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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외노조 탄압으로 2016년 상반기에 해고된 전교조 해직 교사들은 지난 11월 18일 삭발과 오체투지를 통해 노동법 개악 저지, 법외노조 취소, 그리고 해고자 원직복직을 위한 집중투쟁을 선포했다. 

이 글은 한 해직 교사에 대한 한 현직교사의 기록이다. 제 머리를 깎고 길바닥에 몸을 내던지며 몸부림치는 그를 바라보며 쓴 회상과 위로와 전망의 메시지다. - 기자 말.

  
 지난 11월 18일, 전교조 법외노조 해직교사들이 삭발 후 청와대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앞줄 왼쪽으로부터 손호만 전교조 해고자 원복투 위원장, 박세영 해직교사, 조창익 전 전교조 위원장(10월 29일, 서울고용노동청 농성 중 경찰의 폭력적인 연행으로 팔 부상)
 지난 11월 18일, 전교조 법외노조 해직교사들이 삭발 후 청와대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앞줄 왼쪽으로부터 손호만 전교조 해고자 원복투 위원장, 박세영 해직교사, 조창익 전 전교조 위원장(10월 29일, 서울고용노동청 농성 중 경찰의 폭력적인 연행으로 팔 부상)
ⓒ 홍근진 전교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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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불리거나, 불리지 않거나. 설령 그것이 착각에 의한 잘못일지라도. 이름은 있어야 할 자리를 규정하거나, 그로부터 감정이나 감각을 일으키거나, 현상을 표현한다. 부르는 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름으로 부르며, 그 이름에 나름의 이미지를 가진다. 

나는 그를 박새라고 불렀다. 박새라 부른 건 내가 잘못 안 탓이었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누구도 그를 박새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나는 박새라고 부를 때, 오규원 시인이 쓴 '발자국과 깊이'라는 시의 이미지와 정동을 떠올렸다. 

어제는 펑펑 흰 눈이 내려 눈부셨고
오늘은 여전히 하얗게 눈이 쌓여 눈부시다
뜰에서는 박새 한 마리가
자기가 찍은 발자국의 깊이를
보고 있다
깊이를 보고 있는 박새가
깊이보다 먼저 눈부시다
기다렸다는 듯이 저만치 앞서 가던
박새 한 마리 눈 위에 붙어 있는
자기의 그림자를 뜯어내어 몸에 붙이고
불쑥 날아오른다 그리고 
허공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지워버린다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허공이 눈부시다.


새가 눈 위에 찍어 놓은 삶의 무게, 살아 온 시간들의 깊이. 눈 쌓인 들이나 빈 공간에서 그림자를 더하거나 덜어낼 수 있다. 사건들의 중첩인 시간 앞에서는 자신조차도 지워버리지 못한다. 눈이 어제 내렸지만, 그 눈은 어제에만 있지 않고 오늘 위에도 쌓여 있다. 가끔 소중한 것이 잊히기도 하지만, 지우고 싶은 아픔은 늘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전교조 해직 교사, 직업을 '교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2010년 쯤 그를 합창단에서 처음 만났다. 서울 지역 30여 명의 교사들이 매주 방과후에 모여 합창을 하는 모임이었다. 그는 조심스러운 활동가였다. 간식을 준비하고, 악보를 챙기고, 혹시 모임에 빠진 단원들에게 연락을 하는. 우리들은 꽤나 즐겁게 합창단 활동을 했으며, 몇 번인가는 분에 넘치는 행사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모임을 중단해야 할 사태는 없었지만, 다른 일정이 많기도 하고, 학교 업무량이 늘기도 하는 등의 이유로 합창단은 서로들 각자의 자리, 각자의 교실로 돌아갔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했다. 전교조 조합원들은 이에 반발했고, 전교조는 법외노조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합법화라는 출범 당시의 상황이 재연되었다. 이어 정부는 법외노조 상태에서 노조의 전임으로 활동하는 교사들을 집단으로 해고했다. 그 정부는 임기를 마치지 못했고, 정부가 바뀌었다. 그러나 해고자들은 아직도 해직 교사이며,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다. 

2016년 초 그가 삭발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삭발이나 단식 등은 드문 일은 아니었다. 늪에 빠지거나 절망의 벽에 부딪힌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가끔 그렇지 않던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조차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천막농성을 하고. 법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면 선택할 수단은 몇 가지 남아 있지 않다. 곡기를 끊거나, 탑에 오르거나, 점거하거나. 

그리고 올해 초 그를 만났다. 그는 4년차 해직 교사였다. 합창을 하던 10년 전을 떠올리기도 했으나, 해직의 아픔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전교조의 조합원으로 살아가면서 해직은 가장 입에 올리기 어려운 단어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날선 주장을 하거나,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 있는 그였기에, 그가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걸 듣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드문 경우지만 <워커스 workers> 46호(2018년 9월)에서 해직 교사로서 그의 심경을 조금은 읽을 수 있었다. 여기 인용한 내용은 원문 그대로는 아니다. 상당한 분량을 간추린 것이지만, 임의로 왜곡하거나 더한 것은 없다. 
 
