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신영숙

<레베카> 신영숙 ⓒ EMK뮤지컬컴퍼니

 
"제게 <레베카>요? 뭘까요. 처음에는 도전이긴 했지만, 제게 상징은 '황금별'(<모차르트!>)이니까. 자부심? 숨도 못 쉬게 하는 지독한 사랑? 독한 사랑?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인터뷰 말미, 뮤지컬 배우 신영숙이 질문을 던졌다. '지독한 사랑', '영원한 생명', '지지 않는 꽃' 등 많은 의견이 쏟아졌지만 신영숙은 고심 끝에 "자부심"이라고 답했다.

<레베카> 외에도, <맘마미아> <모차르트!>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 <명성황후> <팬텀> <캣츠>등 다수 작품에 출연한 신영숙. 하지만, 초연 때부터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레베카>는 그에게 분명 남다른 의미로 느껴졌다. 다양한 장르를 불문하고, 앙상블, 조연을 거쳐 전성기를 향유하고 있는 배우 신영숙을 지난 5일 서울 명동 CGV에서 만났다.
 
"배우는 오디션의 연속이에요. <명성황후> 합격했을 때의 기쁨이 아직도 너무 생생해요. 좋은 작품을 많이 할 수 있다니, 요즘이 전성기 맞는 거 같아요(웃음). 이제 좀 쉬라는 얘기도 많이 들어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렇게 좋은 역할을 제가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쉴 수 있나요! 오디션에 합격했던 기쁨과,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며, 전성기를 지치지 않고 해내고 있어요. <레베카> 댄버스 부인을 다시 맡게 돼 너무 감사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꿈같고 영광스러워요."
 
<레베카>는 대프니 듀모리에 소설을 원작으로, 히치콕의 동명 영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미스터리한 사고로 아내 레베라를 잃은 막심 드 윈터와 사랑에 빠지는 인물, 나(I), 그리고 나를 경계하는 댄버스 부인과의 갈등이 그려진다. 쫀쫀하게 짜인 스토리, 로맨스, 반전과 서스펜스가 녹아들어 극이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게 <레베카>의 매력이다. 2013년 초연 돼, 2014년, 2016년, 2017년까지 총 517회 공연, 6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다섯번 째 오르기 무대이기 때문에 인물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산이다. 신영숙은 "하면 할수록 내면 연기가 깊어진다"라고 말했다. 인물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 느껴졌다.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 신영숙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 신영숙 ⓒ EMK뮤지컬컴퍼니

 
"나이 들면서 제 안의 경험이 쌓이면서 인물에 더 녹아들어서 그런 거 같아요. 초연 때는 넘버를 파워풀하게 불렀어요. 역할이 역할이니 만큼, 외적인 면만 부각한 거죠.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인물의 행동에서 '이유'를 찾게 되더라고요. 눈만 희번덕거리는 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 그런 눈빛과 손동작이 나오는지 말예요.

연습이 미리 돼 있고 매번하다 보니, 댄버스 부인의 마음을 더 깊고 디테일하게 파고들게 돼요. 깊이 있는 인물로요. 예전에는 반전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 더 있었다면, 이번에는 '분노'가 더 많아졌음을 느껴요. 더 무서워졌다고 할까요? 분석하고 연기하다보니, 슬픔보다 분노가 더 커지더라고요. 오늘 연습하는데도,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더라고요. 슬픔이 깊어져서 분노가 됐나 봐요."

 
회를 거듭할수록 슬픔이 깊어진다는 신영숙. 댄버스 부인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에 어떻게 다가갔을까. 그는 "아직도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소시오패스가 아니더라도 각진 성격의 사람을 만났을 때, 아무 것도 안 해도 분위기가 경직되고 불편하고 그러잖아요. 댄버스는 그런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잘못된 신념을 확고하게 갖고 있고 그로 인해서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고,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판단하고 밀어붙이는 사람이요. 그런 면에서 모나고 불편한 모습, 마주쳤을 때 스산함이 느껴지게요. 말이나 동작 뿐 아니라 그의 걸음걸이, 등장만으로도 '서늘'해지게요. 관객들이 '에어컨 더 틀었나' 생각하신다고 하던데(웃음). 그런 표현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평단, 관객들 사이에서 그냥 흘러나오는 호평이 아니었다. 신영숙은 <레베카>로 2016년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며 그 뜨거움을 입증했다. 댄버스 부인을 표현하기 위해 남다른 과정을 거쳐 감정을 이입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수상과 호평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레베카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생각해요. 진실되게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마음 아픈 기사, 다큐멘터리 등을 자세히 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감정, 상실과 고통을 이입해요. 그래야 감정이 나오거든요. 그 고통이 연기로 승화돼 나와요. 한 시간 전부터 감정에 이입하면 너무 힘들고, 공연 전 바로 그 인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배우라 그런지, 어떤 걸 봐도 별 것도 아닌 것에도 이입이 잘 돼요. 초연 때는 <레베카> 넘버를 매일 틀어놨어요. 찬물로 샤워를 하고(웃음) 오버했던 시절도 있고요."

