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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근 풀피리 연주가
 김충근 풀피리 연주가
ⓒ 김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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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진짜 풀잎에서 나는 소리야? 작고 여린 풀잎에서 가락이 나온단 말이지?"

참 신기했다. 오카리나, 피리 소리와는 분명 달랐다. 그런데 풀잎에서 나는 소리, 풀피리였다.

이러한 풀피리를 부는 김충근(59) 풀피리 자연감성 연주가와의 만남은 호기심으로 시작됐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풀깨비 그림책 풀피리 book 콘서트'에서 그는 풀피리로 다양한 곡을 연주했다.

때로 구성지고 그윽하게, 맑고 감미롭게, 신나고 즐겁게, 고음과 저음도 능숙했다. 그는 공연도 했는데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그의 풀깨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풀피리 연주에 따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어른들도 깔깔대며 신이 났다.

풀피리와 그림책으로 아이들과 어른들을 한바탕 즐거운 잔치로 이끌고 마음을 사로잡다니. 연주용 화분과 풀잎들, 공연의 소품 한 꾸러미를 챙겨 그가 떠나자 무대에는 풀깨비 그림책과 풀잎, 풀피리의 진한 여운이 남았다. 다른 북콘서트와는 차별화된 풀피리 그림책 작가의 공연, 그것은 아이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동심과 애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충근 작가는 소년 시절부터 자연에서 뛰놀며 풀피리와 문학과 예술을 좋아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자 최근 그림책 <풀피리 부는 도깨비, 풀깨비>를 펴낸 그림책 작가이다. 한국풀피리협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아이들을 사랑한 만큼 풀피리 사랑에도 끝이 없었다. 김 작가를 만나  풀피리에 대해 더 알아봤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악기

- 풀잎이나 나뭇잎 연주는 신선하면서 생소합니다. 유쾌하고 즐겁게 연주하셔서 그런지 친근하고 익숙한 소리처럼 느껴지고요. 풀피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풀피리는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풀잎이나 나뭇잎 등 식물의 잎을 그대로 사용해 연주해요. 그래서 풀피리는 자연 악기라고 하고, 자연 그대로의 명품 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악기들은 배우고 향유하려면 악기를 사야 하고 강습비 등의 부담이 따르는데 풀피리는 남녀노소, 지위고하, 부와 가난, 권력 등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악기랍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요.

특히 스마트폰이나 인터넷게임 등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한테는 푸른 자연의 잎들이 악기와 놀잇감이 되겠지요. 가족들이 산이나 들에서 풀피리를 연주하면 가족 친화의 자연악기가 될 테고요. 풀피리를 불기 위해 풀잎을 입술에 대는 순간 자연과 입술이 만나면서 우리는 더 깊게 자연을 음미하게 되고, 감성이 풍부해질 겁니다. 이보다 매력적이고 비용이 안 드는 악기가 어디 있겠어요." 

- 풀잎이나 나뭇잎이 재료이니 풀피리 역사도 꽤 됐겠군요.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명품 악기는 역사가 오래됐고, 아주 고가의 악기이지요. 그런데 풀피리 재료는 지구상에 식물이 탄생할 때부터 있었고 인류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으니 역사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랍니다.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민간에서 풀피리를 널리 애용했다고 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문헌에는 정식 궁중악기로 편성해서 연주됐다는 기록이 있어요.

조선 성종 때 궁중음악서인 <악학궤범>에 풀피리를 '초적(草笛, 풀잎, 나뭇잎, 버들피리, 나무껍질을 말아서 소리를 내는 도피필률 등의 총칭)'이라 수록돼 있는데요, 이는 풀피리 악기에 대한 세계적 음악 기록 문헌이에요. 또 <조선왕조실록>에는 '궁중에 초적을 연주하는 악사를 두었다', '궁중에서 가야금, 대금, 향비파 등과 함께 연주됐다'는 기록이 있어요. 연산군과 광해군은 풀피리 애호가이자 명연주자였다고 해요.

이렇게 풀피리는 역사가 오래된 우리나라 전통 자연악기예요. 현재 박찬범 선생님(서울시 무형문화재24호)과 오세철 선생님(경기도 무형문화재제38호)께서 전통 풀피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요.

사단법인 한국풀피리협회에서도 매년 정기연주회와 문화공연을 하고 세계풀피리축제, 각 지역 문화제 행사에서 풀피리 체험부스 등을 운영하며 풀피리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애 쓰고 있답니다. 공립학교에 계시는 풀피리 연주가 선생님들 중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풀피리 꿈나무를 키우는 교육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고요."
 
김충근 풀피리 연주가는 풀피리 버스킹도 한다. 풀피리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 연주가 가능하다. 풀잎이나 나뭇잎은 어느 나라이든 있기 때문이다.
 김충근 풀피리 연주가는 풀피리 버스킹도 한다. 풀피리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 연주가 가능하다. 풀잎이나 나뭇잎은 어느 나라이든 있기 때문이다.
ⓒ 김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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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부터 허브꽃까지, 대도시 풀잎은 조심

- 풀피리 연주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풀잎이나 나뭇잎이 따로 있는지요?
"들과 산에 있는 식물의 둥근 모양 잎들은 대부분 풀피리 재료로 사용할 수 있어요. 그 가운데 아까시잎과 싸리나무잎, 달개비잎, 대추나무잎, 골이 깊은 단풍잎 등은 초보자들이나 어린 학생들이 연습하기에 참 좋아요.

이 잎들은 연하고 부드러워서 소리가 잘 나거든요. 요즘 공기정화식물이라고 각광받고 있는 스파트필름식물의 잎은 풀피리 연주용으로 가장 많이 애용되고 있어요. 이 잎은 특히 겨울철 연주용으로 유용한데요, 한 번 사용 후 찬물에 씻어 다시 넣어두면 싱싱한 상태로 오래 보존할 수 있어 계속 재활용을 할 수 있어요.

