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 포스터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행복지수 최하위권의 나라'라는 사실은 이제 상투적이기 까지 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10대 사망률의 원인 중 제일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자살'이라고 합니다. 단군 이래 역사상 가장 큰 풍요를 누리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데도,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독특하고 기발한 소재를 통해 유한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특히 영상미와 음악이 돋보이는 '엉뚱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8요일>, <미스터 노바디>등 벨기에의 거장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작품인 <이웃집에 신이 산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한 '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새로운 신을 상상한 이 영화에서는 신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인간을 골탕먹이길 좋아하며 컴퓨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괴짜로 그려집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입구도 출구도 없는 수상한 아파트에는 하느님 아버지, 엄마 여신, 조각상으로 숨어 지내는 오빠 J·C(예수) 그리고 작고 귀여운 소녀 에아(Ea)가 살고 있습니다. 에아는 바빌로니아 신화에 나오는 주신(主神)의 하나로 대홍수를 예견하여 인류를 재앙에서 구해내는 신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내 집에서 살려면, 나에게 복종해!"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집에서는 폭압적인 태도를 일관합니다. 또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컴퓨터 작업으로 온갖 재앙을 만들어 내 인간을 괴롭힙니다. 심지어 '보편짜증유발법칙'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간들을 골탕 먹이는 아주 심술궂은 신입니다. 엄마 여신은 걸핏하면 버럭 하는 하느님의 권위에 짓눌려 말을 잃고 창백한 표정으로 매일 청소만 합니다.

오빠 예수는 아버지와의 뜻과는 달리 인간 세상을 도우려다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작은 조각상으로 숨어 지내며 살고 있습니다. 열 살된 딸 에아는 그런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다가 종종 매를 맞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집이 에아는 끔찍하기만 합니다. 에아는 오빠 J·C의 조언대로 탈출을 감행합니다. 하느님의 컴퓨터를 해킹해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는 날짜를 문자로 전송하고, 6명의 사도를 찾아서 신약성서를 다시 쓰기로 합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음악이 있어요."

천상의 권위에서 탈출한 에아의 눈에 지상의 세계는 천국이자 자유 그 자체입니다. 레아가 만난 첫 번째 인간은 '빅토르'입니다. 수감생활의 충격으로 천장이 있는 곳에서는 잠을 들 수 없는 노숙인 할아버지입니다. 에아는 빅토르에게 신약성서의 기록을 담당하게 하고 그와 함께 6명의 사도를 찾아다닙니다. 자신의 여섯 사도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사연과 상처를 듣게 됩니다. 에아는 그들의 가슴에 귀를 기울이며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음악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첫 번째 사도, 오렐리 복음

"인생은 스케이트 장이야. 수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거든."

오렐리는 어릴 때 지하철 사고로 한 쪽 팔을 잃고 의수를 하고 다니는 여자입니다. 아파트 최고의 미녀임에도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그것을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낍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그러한 상태를 애도라 하였고, 애도 상황에서 흠뻑 눈물을 흘리고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면 우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렐리의 가슴에는 오랫동안 흘러 보내버리지 못한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손과 제때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지요. 에아가 들려 준 그녀의 음악은 헨델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입니다.

두 번째 사도, 장 클로드 복음

"삶이 쪼그라들었죠."

장 클로드는 젊은 시절에는 패기 넘치는 모험가였지만 어느 순간 업무 시간표에 짜맞추어진 알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노년의 사나이입니다. 워커홀릭이던 그는 에아가 뿌린 사망 날짜 문자를 받고 단번에 일을 그만둡니다. 업무 시간표에 삶을 마모 시켜가던 것을 멈추고, 잊고 지내던 자기 자신과 북극으로 떠나게 된 것이죠. 에아가 들려 준 그의 음악은 필립 라모의 <새들이 부르는 소리>입니다.

세 번째 사도, 성 도착자 복음

"어린 시절의 기억엔 조금씩 슬픔이 담겨 있어요."

마크는 소년 시절 해변에서 만난 아름다운 비키니 여자의 몸에 반한 이후로, 여자의 몸을 탐닉하는 성도착자가 됩니다. 업소 이외의 여자와는 실질적인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하는 고독한 남자이지요. 그는 왜 성 도착자가 되었을까요? 어린 시절의 슬픔이 힌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깊은 바람을 갖지요. 영아는 어머니(주 양육자)의 애정과 보호 없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애착은 한 개인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친밀한 정서적 유대감을 말합니다. 애착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부모-자녀 간의 애착관계를 바탕으로 이후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고 합니다. 부모의 무관심이 그를 슬프게 했던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에아가 들려준 그의 음악은 헨리 퍼셀의 <오 고독이여>입니다.
 
