도 꽤 성공적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새로운 영화적 경험보단 연말 시즌 복잡한 생각 없이 따뜻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려는 여러 관객들의 요구를 잘 맞췄다고 볼 수도 있는 일이다. 

 
한 줄 평: 무난한 멀티캐스팅의 예시
평점: ★★★(3/5)
 

영화 <백두산> 관련 정보

각본 및 감독: 이해준, 김병서 주연: 이병헌, 하정우, 마동석, 전혜진, 배수지 제공 및 배급: CJ엔터테인먼트, 덱스터스튜디오 제작 : 덱스터픽쳐스 공동제작: 퍼펙트스톰필름, CJ엔터테인먼트 크랭크인: 2019년 2월 17일 크랭크업: 2019년 7월 21일 러닝타임: 128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9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