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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갑작스럽게 찾아온 우울증, 불면증,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한 나를 위한 마법의 주문을 기록하고 공유하고자 합니다.[기자말]

겨울이 오면 찾아오는 걱정거리가 '집 앞 눈치우기'다. 여덟가구가 사는 빌라에 거주하는데, 빌라가 경사진 곳에 있어 눈을 치우지 않으면 차를 뺄 수가 없다. 사실 차도 없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내게는 급하게 눈을 치워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 눈을 치우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전날 늦게까지 작업을 했더라도 주섬주섬 옷을 챙겨 나가게 된다.

사실 눈 치우기 자체가 걱정 거리는 아니다. 아침잠을 조금 덜 자는 것일 뿐, 가벼운 운동도 되고 치우고 나면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줬다는 보람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려운 건, 눈 치우기 자체가 아닌 빌라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다. 이사한 첫 해 겨울에 눈 치우기를 몇 번 하고 나서 묘한 상황을 깨달았다. 나와 같은 프리랜서인 빌라 총무가 늘상 먼저 나와 눈을 치우면 그 소리를 들은 나 또는 다른 한 분이 나와 거든다. 그러고 나면 정작 눈을 치우기 위해 차를 빼주셔야 하는 분이 나타나서는 "수고하십니다" 한 마디 하고 간다. 반복되는 패턴이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어느덧 아침의 운동, 보람된 선의가 '호구짓'처럼 느껴지게 됐다. 그럼에도 나는 그해 겨울 눈 치우는 소리에 계속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10살 많아 보이는 총무를 도와주고 싶어서였다. 나도 이사 오기 전 집에서 빌라 반상회를 하다 10원 가지고 다툼이 나는 상황을 못 지나치고 총무를 맡았다가 5년 동안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호구가 되고 싶지도 않았지만 외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조카가 해준 조언
 
 마포구 상암동에서 주민과 공무원들이 길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마포구 상암동에서 주민과 공무원들이 길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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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상황이 이렇다보니 겨울이 되면 마음이 복잡하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자 어떤 분은 은덕을 쌓는다 생각하고 수행하듯이 하라고 하고, 어떤 분은 차를 가진 이들이 절박해져서 나설 때까지 모른 척하라고도 했다.

정답이 어디 있겠나. 공동의 일을 적절한 규칙을 통해 잘 나눠 가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며 군자가 못 되어서인지 옹졸한 마음을 지우기도 쉽지 않다. 그러던 차에 초등학교 5학년 조카가 들려준 조언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삼촌이 하고 싶은만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하고 싶지 않을 때는 하지 않는 것도 저는 좋다고 봐요. 그러다가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다시 하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생각해보니 눈 쓸기만이 아니라 많은 일들에 있어서 나는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우선으로 했다. 안정된 대학교 교직원을 그만두고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협동조합의 매력에 이끌려 이직해 7년간 협동조합 교육·연구자로 살아가며 먼저 눈을 쓸고 있는 총무 옆에 서려고 노력했다.

특히 몇 년 전 협동조합을 열심히 하는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연구자들은 안전한 곳에서 우리를 망원경으로 관찰하며 지켜보다 전장의 결과를 토대로 실험하고 사후 진단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말이 가슴 아파 내가 할 수 있는 한 협동조합을 도우려 노력했다. 출자금을 내서 가입하고 무보수 임원으로 봉사하고 24시간 SNS 메시지로 오는 상담에 최대한 응했다.

그러다 올해 5월 내 마음이 파업을 선언했다. "더 이상은 힘들어"라는 마음의 소리를 몇 년째 들었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으니 참아봐"라고 애써 외면해왔다. 꾹꾹 눌리기만 하고 늘 뒷전이었던 내 마음이 결국 못 참고 파업을 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호되게 아픔을 겪으면서도 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정신과 치료에 따라 약을 먹고 상담을 하고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다시 주변을 도우려 했다. 한때는 시민사회단체, 협동조합 등에 매달 50만 원 정도 내던 후원금도 얼마 전에서야 내 수입에 맞게 조정할 수 있었다.

내 얘기를 듣던 의사 선생님은 "자신을 먼저 돌보고 채워졌을 때 남에게 제대로 줄 수 있어요. 바닥까지 박박 긁어 주면 서운한 마음, 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어요"라고 조언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도와주려는 마음 자체는 좋은 덕목이다. 하지만 그 전에 앞서 다른 사람보다 더 소중한 건 결국 나 자신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지만, 거꾸로 '너 자신을 네 이웃처럼 사랑'해야 한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나를 위한 마법의 주문이다. 올해는 총무분에게 죄송스럽지만 살짝 귀를 막고 잠을 더 잘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수고하십니다"라고 가시는 분에게는 "다음에는 함께 수고해요"라고 웃으며 제안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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