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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업무 쪽지를 받았다. 발신인은 보건 선생님 K. '생식기 관리 & 만들기 체험'을 할 텐데 혹시 수업 끝나고 들어왔을 때 당황하실까 봐 미리 사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생식기 만들기? 담임이 당황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정교한 거야.'

그런 생각도 잠시.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럼 남성 생식기를 만들 때 평상시나 발기 상태 모두 표현하나?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이 있을 텐데. 그나저나 여자 성기를 남학생들이 만들려 할까? 반대의 경우는 또 어떻고. 온갖 상념이 터질 듯이 피어올랐다. 이럴 것이 아니라 진상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퍼뜩 첨부파일로 딸려온 사진을 열었다.
 
 생식기는 입체가 아니라 평면 모형이었다.
 생식기는 입체가 아니라 평면 모형이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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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 뭐야? 2D잖아.'

다소 실망하고 말았다. 보건 선생님의 자료는 생식기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을 지극히 해부학적인 관점에서 만들어보는 평면(2D) 자료였다. 고환과 음경 사이를 정관이 핏줄처럼 지나다니고, 고환 옆에 부고환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는 얌전한 자료.

교실에 들어와 보니 게시판에 낯선 교육자료가 붙어 있었다. 알싸한 기운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생식기다! 아니나 다를까 주간 식단표를 가운데 두고 여성 생식기 모형과 남성 생식기 모형이 양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희 잘했죠? 점심 메뉴 확인할 때마다 소중한 우리 몸을 공부하라고 붙였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N이 대뜸 말을 붙였다. 반사적으로 잘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원래 게시판은 학생의 교육활동 결과물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생식기 모형도 보건 수업의 결과물이므로 당연히 게시판에 올라갈 권리가 있다. N 옆에 있던 M이 끼어들었다.

"애들이 주간 식단표는 맨날 보잖아요. 그러니까 꼭 여기에 있어야 해요."
"너희들이 이렇게까지 열정을 보이다니. 아주 중요한 수업이었나 보네."
"네, 완전요."


고무 찰흙과 네임펜으로 만든 생식기 모형.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했다. 밋밋한 평면 모형에서 입체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생식기 모형은 아이들의 열렬한 관심 속에 쭉 붙어있게 되었다.
 
 생식기 만들기 수업 자료의 효과는 120%이다. 감사합니다. 보건 선생님!
 생식기 만들기 수업 자료의 효과는 120%이다. 감사합니다. 보건 선생님!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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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 질, 음경, 체위... 실제적 내용을 편견 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해졌다. 우리도 덴마크처럼 만 12세 정도 되면  '여자의 질은 모두 같을까?', '자위는 고등학생 정도에 하는 게 정상인가?', '남자의 음경은 모두 같을까?' 같은 질문을 두고 논쟁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문제는 담담하고 솔직하게 토론을 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성교육의 양대 주체가 되어야 할 가정과 학교는 서로 성교육을 미룬다. 가정에서는 학교가 알아서 잘 가르쳐주겠지, 학교에서는 부모와 아이 사이가 더 가까우니 수업 때 나누지 못한 부분을 집에서 채워주겠지 하고 믿어버린다. 회피성 믿음은 성교육의 공백을 만든다. 누구나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민망함과 곤란함을 핑계로 책임을 떠민다. 

심에스더와 최은경이 쓴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에서는 입에 담기 어려워도 '잠지, 고추, 삽입, 사정, 체위, 섹스' 같은 실제적인 내용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대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이상야릇한 성적 이미지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섹스를 솔직하고 편견 없이 전달하자는 의미다. 

이백 번 동의한다. 나도 담임을 맡고 있고 가끔 성교육을 한다. 그러나 성교육 시간에 섹스 이야기를 꺼내면 대화가 끊긴다. 묘한 분위기는 감도는데 눈치만 살필 뿐 실질적 토론은 없다. 어떤 남학생도 체위와 사정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어떤 여학생도 콘돔 장착법을 물어보지 않는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섹스를 밝히는 아이로 찍힐까봐 눈치를 보는 걸까? 결국 의도치 않은 정숙함 속에 주입식 성교육이 되고 만다.
 
 성교육 수업 준비에 큰 도움을 주었다.
 성교육 수업 준비에 큰 도움을 주었다.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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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서 그렇겠지만 학생이 입을 열지 않으면 수업의 깊이가 생기지 않는다. 학생을 수업에 푹 빠지게 하는 건 교사의 몫이다. 그래서 성교육은 늘 어렵고 고민된다. 생식기 모형을 보며 낄낄 거리는 모습을 보면 곧잘 토론이 될 것 같다가도, 막상 시작하면 교실은 긴장된 침묵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요즘은 수업 전략을 살짝 바꿨다. 성교육 시간에만 집중적으로 다루던 섹스 소재를 분산시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회 2학기 3단원 '인권 존중과 정의로운 사회' 시간에 인권과 법을 가르치다가 '임신 중단(낙태)' 논란을 슬쩍 끼워 넣는다.

"임신 중단을 무조건 죄라고 보기에는 논란이 있어. 임신을 중단하든 유지하든 여성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어. 조금 어려운 말로는 재생산권이라고도 해."

임신도 섹스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임신 중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청소년의 사랑, 미혼모, 피임과 책임 문제까지 화제가 뻗어 나간다. 아이들도 사회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입을 쉽게 뗀다. 전통적인 성교육과는 거리가 있지만 자연스럽게 토론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수업한 지 열흘이 지났건만 생식기 모형은 훼손 없이 잘 전시되어 있다. 핀란드에서는 14세만 되면 '콘돔 꾸러미'를 선물하며 실질적인 피임 방법과 책임 의식을 가르친다고 한다. 해서 나는 아이들이 미리 제작한 생식기 모형 위에 피임 도구 모형을 만들어 적용해보는 수업을 구상 중이다. 

아이들에게 성을 솔직하게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성범죄가 터질 때마다 안타까워하고 화만 낼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 부모가 되었든 교사가 되었든 어른의 자세는 그런 게 아닐까?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 용감하게 성교육,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심에스더, 최은경 (지은이), 오마이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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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교육, 그림책, 육아, 일상 주제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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