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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상계동 철거민들의 유인물에는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가 포크레인에 올라타 밥을 먹고 있는 가족의 집을 철거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돌이의 얼굴은 당시 대통령인 노태우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그림에는"상계동 내림픽"이라고 쓰여 있다.

"올림픽"이 한국의 빠른 발전과 수도 서울의 도시화를 국제사회에 과시하기 위해 개최되었지만, 사실상 가난하면서도 함께 밥 먹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바닥으로 끌러 내리는 "내림픽"이라는 폭로였다.

개발은 압축적 경제성장을 겪은 한국사회에서 발전의 상징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난을 극복하는 프로젝트로 제시되면서, 개발을 통한 화려한 도시로의 변화는 우리의 삶의 풍요를 보여주는 발전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압축적 발전과 도시개발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삶의 내몰림과 강제철거로 인한 인권의 침해는, 발전을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부수적인 일이거나, 국가 전체를 위해 양보해야 할 개인적인 피해쯤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수많은 상계동들의 가난한 사람들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삶의 내리막으로 밀려났다. 서울은 누군가의 내리막을 딛고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했고, 이제 전 세계적인 대도시들과 경쟁하는 메가시티가 되었다.

87년 국제주거연맹(HIC)은 한국을 가르켜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게 강제철거를 집행하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수 십 년이 흐른 뒤, 결국 그 성장과 개발 그리고 부동산 욕망의 정점에서 우리는 2009년 용산참사를 필연처럼 겪었다.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보금자리 쟁취를 위한 상계동철거민 단합대회 자료집(1988.8.7.)’에서
 ‘보금자리 쟁취를 위한 상계동철거민 단합대회 자료집(1988.8.7.)’에서
ⓒ 한국도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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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전환?

수 십 년 동안 벌어진 도시개발의 폭력과 용산참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서울시는 2012년부터 뉴타운·재개발사업의 '인권적 전환'을 선언했다. "다시는 우리 같은 피해자들이 없게 해 달라"는 용산참사 유족들의 당부에, 박원순 시장은 서울 시정의 책임자로서 이에 대해 사과하면서 '전면철거 중심에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중심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뉴타운‧재개발 수습방안>을 발표했다.

전임 시장 시절 과도하게 지정된 뉴타운·재개발 등 정비사업 구역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구역별 정비사업의 추진 및 해제의 진로를 결정했다. 그 결과 실태조사 대상 683개 정비(예정)구역 중 360여 곳이 해제되었으며, 정비구역 해제지역의 대안사업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제시되었다.

재선으로 박원순 시정의 2기(2014.7)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되었다. '도시재생특별법' 제정 및 시행과 함께 서울시의 도시재생 추진을 위한 전담조직인 도시재생본부를 신설하고 <서울시 2025 도시재생전략계획>을 수립했다. 시정 2기의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을 선정하는 등 본격적으로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하며 서울시가 선도하는 도시재생의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서울시가 선도한 도시재생의 탄생은 전면철거형 재개발사업이 부른 참사와 인권침해, 사회적 갈등을 막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대규모 개발사업의 동력이 약화된 부동산경기 둔화라는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도시재생은 개발의 새로운 탈출구에 대한 모색이기도 했다.

작년 말 기준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은 도시재생특별법상 활성화 사업과 다른 법에 따른 도시재생 사업을 포괄하여 130여 개소에서 진행 중에 있다는 점에서도, 이미 서울형 도시재생은 개발의 새로운 탈출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서울시는 도시재생을 통해 주민들에 대한 대규모 축출을 수반하는 재개발을 막아내면서도 지역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그림을 그렸지만, 결국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로 발전해 그야말로 새로운 개발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낙후되고 쇠퇴한 도시에 가해지는 '경쟁력'이라는 매스

도시재생은 기본적으로 쇠퇴 지역의 도시 기능을 되살리는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도시재생특별법은 쇠퇴의 기준으로 △인구감소, △사업체 이탈, △건축물 노후도를 제시했고, 이중 2가지 이상 충족하는 지역을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여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된 도시들이 도시재생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동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인구감소 현상과 저렴한 주택가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의 제한된 임대차 기간 등이 고려되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지역 내 인구구조의 변화를 도시 쇠퇴로 진단하는 것인 정당한지 의문이 든다.

