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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한 분이 읽어보라며 책을 건넸다. <90년생이 온다>였다. 아, 베스트셀러인데다, 문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권했다던 그 책. 취향이 이상한 건지, 베스트셀러 책엔 안 끌리지만 일단 접수, 읽어 본다.
 
가독성이 좋아 진도가 빨리 나갔다. 읽고 난 후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 이 책은 상당히 기업경영서인데,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된 걸까? 그리고 정말 읽어야 할 경영인들은 읽었을까? 둘째, 대통령은 이 책을 왜 추천한 걸까?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고, 그들의 고민도 해결할 수 있다"가 추천사이기엔, 이 책의 90년생이 90년생을 보편화하기는 어려운듯한데.
 
'OO세대'라는 호칭을 만들어내며 젊은 세대를 분석한 책은, '잉여세대', '88만원 세대' 등으로 호명되는 부조리를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비판했다. 이와 달리 <90년생이 온다>는 저자 임홍택이 대기업에서 일한 경력이 반영되어, 기업을 위한 미래전략대응서로 읽힌다. 한마디로 이들을 잘 이해해서 기업도 잘 꾸려보고 적실한 마케팅으로 상품도 잘 팔아 영업이익을 내보라는 취지다.

기업을 걱정했다고 해서 나쁜 책일 리 없다. 다만 거기까지다. 저자가 밝혔듯이, <90년생이 온다>의 90년생은 이 시대의 90년생으로 단일하게 환원될 수 없다. 이 책의 90년생은 어느 정도 스펙을 갖춘 남성을 전제한다. 해서 이 책의 90년생엔 계급과 젠더가 지워져있다. 당연히 경제 약자인 90년생, 여성인 90년생, 비정규직인 90년생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90년생은 왜 공무원이 되려 하는가
 
저자는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시족'이라는 현실에, 이들은 대체 왜 공무원이 되려하는가에 의문을 갖는다. 이들을 만나고 발견해 낸 이유는 '워라밸'에 있었다. 적어도 직업으로서의 공무원은 법정근무시간은 보장받을 테니, 회사에 "헌신하고 헌신짝이 되는 일"은 피할 수 있다는 게 이들 공시족의 탄생 근거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워라밸'은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부분에서 류승희 단편집 <그녀들의 방>의 '진영'이 떠올랐다. '진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점에 취업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 일로는 늙어서까지 먹고 살 수 없겠다는 위기를 느끼고, 그간 모은 돈을 종자돈으로 '공시족'의 길로 들어선다. 몇 차례의 낙방 후 겨우 합격한 그는 자기만의 방을 찾아 독립한다. 그가 공무원이 된 건 '워라밸' 때문이 아니라 '생존' 때문이었다.

일단 공무원 시험은 고졸이어도, 스펙이 쳐져도, 여자여도 문은 열려있기 때문에 그나마 도전할 수 있었다. 그는 공무원을 기업 대신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이 유일한 출구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술한 '공시족'이 편파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공시족'이 젠더와 계급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공시족'은 아니지만 90년생을 연상시키는 여러 인물들이 떠오른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 얼마전 방영된 드라마 <회사가기 싫어>의 90년생은 저자가 특정한 90년생의 특징인, 회식 참여 거부하기, 칼퇴근, 혼자 점심 먹기, 회사 임원 되기가 최종목적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구조조정에 몸 사리기, 적은 연봉에도 살아남기 등으로 '워라밸'이 직장생활의 제일 요소가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드라마뿐이 아니다. 90년생인 내 조카는 여성과 고졸이라는 취약함 때문에, 저자가 규정한 회사원 90년대의 특성을 행사하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비치된 책 '90년생이 온다'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비치된 책 "90년생이 온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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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두 가지가 기여하지 않았을까? 90년생을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로 재치 있게 분석해낸 것과 꼰대 체크리스트까지 제공하며 독자에게, '당신도 아마 꼰대아니기 힘들 걸'하며, 꼰대성을 적나라하게 까발긴 것.
 
먼저 저자가 분석 규정한 '90년생성'인 '간단, 재미, 정직'의 키워드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의 목적은 지피지기해서 윈윈하자는 취지이기에, 90년생을 비판하려는 고찰이 아니라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이들이 기업이 대접해야할 인력인 동시에 소비자이기에 그렇다. 우선 잘 부릴려면 이들을 잘 이해하라는 얘기다. 무조건 다그치지 말고 자신의 업무에 스스로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게 해서, 성과와 성장을 경험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회사에 오래 붙어서 일할 거 아니냐는.

