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2회 말 투아웃 주자 1,2루 상황 한국 선발 투수 양현종이 일본 야마다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고 허탈해 하고 있다.

양현종 ⓒ 연합뉴스


타이거즈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재능이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기아 타이거즈 구단은 지난 13일 우완 투수 윤석민의 은퇴를 발표했다.

윤석민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우완 투수중 한 명이었다. 류현진-김광현-양현종 등과 함께 86-88년생 '황금세대'로 꼽히며 최전성기였던 2011년에는 다승(17승 5패), 평균자책점(2.45), 탈삼진(178개), 승률(0.773) 타이틀을 휩쓸고 투수 4관왕을 달성했다. KBO리그에서 투수부문 4개 타이틀을 한 해에 독식한 선수는 타이거즈 대선배이기도 한 선동열 전 감독과 윤석민 두 명뿐이다.

국제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상을 보이며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등에 크게 기여했다. KBO리그에서는 총 12시즌을 활약하며 77승 75패, 86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 3.29의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윤석민의 전성기는 예상보다 너무 일찍 저물었다. 2012년에는 선발투수로 9승, 2013년은 또 다시 선발과 마무리를 병행하며 30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미 국내무대에서도 하락세인 상황에서 2014년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무리수였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했으나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이며 정작 빅리그에서는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못하고 1년만에 국내무대로 돌아왔다.

친정팀인 기아는 미국무대에서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돌아왔음에도 에이스의 체면을 고려하여 윤석민에게 4년간 90억원의 당시 최대규모의 계약을 선물했다. 그러나 이 계약이 훗날 윤석민과 기아 양쪽 모두에게 뼈아픈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FA계약 이후 첫 해는 나쁘지않았다. 2015년 팀 사정상 선발이 아닌 임시 마무리로 활약하며 2승 6패 30세이브, 자책점 2.96으로 선방했다. 사실상 윤석민이 마운드에서 정상급 기량을 보여준 마지막 시즌이 됐다. 정작 원래 보직인 선발로 복귀한 지난 2016시즌부터 기나긴 부상 악몽이 시작됐다. 윤석민은 4년간 어깨부상에 시달리며 거의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기약없는 오랜 재활에 지친 윤석민은 결국 은퇴를 선택했다. 윤석민과 1~2살차이에 불과한 류현진-김광현-양현종이 메이저리그와 KBO리그에서 여전히 전성기를 호령했던 것과 달리 윤석민은 고작 33세로 투수로서는 아직 한창 나이에 그라운드를 떠나는 엇갈린 운명에 놓였다.

타이거즈 팬들이라면 올해 특히 만감이 더 교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불과 얼마전에 은퇴한 한기주-김진우에 이어 2019년에만 3번째로 '타이거즈 출신 에이스'를 허망하게 보내야한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한기주와 김진우는 올시즌 비교적 조용하게 은퇴했다. 한기주는 광주 동성고 시절부터 초특급 투수로 기대를 모았고 윤석민보다 한 해 늦은 2006년 기아 유니폼을 입고 데뷔, 프로 첫해부터 전천후 투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필 같은 해 데뷔한 류현진의 맹활약에 가려졌지만 한기주도 10승 11패 1세이브 8홀드, 평균 자책점 3.26로 예년같으면 신인왕을 수상하기에 충분한 성적이었다. 이후 마무리로 자리잡은 한기주는 2007년 25세이브, 2008년 26세이브를 거두며 승승장구했으나 이후 부상 악령에 시달리며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랜 기다림에 지친 기아는 2017년 11월 이영욱과 1대1 트레이드를 통해 한기주를 삼성으로 삼성으로 이적시켰다. 한기주는 지난해 33경기에 등판해 1승 4패 3홀드 평균 자책점 6.69를 기록했다. 2019년에는 다시 부상 여파로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고 결국 32세의 나이에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 통산 성적은 272경기에 등판해 26승 32패 71세이브 12홀드 평균 자책점 3.89였다.

가장 맏형인 김진우는 2002년 데뷔 첫해 12승을 올리며 '포스트 선동열'로 불릴만큼 기대를 모았으나 이후 개인사와 성적 부진으로 방황을 거듭하며 '풍운아'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게 됐다.