쇠퇴의 주요 기준이 되는 20년이라는 시간 기준의 건물 노후도 그렇다. 도시재생특별에 의한 쇠퇴 기준에 따르면 ,서울시의 2/3에 해당하는 지역이 쇠퇴 지역이라고 서울시가 보고 있다는 점에서도, 결국 도시재생사업도 도시의 보존이나 지속 가능성보다는 도시 성장에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시재생 사업이 동네를 '경쟁력 없음, 낙후, 쇠퇴'로 진단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성장 위주의 목표를 제시한다면, 저렴한 주택가에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동네는 존속하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도시 성장의 결과물이 다양하게 골고루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차별적이고 차등적으로 분배된다는 현실은 이미 상계동 내림픽 시절부터 증명되었다.

이 점에서 강제퇴거는 도시재생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도시재생에서 강제퇴거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교양 있어 보이는 명칭으로 은폐되어 도시재생의 수식어처럼 따라붙고 있지만, 여전히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라며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도시재생을 통해 물리적 환경이 개선되면 잠정적 기대수익이 예상되면서 외부의 자본이 유입되어 임대료 상승을 가져오는 것을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 심지어 '저평가된 것의 정상화'라며 도시재생의 긍정적 효과로 이야기하고 있다.
 
2019년 2월 19일 청계천·을지로 행진 및 집회
 2019년 2월 19일 청계천·을지로 행진 및 집회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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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에서 여전히 반복되는 개발 시대의 절규

서울시는 그간의 도시재생 관련 성과와 평가를 토대로 도시재생을 본격적으로 확대 추진하기 위해 현 시기 도시재생을 '서울형 도시재생 4.0'으로 정의하고 있다. 도시재생 4.0이 추구하는 목표가 기존과 어떠한 차별성이 있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서울시의 발언들을 통해 살펴보면, 서울형 도시재생 4.0은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에 발맞춰 '일자리 창출'이라는 가치로 이야기되고 있는 듯하다. 기존의 서울형 도시재생은 주민의 삶터를 유지하고 주민중심의 공동체 강화를 그 가치로 내세웠지만, 4.0은 일자리라는 산업적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 변화는 도시성장 프레임으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우려된다. 또한 기존의 도시재생 과정에서 주거환경 개선이 미흡하다거나 주민 체감이 부족하다는 평가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정비사업 연계형 도시재생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기존 정비사업에서의 원주민 내몰림의 폐단이 그대로 반복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개발로의 회귀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누구를 위한 개발이냐?"라는 개발 시대의 절규가 도시재생 시대에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이냐?"라는 질문으로 반복된다면, 도시재생은 기존의 개발 방식의 연장일 뿐이다.

세운상가 도시재생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던 세운상가군 철거계획을 취소하고 이 일대를 도시재생 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우뚝 선 세운상가만 홀로 재생되고 있고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의 상인들은 재개발의 불안에 떨며 이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지 묻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 시대의 폐해들을 다시금 성찰하면서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이냐?"라는 질문에 온전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원호 /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 그 날로부터 참사현장을 지키는 유가족 및 철거민들과 함께 했다. 장례 이후 전환된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있으며, 빈곤사회연대와 한국도시연구소에서 개발과 강제퇴거, 주거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태그:#청계천을지로재개발, #서울시 도시재생, #개발 시대,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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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 등의 이름으로 재개발 될 위기에 처한 청계천-을지로를 지키고자 2018년 12월 결성된 예술가, 디자이너, 메이커, 연구자,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도시재생이란 이름의 재개발로부터 이 곳의 가치를 기록하고 알리고 지킬 수 있도록 상인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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