그런데 기업이 정말 이들의 이직을 걱정하고는 있는 걸까? 기업 내 90년생들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이해가 가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들 대부분이 남성을 상정하고 있고, 중소기업 또는 영세 사업장 등에서 오늘도 하루를 견디고 있는 '미생'들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90년생을 이해해야 하는 더 큰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이 현재와 미래의 든든한 소비자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니 기업은 안 망하고 싶으면 이들의 소비패턴을 잘 이해하고 파악해 대응하라는 충고다. 소비자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90년대생들의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새로운 취향"을 저격한 일회용 패키징 편의식과 프리미엄 식재료 배송인 마켓컬리를 소개하는데, 수긍되면서도 동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아무리 편리한 게 좋아도 일회용 패키징은 환경 오염을 배제할 수 없다. 
 
90년생은 일단 "재미"있어야 공략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어떤 콘텐츠건 재미가 있어야 보고, 자신 또한 그 '병맛'의 주체가 되는 것을 즐긴다. 3분 안에 읽을 수 있는 초단편소설이 이들의 취향을 저격해서 등장했고, '앱 네이티브'인 이들에게 유튜브가 대세인데 그 이유가 광고가 짧아서다. '갓튜버'는 이들의 꿈의 리스트에도 있을 터, 구독자가 많은 유능한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무조건 재미로 승부해야 하니, 때론 과도하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재미를 주려하기보다, '이 정도 재미는 해야지' 과시하는 나르시시즘의 발로도 보이는 것도 상당해, 그 재미를 재현하는 방식은 심각히 고민할 단계에 와 있다. 게다 2천년생 청소년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생각할 때, 이제는 90년생도 한 세대로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시점이다. '무조건 재미'가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혐오 면허가 돼서는 안 되지 않을까?
 
저자는 "정직"을, "성품이 정직하다거나 어떤 사실에 대해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honest'와 다르다. 나누지 않고 완전한 산태, 온전함이라는 뜻의 'integrity'에 가깝다"(110)고 설명한다. 솔직히 아둔한 필자는 'integrity'가 어떤 정직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공정함은 선진화된 사회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덕목이다. 하지만 기계적인 기회의 공정만 이룬다고 내용과 결과의 공정까지 이루는 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 투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해서 내용의 민주주의를 담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입시나 입사 절차는 당연히 공정해야한다. 그렇다면 그 절차 자체는 정말 공정한가? 우월한 교육기회를 접하는 좋은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 족집게 학원이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 있는 것, 훌륭한 멘토를 얻을 수 있는 것, 좋은 음식 좋은 휴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것 모두가 이미 특권인 것을, 절차와 기회만 공정하다고 공정이 이루어지는 걸까? 이런 조건을 갖지 못한 90년생들에게 공정함은 그저 신기루일 뿐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강점는 꼰대성의 질타에 있다. 내게 이 책을 건넨 지인도 자신의 꼰대성을 돌아보게 되었노라고 했다. 그렇다면 꼰대란 무엇일까? 젊은이들을 생각이 없다거나, 싸가지가 없다거나, 참을성이 없다거나, 이기적이라거나 라고 생각한다면 꼰대일 가능성이 높다. 저자가 제시한 '직장인 꼰대 체크 리스트'를 무사통과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지나는 것만큼 어렵다.

저자는 꼰대 세대가 반성문을 제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체크리스트를 무사통과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차피 꼰대 아님은 어렵다. 차라리 꼰대라는 걸 인정하라는 것, 그리고 '꼰대성'을 좀 다스리라는 것, 그래서 이들과 상생하라는 것.
 
조카가 둘 있는데 모두 90년생이다. 많지 않지만 90년생 청년들도 몇 알고 있다. 내가 이 책의 90년생에 크게 공감하지 못한 건, 저자가 제시한 90년생들의 초상이 이들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책의 90년생들이 선취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상황이 좀 더 어렵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산다.

어떤 90년생이건, 다들 각자의 싸움에서 선전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낸 자신들의 이야기를 '90년생 스스로의 언어'로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잊지 말자. 지금 꼰대라고 우세당하는 세대도 한때는 앞선 세대를 꼰대라 비웃었던 사람들이다. 꼰대 되는 거 잠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게시


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은이), 웨일북(2018)


태그:#90년생이 온다, #임홍택 , #워라밸 , #꼰대, #공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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