김진우는 2007년 시즌 중반 결국 구단으로부터 임의탈퇴 처분을 받았고 야구를 포기할뻔 하다가 2011년 당시 조범현 감독의 배려로 극적으로 복귀했다. 2012-2013시즌에 총 19승을 올리며 억대 연봉에 재진입하는 등, 성공적으로 재기하는 듯 했지만 이후 다시 성적 하락세가 이어지며 결국 2018년 구단으로부터 방출당했다. 이후 김진우는 호주리그 질롱코리아와 멕시칸 리그까지 거치며 선수생활을 이어가고자 했지만 결국 더이상 불러주는 구단이 없자 은퇴를 선택했다.

윤석민과 한기주, 김진우는 모두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하고 너무 일찍 몰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윤석민은 '90억 먹튀', 한기주에는 '베이징올림픽', 김진우에게는 '문제아'라는 이미지가 항상 연관 검색어로 따라다닌다.

윤석민은 미국에서 실패한 이후 국내로 돌아와 바로 FA 대박을 터뜨릴 시점부터 몸값 거품 논란에 시달렸고, 한기주는 베이징올림픽에서 극도의 부진에 허덕이고도 동료들의 활약에 힘입어 병역혜택에 무임승차했다는 조롱을 당했다. 김진우는 좋지못한 사생활과 자기관리로 지명수배까지 당하는 등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하지만 특정한 이미지만으로 선수들만 지나치게 손가락질받는 것이나, 그들이 과거에 구단과 팬들을 위하여 보여준 헌신마저 모조리 가려지는 것은 아쉽다. 윤석민은 커리어 후반의 '90억 먹튀' 이미지가 강렬해서 그렇지, 오히려 전체 경력을 놓고보면 재능에 비하여 유난히 불운했던 투수에 가까웠다. 데뷔 초에는 하필 소속팀 기아가 암흑기를 보내던 시절이라 잘 던지고도 동료들의 득점지원 부족이나 불펜의 방화로 승리를 날리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2007년에는 당시 3.78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도 18패(7승)를 안으며 리그 최다패 투수 멍에를 써야했다.

또한 윤석민은 통산 성적에서 보듯 소속팀과 대표팀 모두 선발에서부터 롱릴리프-마무리까지 팀 사정에 따라 다양한 보직을 소화해야 했다. 경력의 대부분을 꾸준히 선발로만 활약해온 류현진-김광현-양현종 등과 가장 대조되는 부분이다. 이미 정상급 선발투수로 성장한 이후에도 팀 사정에 따라 수시로 불펜을 넘나드는 잦은 보직 이동은 현대야구에서 대단히 드문 케이스다.

그만큼 윤석민이 어떤 보직에서도 자기 몫을 하는 전천후 투수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선발과 불펜 어느 쪽에서도 꾸준하게 자리잡지 못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윤석민은 개인성적을 희생하면서도 그러한 벤치의 요구를 항상 묵묵히 이행했다. 윤석민이 이기적인 선수였다면 당장의 팀성적보다 자신의 커리어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심지어 한기주는 의심의 여지없이 혹사로 망가진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미 프로 데뷔 이전 청소년 시절부터 에이스라는 이유 때문에 과도한 투구수로 부상을 달고 다녔던 한기주는 타이거즈 입단 이후로도 관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듯, 불꽃같았던 데뷔 초기 2~3년의 반짝 영광을 뒤로 하고 더 빛날 수도 있었던 '10년의 미래'와 맞바꾼 셈이었다. 한기주는 은퇴 당시 '스스로 관리못한 탓'이라고 자신에게 책임을 돌렸지만, 한기주의 커리어를 망치는데 영향을 미친 수많은 지도자들-어른들은 누구 하나 '내 탓이오'라고 나서서 책임을 통감하는 이들이 없다. 2010년대의 끝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지워지지않는 한국야구 혹사 논란의 현실이다.

기아 팬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가끔씩 거론되는 상상극장이 있다. 현재 기아의 에이스 양현종을 비롯하여 윤석민-한기주-김진우까지, 한때 타이거즈의 미래로 거론되던 '80년대생 천재투수 4인방'이 모두 순탄하게 성장하여 동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면, 지금 기아와 한국프로야구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하는 궁금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건재한 선수는 오직 양현종 한 명뿐이다. 심지어 4명의 전성기도 모두가 엇갈리며 하나같이 굴곡진 야구인생을 걸어야했다. 어쩌면 너무 이른 나이부터 일찍 두각을 나타내며 찾아온 부와 명예, 대중의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이들에게는 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국야구의 역사를 바꿀수도 있었던 재능들이 조용히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현실에 대하여, 선수들의 잘못과 노력 부족만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한 번쯤 진지하게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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