"나는 해직 교사다. 해직 생활 3년 차가 돼 간다. 2015년에 전임을 나왔으니, 전임생활은 4년 차가 된다. 나는 계급의식이 투철하지도, 자본주의에 대해 잘 알지도, 다른 노조의 활동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는, 그야말로 내가 속한 지회에서만 활동했던 현장 조합원이었다. 그런데 2009년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2009년 일제고사로 파란을 겪었다. 소청심사위, 징계위를 오가며,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노와 가슴 떨림으로 1년을 살았다. 그리고는 지부에서 전임으로 일하다가 갑작스런 박근혜정부의 탄압에 의해 해직이 됐다.

해직 이후의 삶은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사는 것 같다. 지난 4년간 소소한 일상적인 삶이 없어졌으며, 그동안의 인간관계도 대거 끊겼다. 여타의 모임에도 참석할 수가 없다. 집은 그저 잠만 자는 곳이 된 지 오래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켜 출근하던 숱한 날들 속에 피로는 누적되고, 몸은 각종 증상과 징후로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병원을 가는 것도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의 일이라 묵힌 증상들은 병이 되어 찾아온다.

간혹 누군가 직업을 물으면, "교…"(사)라고 답하려다 말을 끝맺지 못하고 만다. 요즘처럼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정체성의 9할인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나니, 나의 직업은 무엇일까를 넘어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심지어 이렇게 간절하게 학교를 그리워한 적이 있나 싶다. 

그러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수업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의 내 삶은 학교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정부가 바뀌면 될 거라고 믿었던 복직이 저만치 멀어지고 나니 단단히 조였던 줄 하나가 툭, 하고 끊어진 느낌이다. 시작은 있었는데, 끝이 어디인지 모를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전교조 서울지부 '여러모로' 합창단이 2011년 2월 19일 대성리 연수원에서 열린 서울지부 해오름 연수에서 노래하고 있다. '박새' 박세영 해직교사(알토)는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이 글을 쓴 이철호 현직교사(테너)는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전교조 서울지부 "여러모로" 합창단이 2011년 2월 19일 대성리 수련원에서 열린 서울지부 해오름 연수에서 노래하고 있다. "박새" 박세영 해직교사(알토)는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이 글을 쓴 이철호 현직교사(테너)는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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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8일) 그가 다시 삭발을 했다. 이 정부 들어 두 번째다. 그를 포함한 전교조 법외노조 해고자들은 박근혜의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대하여 법외노조 통보를 한 지 꼭 6년이 되는 지난 10월 24일에 즈음하여,  3일 전인 21일부터 고용노동부 서울고용노동청 청사 안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였다. 면담 요구 농성 9일째인 10월 29일,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농성 현장을 침탈하고 해직 교사들을 폭력으로 연행하여 유치장에 가두었다. 

강제력에 의해 들려나가 본 적이 있는 이들은 안다. 들려 나갈 때의 무력감, 견딜 수 없는 모멸을. 치욕을 달리 표할 길이 없는 그들은 또다시 제 머리를 깎고 길바닥에 몸을 던져 무도한 정부에 대한 분노와 항의를 표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탄압으로 해고된 해직 교사들은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 요구에 폭력 연행으로 답했던 정부의 행태에 대하여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법외노조 즉각 취소, 해고자 원직 복직 조치, 그리고 노동법 개악 중단을 요구하기 위하여 삭발에 이어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그리고 삭발과 오체투지는 올해도 수능을 마치자마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꽃다운 생명에 대한 깊은 애도의 몸부림이며, 입시경쟁교육으로부터 학생들을 구해내지 못한 선생의 아픈 양심의 토로라 말했다. 

교사들에게 해고는 삶보다 더 무겁다. 그러기에 해직된 교사들은 거리에서 수업을 하고, 교문 밖에서 학생들을 만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해직 교사인 그의 이름은 박세영이다. 아직도 거리에 있다. 그 자리에 눈이 쌓이고, 바람이 분다. 자기가 찍은 발자국의 깊이에 몇 년을 갇혀 있다. 그가 눈 위에 붙어 있는 자기의 그림자를 뜯어내어 날아오를 수 있어야 한다. 교실 속으로 돌아가 지나간 고통과 아픔을 지워 내길, 더 이상 학교 가는 길이 참 멀다고 한숨짓지 말기를...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가 법외노조 취소와 해고자 원직복직을 촉구하며 삭발을 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박세영 해직교사가 법외노조 취소와 해고자 원직복직을 촉구하며 삭발을 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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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철호 배문중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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