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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보물처럼 아끼잖아. 우리를 지켜주고 호화롭게 살게 해줬잖아. 그게 나빠?"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주인공 치도가 독재자 임모탄에게 돌아가자고 떼쓰며 내뱉은 말이다. 핵전쟁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한 22세기, 얼마 남지 않은 식수와 기름을 독차지한 임모탄은 인류를 지배한다. 독재자 임모탄은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모유 생산의 도구로 만들어버린다.

전쟁과 힘이 중시되는 남성 위주의 세계를 탈피하기 위해 임모탄의 다섯 여인은 분노의 도로로 나선다. 그러나 위대한 여성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치도는 임모탄에게 돌아가자고 말한다. 연약한 치도(Cheedo the Fragile). 이름에서도 '연약함(Fragile)'이 느껴지는 그녀는 말미에 억압을 인식하고 변화를 위해 투항하는 반전 캐릭터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려는 여성들 속에서 나약한 소리를 하는 인물. 그렇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싸우는 여성. 영화 속 '치도'라는 인물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내 1호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자 유튜브 채널 '치도_내츄럴사이즈모델'을 운영하는 치도(본명 박이슬)다.

'내추럴 사이즈'는 프리 사이즈와 빅 사이즈의 중간인 66·77 사이즈를 말한다. 한국 여성들에게 흔한 사이즈지만 이들을 위한 모델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 2~3년간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나이키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과 시니어 모델을 기용했고, 빅토리아 시크릿은 8등신 여성들이 몸매를 과시하는 패션쇼를 중단했다.

<트렌드코리아 2019>에 따르면 올 한 해는 '자기 몸 긍정주의'가 확산돼 패션 산업에서 이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외에도 ▲펨테크(여성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기술·상품) ▲아이웨이(사람의 가치를 몸무게와 외모로 평가하는 풍조를 반대하는 운동) ▲어글리시크(못생긴 매력) 등 외모지상주의에 반대하는 신조어가 쏟아져 나왔다.

유튜버 치도는 제1회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 '내일 입을 옷'을 개최하며 내추럴 사이즈 모델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1월 24일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신림동 '치도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네가 하면 되잖아' 친구 말에 용기 얻어 시작
 
 유튜브 채널 ‘치도_내추럴사이즈모델’
 유튜브 채널 ‘치도_내추럴사이즈모델’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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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처음에는 (마른) 모델을 준비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이어트 강박증과 식이장애를 겪게 됐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플러스 사이즈 모델에 도전해보니까 거기마저도 '살을 더 찌워오라'고 말하더라고요. 결국 모델을 하려면 내 몸 상태를 부정하고 살을 빼든지 찌워야 했어요.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찾아보다가 해외에 있는 내추럴 사이즈 모델을 알게 됐어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이 분야를 만들었더라고요."

- 내추럴 사이즈 모델이라는 개념을 한국에 들여오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지식인에 '변호사 되는 법'이라고 치면 뭐라도 나오잖아요. 그런데 내추럴 사이즈 모델을 검색했더니 아무것도 안 나오는 거예요. '(내추럴 사이즈 모델을)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례가 있으면 따라가면 되는데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까 답답했죠. 그런데 한 친구가 대뜸 '그럼 네가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더라고요. 용기를 얻어 시작하게 됐죠."

- 내추럴 사이즈 모델로 활동하면서 유튜브를 병행하게 된 계기는?
"내추럴 사이즈 모델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정보가 없잖아요. 우선 이걸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유튜브 채널이 잘되면 내추럴 사이즈 모델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도 입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면 내추럴 사이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패션업계에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 유튜브를 처음 시작할 때 심정은 어땠나?
"사실 큰 기대는 없었어요. 초반에 사람들이 별 반응을 안 보여도 그러려니 했어요. 애초에 내추럴 사이즈 모델을 시작할 때부터 이런 분위기여서 그런지 익숙했죠. 만나는 사람마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고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분위기였거든요."

- 그런데 벌써 구독자가 15만 명을 넘었다.
"제 개인적인 기쁨도 있지만 대한민국 내추럴 사이즈 모델의 승리라고 생각해요. 언론에 등장하거나 목소리가 주목받게 되는 건 사람들이 모여야 가능하잖아요. 사람들이 점차 저를 인정하다 보니 패션업계에서도 저를 부를 수밖에 없어요. 그들은 사업가이기 때문에 이윤 추구를 하는 존재인데, 내추럴 사이즈 분야가 사업성을 보이니까 이쪽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거죠.

