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 이놈의 줄은 왜 꺼낼 때마다 실뭉치처럼 뒤엉켜있는 거야.'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는 출근길 9호선 지하철 안.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꼬인 이어폰 줄을 풀자니 여간 성가시지 않다. 미리 꼬이고 엉킨 줄을 정리했어야 했는데, 머리는 반쯤 젖은 채로 미친 듯이 뛰어 제시간에 역에 도착하느라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지하철에 올라탔다.

출퇴근 시간에 인구밀도 높기로 악명 높은 9호선 안에서는 조금만 동작이 커져도 앞사람 등짝을 치든지, 뒷사람 명치를 날릴 수 있다. 기어들어가는 움직임으로 이어폰 줄을 사부작사부작 풀고 있다. 그냥 눈을 감고 명상이나 할까 싶다가도, 속세에 찌든 이 몸은 비트가 강한 현대음악과 함께 아침을 시작하고 싶은 욕망이 더 강렬하다.

그런데 줄이 쉽사리 풀리지를 않는다. 분명히 넣을 때는 둥글게 말아 예쁘게 정리하여 넣은 것 같은데 꺼낼 때마다 비비 꼬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어폰은 최대의 미스터리다. 도대체 가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음악에 대한 갈망의 승리랄까, 역경 속에서도 줄을 풀어냈다. 아싸. 이제 나만의 뮤직 스테이션 시작이다.

얼리어답터는 무슨 어답터의 한 종류인가 싶은 나는 디지털기기에는 취미가 1도 없는 사람이다. 방송프로그램에서 줄 없는 이어폰을 모른다는 이유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자연인 취급받던 이효리의 "이어폰은 줄이 있어야 제 맛이지"라는 명언에, 줄이 늘어진 유선이어폰을 애용하는 사람으로서 "맞는 말이다"라며 맞장구를 쳤던 나였는데, 요새 들어 자꾸 줄이 없는 무선이어폰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 사람들은 참 빠르기도 하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콩나물 대가리를 귀에 끼고 다니냐는 둥, 허공에 대고 중얼중얼 말을 하고 다니는 게 이상하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무선이어폰을 끼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9호선은 눈앞에 보이는 게 앞사람 뒤통수뿐인지라 다소나마 여유로운 5호선 출근길에 주위를 둘러보니 무선이어폰을 낀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몇 명이나 쓰고 있는 거지? 쓸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손가락을 꼽으며 사람들을 세고 있다. '유선이어폰 하나, 둘, 셋... 무선은 하나, 둘, 셋, 앗 저기 고개 드니까 보이는 사람 하나 더...' 머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탓에 무선이어폰을 쓰는 사람을 정확하게 세기는 어려웠지만 내 시야에 보이는 사람들 중 유선은 5명, 무선은 6명이 쓰고 있었다. 무선이어폰이 주류가 되는 세상이 오는 건 시간 문제인 거 같다.  
 
 무선이어폰을 착용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선이어폰의 줄을 낑낑거리며 풀고 있자니 왠지 혼자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선이어폰을 착용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선이어폰의 줄을 낑낑거리며 풀고 있자니 왠지 혼자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일단 걸리적거리는 줄이 없으니 편할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모양새도 좀 더 나 보이고, 세상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귀에 하나 정도는 꽂고 다녀야 트렌디한 사람처럼 보이는, 뭐랄까 좀 있어 보이는 디지털 신문물.

유선이어폰의 줄을 낑낑거리며 풀고 있자니 왠지 혼자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내리다 다른 사람의 가방에 줄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귀가 당겨 아픈 건 둘째 치고, 재빠르게 줄이 걸린 가방을 찾아 줄을 떼어놓고 지하철 문을 통과해야 하니 약간의 무안함과 함께 짜증이 몰려온다. 아, 이놈의 줄.

무릇 현대인이라면 이 정도 디지털기기는 장착하고 다녀야 하나 싶은 조바심 같은 게 생기는 것 같다. 나 혼자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건가 싶은 불안감도 살짝 든다. 잘 쓰고 있는 유선이어폰을 굳이 무선이어폰으로 바꿔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데도 하나 장만할까 마음이 드는 건 그저 허세인가 싶기도 하고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그렇다고 무선이어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탓하는 건 아니다. 무선이어폰이 꼭 필요한 사람도 있을 거고, 새로운 디지털기기를 쓰면서 삶이 즐거워지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저 예쁘고 멋있어서 사용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무슨 이유에서건 무선이어폰을 사용해서 긍정의 효과를 보는 사람이라면 쓰는 게 오히려 이득이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무선이어폰이 개인의 취향이라면 그걸로 오케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단, 나에게 있어서는 해당 사항이 새털만큼도 없는데 남들 다 하니 나도 하나 사볼까 하는 생각에 왠지 좀 씁쓸하면서 내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진다.

줄이 꼬깃꼬깃한 나의 이어폰은 핸드폰을 샀을 때 상자에 들어있던 이어폰이다. 이어폰으로 통화도 가능하고, 음악 볼륨도 조정이 가능해서 처음에 받아보고는 얼마나 좋아했던지. 이미 그 정도 성능의 이어폰은 차고 넘치게 많았지만 전자기기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나는 'IT 기술이란 건 자고로 이런 게 아니겠냐'며 좋아했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그 세상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나도 변하나보다. 관심 없던 나도 무선이어폰을 보고는 물욕이 동하는 걸 보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맞춰서 나도 꼭 달라져야 할까? 남들이 가진 건 나도 꼭 가지고 있어야 하나? 아니, 아니다. 적어도 나의 속도로 살아가는 나의 세상에서는 아니다. 대세라고 해서 굳이 나의 것을 버리고 거기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

내가 세상 유행에 민감한 유행선도자도 아니고, 세상이 변하는 속도보다 좀 늦게 유유자적 나 혼자 걸어간다고 해서 내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남들 다 무선이어폰을 귀에 끼고 다니는 날이 와도, 난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이효리는 줄 있는 이어폰 끼고 다니겠지 뭐. 그녀는 모르겠지만, 이어폰 줄 하나로 그녀는 나의 동지가 되었다.

조금 구식이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채워주고, 이미 나의 손을 타며 정이 듬뿍 들어버린 나의 줄 꼬인 이어폰을 소중히 아껴 쓰며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보련다. 꼬깃꼬깃 구겨진 몰골을 하루에 몇 번이고 펴 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하지만 나의 소중한 유선이어폰은 아직 성능이 빵빵하니, 세상 힘든 출근길도 문제없다. 절제된 몸동작으로 줄만 풀어주면 오늘도 나만의 뮤직 스테이션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