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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봄. 우연히 한 달에 한 번 봉사활동을 위해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봉사활동의 목적은 4살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 사연은 이렇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청각장애인. 엄마가 아이의 언어 지연이 걱정돼 인근 사회복지센터에 의뢰를 하였고, 어쩌다보니 내가 가정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집에 가보니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수어, 그리고 데프 보이스(Deaf Voice, 청각장애인들이 감정을 드러내는 발성, 당시엔 '데프 보이스'가 뭔지도 몰랐다)로 어머니가 내게 상황을 이야기한다. 전혀 못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척했지만, 맘속으론 무슨 뜻인지 몰라 매우 난처했다.

그때 집으로 두 아이가 뛰어들어온다. 알고 보니 4살 아이에겐 누나와 형이 있던 것이다. 때마침 큰 딸이 엄마의 수어를 통역해주었다. 엄마의 수어를 통역해 줄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다. 그 후 7개월쯤 다니면서 아이를 관찰한 결과, 다행히 언어 지연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방문을 중단했다.

당시에 나는 뇌졸중과 척수손상과 같은 뇌병변과 지체장애인을 주로 치료하는 임상 작업치료사였기에, 청각장애인 혹은 시각장애인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력은 없었다. 하지만 짧지만 7개월이라는 시간은 청각장애인과 그 가족을 이해할 수 있는 내게 귀중한 시간이었다. 청각장애 부부에겐 병원이나 동사무소, 하다못해 마트에 가더라도 수어를 통역해주는 딸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지금 그 당시 이야기가 생각나는 이유는 내 업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수어통역제공 세바시 프로그램에도 수어통역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 수어통역제공 세바시 프로그램에도 수어통역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 세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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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만의 청각장애인은 대체 어디에?
  
나는 현재 서울특별시북부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서울재활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 직장에서 치료 업무만 하다, 서울 북부(한강 이북) 지역의 장애인 건강권을 위해 일하는 기관으로 옮기다 보니 특정 유형만 챙겨볼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장애인 건강권을 증진하기 위해 소수 장애인이라도 유형에 맞게 지원해야하는 임무가 주어졌으므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슴 한편에 크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 통계, 기사, 기록들을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

2018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등록 현황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 인구는 약 250만으로 추산된다. 그중 34만 명이 청각장애인으로 집계되었다. 지체장애인(123만)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34만 명의 청각장애인 중에는 보조기기를 사용하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들도 있지만, 전혀 듣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농아인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34만 명의 청각장애인들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신체장애가 없어 지체 장애인이나 뇌병변 장애인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수치로 확인된 기록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나는 그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수어를 할 수 없어 청각장애인을 만나도 이야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SNS에서 눈에 띄는 신간을 발견했다. 제목은 '우리는 코다입니다'이다. 코다가 무슨 뜻일까 유심히 보던 중 'Children of Deaf Adult'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책은 청각장애인 자녀들(아래 코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청각장애인들의 자녀, 우리는 코다입니다

이 책은 '코다'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3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집필했다. 어린 시절부터 코다로 자라온 이야기들을 솔직 담백하게 풀어냈다. '반짝이는 박수소리'라는 다큐멘터리로 이름을 알린 이길보라 감독,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수어 사전을 편찬하고 있는 이현화씨, 장애인권 활동가이자 여성학 연구자인 황지성씨가 그들이다.
 
우리는 코다입니다 청각장애인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는 코다입니다'가 출간되었다
▲ 우리는 코다입니다 청각장애인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는 코다입니다"가 출간되었다
ⓒ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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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슬프고 힘들었던 경험들을 책을 통해 전했다. 아이에서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된 지금까지의 성장기를 그렸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선에서 느꼈을 차별과 부당함이 책에서 느껴져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장애인 관련 업무에 몸담았던 나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힘든 경험들을 풀어낸 데에는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코다'를 알리고픈 절실함이 있었으리라.

차별에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코다

글의 서두에 적었듯이 책을 읽으며 문득 10년 전에 방문했던 청각장애인 부부 가정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내게 열심히 통역해주었던 큰 딸의 모습도 생생하다. 아마 큰 딸도 코다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으리라. 당시엔 생각 못 했던 큰 딸의 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고 할까. 당시에 내가 실수한 건 없었는지 이 구절을 읽으며 돌아봤다.
 
성실했지만 안정적인 삶을 꾸리기 어려웠던 부모님에게 이런 예상치 못한 문제들은 언제 어느 때고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입과 귀가 되어 많은 내용을 통역해야 했다. 수어를 할 줄은 알았지만 통역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병원에서, 동사무소에서, 법원에서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내 지식, 어휘력, 그리고 수어 실력이 부족했다. 어른들은 부모님을 그곳에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우리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차별적인 말들을 뱉어냈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귀머거리 부부' 와 함께 온 어리고 불쌍한 아이일 뿐이었고 그 말들을 내 귀에 담아 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36P
 
청각장애인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직업의 선택에 한계가 있다고 알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일이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어릴 때부터 교육으로부터 배제되어 온 사회의 이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7년 국립국어원의 한국수어실태 조사연구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의 교육수준이 초등학교 33.5 %, 무학 19.4%로 나타났다. 전 국민의 교육 수준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떨어지는 수치이다.

청각장애인들이 어릴 때부터 수어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교육수준이 높아짐은 물론 직업선택의 폭도 넓어졌으리라 짐작한다. 이 책에서는 교육과 직업선택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어린 나이에 이름만 '학교'일뿐이었던 시골 사립 농학교에 들어가 매일 반복적으로 강요된 의미 없는 단순노동을 하던 아버지는, 이내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도망쳐 집에 돌아왔지만 곧바로 가족들이 운영하던 방앗간으로 투입됐다. 아버지 입장에서 두 세계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인인 자신도 교육과 성장의 기회를 누릴 권리가 있는 세계가 아니라. 그저 어떻게든 육체노동 기술을 습득해 밥벌이를 해서 '인간 구실'을 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주입하는 세계.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할 수는 없어도 타인과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일방적 음성언어 위주의 폭력이 아니면 침묵만을 강요하는 세계. 만약 아버지가 농학교서 농문화와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경험하고 자기 나이와 성장 단계에서 적합한 교육을 제공받았다면, 그렇게 학교를 도망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266p.
 
장애인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청각장애인과 그 자녀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떠올려보았다.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의 이름에 걸맞게 건강권 증진에 힘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머릿속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수어 통역사가 없으면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의료환경, 통역으로 이야기를 해줘도 교육 수준이 낮아 이해가 어려운 상황들. 그리고 청각장애로 인해 무방비 위험에 노출되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는 가능성들. 또한 이들의 가족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차별적인 순간들까지.

이 책을 읽으며 비록 그들이 겪은 아픔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들과 교류하고 연대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인 그리고 가족으로서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결과적으로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코다입니다 -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사이에서

이길보라, 이현화, 황지성 (지은이), 교양인(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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