 
한(恨)서린 인물, 폭발하는 감정을 활어처럼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에는 이 같은 힘든 과정이 있었다. 이 힘든 감정을 다스리기도 쉽지 않을 터. 신영숙은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어두운 역할을 하면 몸이 아파요. 건강한 정신으로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힘든 건 잘 잊고, 좋은 건 오래 잘 기억하려고 하죠. 이런 마음이 앙상블부터 힘들게 올라오면서도 지치지 않고 작품을 계속 하게 한 힘이 됐고요."
 
한걸음, 한걸음 디뎌 온 길이기 때문에, 절대로 마음의 긴장을 풀 수도 없다. 행복하고, 즐겁지만 그만큼 더 막중해진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졌다. 배우 신영숙이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뮤지컬 배우 신영숙

뮤지컬 배우 신영숙 ⓒ EMK뮤지컬컴퍼니

 
"전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에요. 이름처럼 평범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고, 가끔 자기 관리도 못하는 사람인데 말이죠. 하지만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정말 열심히 했어요. 가진 게 대단하지 않아도, 정말 일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임했죠. 부족함 속에서도 자책도 했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배우 신영숙으로서는 완벽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려는 열정을 가지고요."
 

신영숙의 이 같은 열정은, '노력'으로 드러났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무대에, 함께 하는 배우들, 스탭, 관객들과의 '약속'을 허투루 여기지 않고, 완벽한 무대를 위해 체력과 정신 건강도 챙겼다. 복합적인 것들로 말이다.
 
"부끄럽지 않은 모습 보이려고 노력해요.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무대는 라이브다 보니 체력적, 정신적으로 늘 긴장 속에 사니까요. 관객들이 캐스팅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약속한 날은 지키려고 하고요.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늘, 정신과 체력을 강하게 다지려고 해요. 사실 제가 자기 관리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에요. 모든 걸 무대에 쏟아내고, 기분 좋게 한 잔 하는 시간이 포기 안 되더라고요. 목에는 지장이 없지만, (몸매) 관리해야 하는데 그런 재미도 있어야 하지 않나요(웃음). (체력을 위해) 한강도 뛰고, 등산도 즐겨해요. 자세교정에 좋아 필라테스도 하죠. 등산 다녀와서 전만 먹지 않으면 2kg는 빠지더라고요(웃음)."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았기에, 더더욱 특별한 날들일 수밖에 없다. 꿈꿨던 작품에 이름도 올리고, 뜨거운 호평도 받고 있다. 올해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눈물이 나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캣츠> 주인공을 하면서, 진지하고 무거운 역할로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어요. 완벽하진 않았겠지만 잘 해냈기 때문에 다른 기회가 왔을 거고. 그 기회에 또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면서 데뷔작 <명성황후> 20주년에 명성황후로 출연도 하고, 꿈꾸던 <맘마미아> 도나 역도 하게 됐어요. <엘리자벳>도 마찬가지고요. 꿈꿔온 작품을 이렇게 늦게나마 이루고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데뷔 20주년을 맞아 감사 콘서트를 했어요. <모차르트!>를 하면서 인지도와 사랑을 함께 받게 됐고요. 댄버스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엘리자벳>을 꿈꿨어요. 올해 할 수 있어 굉장히 기뻤죠. 오스트리아에서 <엘리자벳> 공연될 때, 팬들이 작품을 너무 좋아한다며, 번역해서 번역본을 선물한 적 있어요. 엘리자벳 얼굴에 제 얼굴을 합성해서요. 너무 잘 어울린다고 말하기도 했죠. 공연 끝나고 팬들과 로비에서 눈물바다가 돼서 기쁨과 감동을 함께 했어요. 팬 분들과 함께 무대를 꾸민 듯한 감격이 잊혀 지지 않아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직업병이에요. 감정 이입을 잘해서요(웃음)."
 
신영숙은 관객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여지없이 나타냈다. 그는 자신의 무대에 대해서 "관객들의 사랑의 힘이 컸다"라고 공을 돌렸다.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 신영숙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 신영숙 ⓒ EMK뮤지컬컴퍼니

 
"제 공연에 힘을 얻고 간다는 말씀에 피로감이 싹 사라지는 거 같아요. 팬 분들의 편지, 글을 보면 정말 감사한 마음이죠. 다시 힘을 내는 원동력이고요. 배우는 관객이 있고, 봐줄 사람이 있어야 존재하는 직업이잖아요."
 
이른 바 '신영숙의 전성시대'다. 최선을 다해 무대에 임하고, 호평을 잇고, 관객들과의 약속을 지키며 맞은 오늘날이다. 맡고 싶은 역할, 임하고 싶은 작품도 차근차근 이뤄가고 있다. 믿고 보게 되고, '역시나'를 외치게 하는 배우 신영숙. 하지만, 그가 앞으로도 이루고픈 '꿈'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더 꿈꾸고 도전하고 싶어요. 관객들에게, 후배들에게도, 앙상블부터 시작해 조연, 코믹 등 다양한 작품을 하고 꿈을 이룬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굳건한 어른, 배우 말예요. 주어진 작품도 최선을 다해 다가올 앞날도 전성이가 될 수 있게 기대를 걸어 봐요."

 
한편 <레베카>는 오는 2020년 3월 15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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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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