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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멋진 찻집도 도서관도 된다. 사계절 빵빵한 냉난방과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가 제공되니 한두 시간쯤 자도 인터넷 서핑을 해도 좋다. 1250원으로 시간만 잘 맞춰 옮겨 타면 반나절 이상도 이용 가능하다. 시내버스의 장점이다. 떠나고 싶기도 안 떠나고 싶기도 하다면, 여행을 가고 싶지만 돈과 시간, 그 밖의 일상 여러 가지 것들이 발목을 잡는다면, 그럼에도 새로운 풍경과 영감, 또어떤 여행의 묘미를 즐기고 싶다면 그냥 훌쩍 내 옆에 와 서는 시내버스에 올라보시길[기자말]
바다가 보고 싶었다. 집 나서면 곧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지만 또다른 바다가. 여행을 하는 이유와 닮은 것 같다. 결국에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수많은 여행지가 누군가에겐 너무 익숙해서 이따금씩 간절히 벗어나고픈 일상이니까.  

오늘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분명했기에 탈 버스 또한 그랬다. 39번. 여느 때 이용하는 정류장에서 10분만 더 걸어 큰 도로까지 나가면 됐다. 39번 버스를 타면 광안리 해수욕장, 해운대 해수욕장, 송정 해수욕장, 기장 일광해수욕장을 다 갈 수 있다. 
 
부산 해운대
 부산 해운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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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만나는 해운대 바다가 반갑다. 바다는 좋지만 주변의 너무 많은 높고 육중한 고층 빌딩들은 볼 때마다 나까지 짓눌리는 기분. 바다만을 보고 앉아 가져온 캠코더에 풍경과 소리를 담았다. 오늘 만나는 모든 바다를 가득 담을 예정.

30분쯤 따뜻한 햇살 아래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며 파도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안하고 깨끗해지는 느낌. 평온한 자연 곁에서 어김없이 얻는 위안. 이 생에 날 낳아준 부모를 거슬러 우리 모두를 낳아준 대자연.
 
ⓒ 이명주
 
'해운대 시장' 정류장에 하차하면 바로 보이는 해운대 재래시장. 정류장이 바로 시장 입구다. 그냥 걸으면 5분도 안 될 거리지만 양옆 빼곡히 자리잡은 식당과 노점들의 온갖 먹거리들을 구경하고 맛볼라치면 한 시간도 부족할 판. 

집에서 나오기 전 점심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허기를 못 참아 기어코 배불리 식사를 한 게 후회스러웠다. 그렇다고 이 많은 음식들을 눈으로만 즐길 수 있겠는가. 가장 좋아하는 통통한 문어꼬치에 '미치게 매운 맛' 소스를 발라 순식간에! 

해운대에 이어 송정 바다를 향해 다시 39번 버스를 타려는데 전광 안내판에 도착까지 20분 남았다는 표시. 그때 익숙한 지명인 '청사포'로 가는 마을버스 2번이 먼저 와 덜컥 문을 여니 수 초 고민 끝에 홀랑 타버렸다. 

희미하게 기억나는 청사포는 포구가 있는 작은 시골 어촌. 너무 오래돼고 한적해서 쓸쓸하게도 보였던. 개성 없는 아파트 풍경이 지겹다 생각하는 중에 버스가 가파른 경사를 다 올랐나 싶더니 곧바로 눈 앞에 새로운 바다가 펼쳐졌다. 감격!  

버스는 언덕을 쭉 내려가 어업용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몇 걸음 앞에 빨갛고 하얀 쌍둥이 등대가 선 포구 바로 옆에 승객들을 내려줬다. 내 기억 속 청사포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착각했거나 꽤 많이 변했거나.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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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을 따라 한편에 말끔한 횟집과 찻집들이 아기자기 들어서 있는데 그 중 한 가게의 주인인 듯한 중년 남성이 혼자 트럼펫 연주를 하고 있었다. 진지하게. 생업으로 식당을 경영하지만 가슴 속엔 음악을 향한 오랜 열정이 넘실대는 듯.  

서서히 고운 노을빛이 번지는 바다를 보며 걷는데 저 앞에 낯선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시설물이 보였다.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였다. 흔적만 남은 철길 옆 나무 산책로를 따라가면 누구나 끝까지 가볼 수 있다. 

'오륙도스카이워크'와 비슷한 모양이라 그것처럼 시시하겠지 했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좀 달랐다. 바다로부터 높이가 꽤 있어서 투명한 유리 바닥 위에 두 발로 설 엄두가 안 났다. 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겁쟁이일 때가 많다. 
 
청사포에서 구덕포, 송정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청사포에서 구덕포, 송정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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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로 왔던 길 그대로 다시 가려다 반대로 이어진 철길과 산책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궁금했다. 옆을 지나는 여인에 물으니 당연한 걸 왜 묻나 하는 시선으로 "송정 해수욕장이잖아요" 했다.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이럴 때가 재밌다. 

청사포 지나니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의 구덕포가 나왔다. 사는 사람들이 어떤 필요에서인지 구분해뒀을 뿐 바다는 나 사는 광안리에서부터 해운대 지나 청사포, 구덕포, 송정까지 쭉 하나로 이어져 있다. 
 
청사포에서 구덕포로 이어지는 산책로 옆 바다 풍경
 청사포에서 구덕포로 이어지는 산책로 옆 바다 풍경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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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군데군데 인공의 집과 길이 없는 구간은 색달랐다. 야생의 바다와 그 주변이 어떠할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어쩌면 기억 속 그 오래되고 한적한 청사포일 것 같은 그곳에서 내가 느낀 쓸쓸함은 경건함 같은 거였을지도. 

도시에서 근근이 혹은 인간 필요에 의해 부분적으로 살아남은 자연은 애틋하다. 그 본래의 힘과 가치가 아무리 어마어마하더라도. 그러나 자연이 인간 문명보다 우세한 곳에서 그 진가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우리 존재의 미약하디 미약함도. 

뜻밖에 결국에 송정 해수욕장까지 왔다. 그런데 내가 사는 광안리 해수욕장과 비슷하다. 상업화된 도심 바닷가의 풍경이란. 충동적으로 마을버스 2번을 타고 청사포와 구덕포를 지나오지 않았다면 오늘 여정이 영 시시할 뻔했다. 

그래도 역시 바다는 좋다. 서서히 내린 어둠이 수평선을 지웠다. 십대와 다름 없이 신난 중년 남녀가 기념 사진을 부탁해서 흔쾌히 찍어주었다. 그들과 헤어져 다시 캠코더를 꺼냈다. 그리고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바다를 담았다. 
 
▲ 부산 광안리&해운대&송정 바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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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버스여행, #새해일출명소, #바다보러갈래 , #부산여행 ,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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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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