내추럴 사이즈는 패션업계에 받아들여져야 할 산업 중 하나예요. 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단지 안 보였을 뿐 분명히 존재해왔거든요. 구독자 상승은 결국 다양한 사이즈를 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 실제로 사이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 봤나?
"모델을 준비하면서 식이장애와 강박증을 겪었던 이야기를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막상 전혀 안 그럴 것 같았던 친구들이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더라고요. 누가 봐도 남부러울 것 없이 인기 많고 잘나가는 친구들이었거든요. 사이즈가 저보다 덜 나가든 비슷하든 더 나가든 옷 문제뿐만 아니라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압박 때문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자기 몸 긍정주의)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 어떻게 도움을 줬나?
"제 몸무게, 키를 싹 다 공개했어요. 그냥 재밌고 가볍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옷 갈아입는 장면도 보여주고 영상을 올릴 때 몸매 보정도 안 해요. (몸매 때문에)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옷 입는 걸 즐기는 거죠."

내가 어떤 모습이든지 사랑해주겠다
 
 치도 옷입히기 콘텐츠
 치도 옷입히기 콘텐츠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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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좋아하는 영상은?
"'치도 옷입히기' 콘텐츠요. 처음에는 (한국 사회 정서상) 사람들이 잘 받아들일까, 욕먹는 건 아닐까 고민했어요. 다행히도 많은 분이 잘 이해해주시고 실제로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도 와요. '치도님 덕분에 아이보리색 바지 입어봤어요'부터 시작해서 청바지, 슬랙스 등 구독자들이 신나서 인증샷까지 찍어 보내요. 흰 바지는 살 빼고 입어야 한다거나 하체 비만은 입으면 안 된다는 통념이 있잖아요. 구독자들이 주변 시선을 이겨내고 실제로 도전한 걸 보니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 보디 포지티브가 확산되기 위해 소비자들이 할 일이 있다면?
"이러한 콘텐츠를 재밌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거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본 콘텐츠를 떠올려보세요. 본받을 만한 여성 캐릭터를 생각하면 다 예쁘고 말랐고, 시련을 겪고 해피엔딩을 맞는 여성들은 모두 아름답고 완벽한 몸매를 가졌죠. 아니면 개그우먼이나 엄마 캐릭터.

저는 미디어가 여성을 그리는 방식이 되게 한정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콘텐츠를 많이 소비해주셔야 미디어 산업은 이를 따르거든요. 이런 콘텐츠를 보고 자라난 아이들은 우리랑 생각이 다를 거예요."

- 악성 댓글도 많았을 텐데
"'너는 비만을 긍정하려는 게 아니냐'는 악플이 기억에 남아요.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던 게 기사화됐는데 악플이 엄청나더라고요. 기자님이 댓글 보지 말라고 연락까지 할 정도였어요. 이미 제가 하고 있는 활동을 이해해주신 분들은 '단면만 보고 얘기하지 말라'고 대댓글을 달아주셨더라고요. 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찾아보거나 왜 이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면 그렇게 말하지 못하셨을 텐데..."

- 얼마 전 다이어트 시술이나 성형광고 제의를 거부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식이장애와 다이어트 강박을 얘기하는 영상 앞에 다이어트 약 광고가 나오는 거예요. 그건 제가 달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보디 포지티브 유튜버한테 이런 광고를 제의한다는 게 용납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싫었어요."

- 힘들 때마다 극복한 방법이 있다면?
"저도 아직 완벽하지 않거든요. 보디 포지티브 활동을 하면서 제 몸을 사랑하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저도 대한민국에 살다 보니까 똑같이 몸평(몸매평가), 얼평(얼굴평가)을 들어요. 지하철에서, 미디어에서 성형 조장 광고가 나올 때마다 저도 가끔 약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약속한 게 있어요. 내가 어떤 모습이든지 나를 사랑해주겠다고. 옆에 아무도 남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사랑해주겠다고 말이에요."

-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이렇게 스튜디오를 단장했잖아요. 저만 쓰는 공간으로 사용할 게 아니라 문화복합공간으로 만들 예정이에요. 한두 달에 한 번씩 본받을 만한 여성을 초청해 강연도 열고요. 또 '사이즈 차별 없는 패션쇼'도 계속 개최하고 싶어요. 패션쇼를 통해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잠시 반짝하고 지나칠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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