이외에도 복숭아나무 잎은 중부지방에서, 망개덩굴 잎은 남부지방에서 애용했고 아까시, 비비추, 원추리, 옥잠화 잎은 지역에 상관없이 풀피리 연주용으로 깊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게다가 목련꽃잎, 연꽃잎으로도 연주를 할 수 있답니다."

- 꽃잎으로도 연주가 가능하다고요?
"향기 그득한 목련꽃이나 연꽃, 도라지꽃잎 등 너른 꽃잎으로도 연주할 수 있어요. 목련꽃 아래서 목련꽃 노래 연주를 하면 목련나무가 자기 몸으로 내는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허브잎이나 허브꽃을 따서 풀피리를 불면 향기테라피 풀피리가 된답니다."

- 풀피리 재료로 적합하지 않은 잎도 있지요?
"가시나무와 옻나무 등은 매우 주의해야 해요. 아파트 주변이나 대도시에 있는 잎들은 오염 돼 있거나 농약을 쳤을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하고요. 보통 자연 상태에서 소나 벌레가 먹는 식물은 사람도 먹을 수 있고 안전하지만 잘 알 수 없는 풀은 함부로 입에 되면 안돼요. 독초일 수도 있으니까요."

- 선생님은 동요부터 민요, 가요, 트로트, 가곡 오페라가곡까지 장르 불문하고 자유자재로 연주하시지요. 처음 배울 때는 어떠셨나요?
"어느덧 십년 전인데요, 교원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양 강좌에서 경기무형문화재 오세철 선생님의 풀피리 연주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풀잎 한 잎으로 가락을 빚으시는데 그 풀피리 소리가 너무나 놀라웠고 매력적이었어요. 매료돼서 당장 배워야겠다고 맘먹고 시작했죠.

그런데 처음 일주일 동안은 풀피리 소리가 안 나왔어요. 어렸을 때 버들피리나 보리피리를 불어본 적이 있어서 쉽게 생각했는데 음정을 만들어 노래 연주를 한다는 것은 생각을 못한 거죠.

불성무물(不成無物). 성실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자성어가 있죠. 무슨 일이든 한번 시작하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해요. 우리 학생들한테 풀피리를 가르쳐줄 때도 '백한 번째 소리가 난다'라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줘요. 한두 번 시도해 보고는 풀피리 소리가 안 난다고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세계여행하며 풀피리 버스킹을
 
<풀피리 부는 도깨비, 풀깨비>, 강원도 횡성의 산골에서 살던 어린시절부터 풀피리와 문학과 음악, 예술을 사랑한 김충근 작가의 인생종합작품.
 <풀피리 부는 도깨비, 풀깨비>, 강원도 횡성의 산골에서 살던 어린시절부터 풀피리와 문학과 음악, 예술을 사랑한 김충근 작가의 인생종합작품.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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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피리를 불어보고 싶습니다. 풀피리 연주법을 조금 알려주세요.
"풀피리는 입에서 부는 바람으로 풀잎 윗면을 진동시키고 그 떨림으로 소리와 음정이 만들어지면서 음악적 표현을 하는 것인데요, 엄지와 검지로 풀잎의 뒷면 양쪽 위쪽을 잡고 자신의 입술 너비 정도로 벌려 적당히 팽팽하게 유지시킨 다음 풀잎을 입술에 막는 듯이 대고 입바람을 내불어요. 이때 윗입술과 풀잎 끝의 윗면 사이로만 입바람이 나가도록 '프' 하고 불면 '삐' 소리가 납니다."

- 세계 여행을 가고파서 영어를 전공하셨고, 방학 때면 배낭을 꾸려 세계 여행을 떠나시지요. 풀피리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버스킹도 하시구요.
"풀피리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곳이든 연주가 가능하답니다. 풀잎은 휴대도 간편해요. 야외 공원이나 외국 여행을 갈 경우 현지의 풀잎이나 나뭇잎 한 개 따서 불면 되거든요. 세계 어느 곳이든 풀잎과 나뭇잎은 있잖아요.  

풀잎 하나 들고 세계를 여행하며 유명한 문화 명소나 거리에서 우리 아리랑 연주를 하는 것이 꿈이고요. 우리 전통 아리랑을 알리고, 그 나라의 음악을 풀피리로 연주하면서 문화교류를 하는 것이지요. 풀잎 하나면 누구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거든요."

- 그림책작가와 풀피리 연주가로서 앞으로 꿈이 많으실 것 같아요. 
"저는 여행을 아주 좋아하고 특히 이륜차(오토바이)여행을 좋아하는데요, 이륜차 타고 우리나라 전국 책방을 순례하며 풀깨비 그림책 풀피리 북콘서트를 하고 싶어요. 학교나 도서관, 마을 회관 등을 찾아 풀피리를 연주하고 풀깨비 그림책 공연을 하면서 아이들과 사람들과 함께 일상에서 문학과 예술을 즐기고 그 힘으로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고요.

악기보급이나 음악 지도 강사가 열악한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에게 풀피리를 알려주고도 싶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이 사는 나라의 마을에 있는 풀잎이나 나뭇잎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되겠지요. 우리 음악을 알려주며 문화 교류도 할 수 있겠고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 현재의 삶을 즐겁게!' 라는 뜻처럼, 풀피리와 오늘을 즐겁게 살면서요."

태그:#풀피리 추억, #한국풀피리협회, #풀피리부는 도깨비, 풀깨비, #김충근 풀피리 연주가, #불성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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