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형제복지원 피해당사자-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피해 유족 등이 28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만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의 '29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요청했다.
 형제복지원 피해당사자-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피해 유족 등이 28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만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의 "29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요청했다.
ⓒ 이경태

관련사진보기


"내가 우리 아버지 총 맞는 걸 본 사람이다. (기자) 여러분. 사람 총 맞는 것 본 적 있어요? 아버지 가슴에 피가 솟아나는데. (내가) 이걸 가슴에 안은 채, 원한을 품은 채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살아왔다. 부탁드린다. 정말 이 법 좀 통과시켜달라고. 우리 아버지가 무슨 죄가 있어서, 왜 총으로 쏴 죽였는지..."

28일 오후 국회 본청 2층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 앞.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 곽정례 할머니(79)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44)씨가 "어머니, 오늘은 읍소하려고 왔잖아요"면서 그의 등을 쓸었다.

이들은 오는 29일 열릴 국회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을 처리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나 원내대표와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면서 23일째 국회 앞 고공 단식농성 중인 또 다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씨의 단식 중단을 위한 호소이기도 했다.

참고로, 과거사법은 지난 10월 한국당의 불참 속에 가까스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 행안위 소속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28일) 논평을 통해 "(과거사법이) 계속되는 한국당의 어깃장에 본회의에 올라오지 못한 채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요구사항을 대폭 수용하면서 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전에 약속된 면담은 아니었다. 국회 방호직원은 기다림을 택한 이들에게 다가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 약속을 먼저 잡으셔야지. 절차를 밟아달라"고 요청했다. 한씨는 "항의하러 온 게 아니다. 그냥 내일 본회의 처리만 부탁하려고 왔다. 한번 봐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오후 3시부터 열렸던 한국당 '친문농단 게이트 진상조사위원회' 1차 회의가 비공개로 접어든 후부터 원내대표실 문은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다.

"1분만 만나주지"
 
6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 지하철역 출입구 지붕 위에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하라'라고 적힌 점퍼를 입은 한 남성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6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 지하철역 출입구 지붕 위에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하라"라고 적힌 점퍼를 입은 한 남성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나 원내대표를 기다리는 동안, 기자들과 짧은 문답이 이어졌다. 곽정례 할머니는 "내 나이가 79살이요. 유족회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사람도 70이 넘었어요"라며 "우리 목숨 끝나기 전에 우리 아버지 원을 좀 풀고 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한씨는 "내일 법사위가 열리니깐 여야가 합의를 잘 하면 (같은 날 열리는) 본회의에서도 처리될 수 있지 않겠나"라며 내년이면 총선이고 또 다음의 대선과 맞물리면 우리는 또 계속 국회 앞에서 노숙을 이어가야 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날로 23일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위에서 단식 농성 중인 최승우씨의 상태를 걱정했다.

"황교안 대표도 8일 차 단식 때 쓰러지시지 않았나. (최승우씨는) 트라우마에 우울증, 당뇨와 혈압도 있는 사람이다. 곡기를 끊고 이만큼 버티는 건 진짜 힘들다. 과거사법과 관련해 (여야 협상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말을 어제 들었다. 그렇다면 연내 통과가 아니라, 내일 당장 할 수 있을 때 처리해주셨으면 좋겠다. 8년 동안 읍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19대 국회 때도 폐기된 적 있었는데 20대 국회에서도 19대 때처럼 그렇게 기다려달라는 말을 듣고 싶진 않다."

오후 4시 18분께 당 '친문농단 게이트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곽상도 의원이 원내대표실에서 나왔다. 그러나 문은 곧바로 닫혔다.

"세상에, 순경한테 인민군복 입혀놓고 사람들한테 총질했던 사건인데"라며 전쟁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곽 할머니는 "1분만 만나주지"라고 중얼거렸다.

무릎까지 꿇고 "제발 한번만 살려달라" 외쳤지만...

나경원 원내대표는 오후 5시께 문 밖을 나서서 복도에서 이들과 만났다. 그는 '29일 본회의 처리'를 부탁하는 이들에게 "민주당과 논의해보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사실상 이들의 요청을 거부한 셈.

그는 "(과거사법은) 행안위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것이다. 민주당에서 다시 협의하자고 요청이 와서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과거사위) 조사위원도 지금 교섭단체·비교섭단체 다 넣자고 해서 논의해야 하고, 정리 안 된 것도 많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최대한 수정안을 합의해보라고 하겠다"면서도 "국회도 절차를 지켜야 한다. 아시다시피 패스트트랙 법안도 절차를 위반해서 우리가 문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 원내대표가 떠나려 하자, 이들은 무릎까지 꿇고 재차 과거사법 처리를 호소했다. "제발 한번만 살려주시라", "최승우씨 좀 살려주세요" 호소부터 "우리 아버지가 무슨 죄가 있어서 죽였는데"란 울음도 터졌다. 나 원내대표도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사 조사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사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며 "민주당에 양보하라고 말해주시라"고 말했다.

이후 나 원내대표는 차를 타고 본청을 떠났다. 끝까지 그를 따라가던 한씨 등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어찌 모른 척을 하느냐", "오늘이 23일째야. 죽으면 어떡할 거야"라고 울었다. 곽 할머니도 울분을 토해냈다.

"지금 20일 넘게 그러고(단식) 있는데, 무슨 법이 틀렸느니 이런 얘기를 하나? 그러면 어떤 법으로 내 아버지를 죽였는지 대답하라고 해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태그:#나경원, #과거사법, #형제복지원, #단식농성, #민간인학살
댓글2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