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회생활> GV 현장

영화 <사회생활> GV 현장 ⓒ 이창희

 
불타는 금요일의 영화관 나들이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번 주는 조금 특별했지만 말이다. 인디플러스 포항에서는 격주로 '퇴근길 영화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이번 주에는 이시대 감독의 영화 <사회생활>(2019)이 상영작이었다.

사실적인 회사인의 삶을 괴롭게 지켜보고 있자니 영화가 끝난 10시가 되어서야 퇴근하는 느낌을 받았다면 과장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작품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고, 조직이란 무생물이 생물인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은 자연스럽게 나의 것이 되었다.

"경영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기어이 실행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표님의 뜻입니다. 대표의 뜻이 우리의 경영방침입니다."


벌써 20년 가까이 회사 인간으로 살고 있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부딪힌다. 기껏해야 조직을 구성하는 단 한 명일 뿐이니 개인의 의견에 대한 존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네 생각은 필요 없고' 식의 대우를 받다 보면 월급으로 인생을 교환해 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다친다. 입사 계약으로 인간으로서의 권리까지 팔아버린 것일까?

"국가는 민주주의를 선택했지만, 사회 어디에서도 민주주의를 찾아볼 수 없었으니, 제대로 된 혁명은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얼마 전, 즐겨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독일의 68혁명이 대한 해협에서 멈춘 이유를 설명한 문장인데 무릎을 쳤다. 내가 일상 어디에서도 '민주시민'임을 느낄 수 없는데, 제대로 된 민주시민사회로 전환되는 것이 가능했다면 기적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겪었던 '회사들'은 조직의 논리를 내세워 인간을 이용하고는, 쉽게 버릴 수 있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영화 <사회생활> 스틸 컷

영화 <사회생활> 스틸 컷 ⓒ 이시대 감독

 
2002년 이후로 직장을 몇 번 옮기면서 출퇴근 시간이나 업무 강도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내게 주어지는 24시간의 반 이상을 직장에서 보낸다. 최근 20년 중 10년이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의 삶이었는데, 조직에서 느끼는 자괴감이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회사에서는 노예로 살면서 인간의 권리에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은, 정신분열을 강요하는 세상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노동'의 대가가 '월급'으로 교환되었음을 믿고 있기에, 회사가 내 개인을 침해하는 것에는 선을 그었다. 그런데, '회사'라는 조직은 모든 상황에서 개인의 인격까지 집요하게 비집고 들어오며, 개인이라는 존재가 조직에 길들여지기를 바랬다. 그럴수록 나의 '생명'은 적극적으로 면역체계를 가동했고, 저항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부딪혔다.

"여자라서 그런가? 우리 조직에 여자는 안 맞는 것 같아."
"여자는 안 뽑았으면 좋겠어."


생존을 건 방어는 조직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비난을 감내해야 했고, 내가 여기서 '나를 지키겠다'고 버티는 것이 수많은 '후배 여직원'의 길을 막는 것일까 미안해야 했다. 퇴사는 지옥이라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살려면' 그만두는 게 낫겠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몇 번은 그 곳을 도망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채 살아있는 '개인'이할 수 있는 일은, 버텨내고 또 견뎌내는 것뿐이었다.

"네 뜻은 알지만, 그렇게까지 혼자서만 힘들 필요가 있어? 어차피 조직의 결정을 뒤집을 수도 없잖아."
 
 영화 <사회생활> 스틸 컷

영화 <사회생활> 스틸 컷 ⓒ 이시대 감독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냉대와 질시를 견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계속 움츠러들었고 자신이 하찮게 느껴져서, 누구 앞에도 쉽게 나설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를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숨구멍은 언제나 있었고, 그들에게 기대어 간신히 이 곳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숨구멍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사회생활>의 끔찍한 사무실에도 그런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런 선택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으면 차라리 낫겠어요. 나는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아왔어요. 좋은 직장에 가고 싶어 좋은 학교에 갔고, 그들의 뜻을 거슬러 혹시라도 미움을 받을까 봐 항상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나 자신이 사라지더라고요. 이젠, 더 이상 떠밀려 다니지 않으려고요. 내가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될 때 그만 둘래요."
- <사회생활> 중 혜원의 대사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가 담긴 소음이 거슬릴 수는 있겠지만, 의도된 불편함을 통해 내가 견뎌야 했던 현실의 세상을 집요하게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조직의 삶을 견뎌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직접 보고, '한 번쯤은 나도 견뎌야 겠다'고 다짐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세상 수많은 혜원이들의 숨구멍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여러분, 버텨도 괜찮아요. 우리, 같이 버텨요!"
오늘날의 영화읽기 사회생활 이시대 감독 포항 인디플러스 회사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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