네 번째 사도, 암살자 복음

"모두가 자신의 수명을 안 날 그는 총을 샀습니다. 그가 쏜 총알이 빗나가면 표적은 죽는 날이 아니었던 거고, 만약 명중해도 그의 잘못은 아닌 거죠. 그게 운명입니다. 그는 단지 운명의 집행자였죠. 그는 절대 울지 않았습니다. 슬픈 적이 없었습니다."

암살자 프랑수와는 그 누구도 사랑해 본적이 없는 남자였습니다. 햇살 좋은 날 공원에서 에아의 제안으로 오렐리를 쏘았는데 총알은 오렐리의 의수에 맞았고, 사망 예정일에 죽지 않은 건 그녀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오렐리를 쫒아갔고 의수를 스치듯 만져보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총알이 큐피드의 화살이 된 것이지요.

"그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어요. 당신만 빼고"

프랑수와는 사랑 고백 후 자기 자신과 화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누구를 암살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타인에 대한 증오는 사실 스스로에 대한 증오일지도 모릅니다. 에아가 들려준 그의 음악은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입니다.

다섯 번째 사도, 마르틴 복음

"남편의 남은 시간은 36년이었고, 나의 남은 시간은 5년이라고 말했어요. 남편은 안도하는 표정이었죠."

마르틴은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외로운 중년 여성입니다. 사랑 없는 삶을 물질적 풍요가 채워줄 수는 없었습니다. 넓은 집도, 고급 차도, 예쁜 구두도, 그녀가 가진 것들은 모두 다 허망한 것들이었습니다. 돈으로 젊은 남성의 상품화된 사랑을 사보지만, 이것 역시 물건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에아는 그녀를 서커스로 데려갑니다. 동물우리 안에 외로이 갇혀 있던 고릴라가 손을 내밀자 마르틴은 깊은 감동과 사랑을 느낍니다.

에아가 들려준 그녀의 음악은 '서커스 음악'입니다. 율리우스 푸치크의 <검투사의 입장>이라고 합니다.

여섯 번째 사도, 월리 복음

"윌리는 마지막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걸 안 후로, 여자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소년 윌리는 어릴 때부터 치료를 받던 병약한 아이입니다. 윌리의 세상을 병들게 했던 건 그의 병보다 '뾰족한 압정을 담은 상자를 떨어뜨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불안한 눈빛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에아가 들려준 소년의 음악은 샤를르 트레네의 <바다 La Mer>입니다.

"오늘은 네가 꿈을 꾸게 해줄게."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통해 삶의 엉뚱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접했을 때 우리는 '엉뚱하다'는 말은 사용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엉뚱한 하느님은 밉상을 부리다가 인간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합니다. 또한 '네 이웃을 혐오하라. 네 자신을 혐오하는 만큼'이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합니다.

'심장이 말똥말똥해요'라는 외국어가 서툰 여자의 표현은 신선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웃음은 통념적 질서와 권위주의를 깨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상투적 질서 속의 짙은 그림자로 무채색이 되어가는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상상력과 사랑입니다. 나름의 사연과 상처로 우울, 권태, 고독, 분노, 외로움, 불안 등을 불치병처럼 앓고 있던 여섯 사도들은 에아를 통해 치유를 경험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범한 상처를 치유한 것은 평범한 어린아이의 상상력과 사랑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신의 권능이 아니라 외로운 이에게 아무런 의도 없이 손을 건네는 것이라고 에아는 알려줍니다.

Listening is Loving, 들어주는 게 사랑입니다. 침묵하게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영화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가슴에 귀 기울여 그들만의 음악을 들어주고, 다시 그가 꿈을 꿀 수 있게 지지해 주는 게 사랑이라는 것을, 새로운 신약성서는 이야기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느리게 걷는 여자>에도 게재됩니다.
이웃집에신이산다 들어주는게사랑 엉뚱한 자코반도마엘 상처치유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는 강물처럼~! 글과 사람과 삶을 사랑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