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7월 일본 아베 정권의 반도체 수출규제 조치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거셀 무렵, 백범 김구가 남겼다는 다음 명언이 SNS에 널리 퍼졌다.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 배신자를 백번 천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 왜? 왜놈보다 더 무서운 적이니까."

백범 김구는 국모 시해 원수를 갚고자 치하포에서 스치다를 처단하였고, 임시정부를 이끌며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 배후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백범이라면 충분히 했음직한 명언이라 여긴 탓일까. 그가 남긴 명언이라는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KTV 국민방송 "한국 흔들기, 진짜 무서운 내부의 적 [S&News]"(2019. 03. 13) 방송의 한 장면
▲ KTV 국민방송이 인용한 백범 김구 명언 KTV 국민방송 "한국 흔들기, 진짜 무서운 내부의 적 [S&News]"(2019. 03. 13) 방송의 한 장면
ⓒ KTV 캡처

관련사진보기

 

정부정책방송인 KTV에서는 지난 8월 13일 "한국 흔들기, 진짜 무서운 내부의 적 [S&News]"이라는 리포트에서 "지금 가장 두려워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우리 내부의 분열입니다. 밖에서는 일본이 공격하고 안에서는 가짜뉴스가 범람한다면 애초에 없던 위기도 생겨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라고 말한다.

이어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 배신자를 백 번 천 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 왜? 왜놈보다 더 무서운 적이니까'"라고 끝맺었다.

광복회 김원웅 회장은 지난 8월 29일, 경술국치 109주년을 맞아 국회 정론관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친일적폐청산'을 지속할 것임을 강조하며 이 명언을 백범 김구가 남긴 거라며 인용했다.

김진향 박사(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도 지난 9월 15일 여수의 통일 아카데미 강연 서두에 남북 분단이 지속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친일 미(未)청산을 꼽으며 문제의 명언을 인용하였다. 강연 이후 김 박사가 인용한 백범 명언의 출처를 묻자, 그는 "정확한 출처는 잘 모르고 인터넷에서 보았다"고 하였다. 
 
인터넷에서 널리 찾아 볼 수 있는 백범 김구의 "나에게 한 발 총알이..." 명언. 하지만 출처는 찾아볼 수 없다.
▲ 인터넷에 널리 퍼진 백범의 "나에게 한 발 총알이..." 인터넷에서 널리 찾아 볼 수 있는 백범 김구의 "나에게 한 발 총알이..." 명언. 하지만 출처는 찾아볼 수 없다.
ⓒ 정병진

관련사진보기

 
광복회 김원웅 회장도 출처를 알지 못한 채 인용한 건 마찬가지였다. 김 회장은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터넷에서 보았고 출처는 모른다"고 하였다.

<백범 김구 평전> 저자 김삼웅 선생(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전 독립기념관장)은 18일 기자가 문제의 명언을 본 적 있는지, 출처는 어딘지 묻자 "어디서 읽은 기억은 난다. 하지만 출처는 잘 모르겠다. (백범 김구의) 평전도 쓰고 전집도 내면서 많은 자료를 찾아봤는데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하기도 어렵고 그렇다. (백범이) 해방 후 어느 집회에서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구체적으로 출처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김상구 선생(재야 역사학자, <김구 청문회> 저자)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아무래도 조작 같다. 도진순 교수가 편찬한 백범 어록에도 수록되지 않은 말이다. 김구는 민주주의라든가 민중의 고통 등에 관한 발언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위의 말과 비슷한 행동은 했다. 왜놈을 죽이는 것보다 정적을 친일파 매국노 빨갱이 임정 파괴자로 몰아 죽인 경우가 많았다."

백범 김구 연구자로 잘 알려진 도진순 교수(창원대 사학과)에게도 물었으나 그는 답변하지 않았다. 근현대사 연구자 주철희 박사는 "저도 자주 보는 글인데, 출처를 알 수 없다"고 하였고, 정운현 선생(국무총리실 비서실장, 역사학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죄송하다"고 답하였다.

임종금 기자(<대한민국 악인열전> 저자, 역사학)는 "문구가 당시 시대적 상황과 맞지 않는 것 같고 최근에 만들어진 느낌이 강하다. 신채호 선생이 말했다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도 사실이 아니듯이 이 내용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기자는 도진순 교수가 엮고 보탠 <백범어록>에 해당 명언이 나오지 않는지 직접 살펴봤다. 실제로 "나에게 한 발 총알이 있다면..."과 같은 경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약간 비슷한 다음과 같은 문구는 있었다.

"왜적은 퇴각했으나 보이지 않는 왜적이 금일 정치가란 미명美名 속에 살고 있다. 왜놈에게 하던 버릇을 미군에게 하고 있다."(108쪽, '보이지 않는 왜적이 정치가란 이름으로' 말미)

"일제는 이미 이 강산에서 물러갔으나 과거 일제가 뿌려 놓은 독소의 잔재는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 왜적의 통치가 끝난 직후의 과도 혼란 시기에 처한 우리는 자기의 일상 행동에 있어서 비록 무의식적으로라도 이러한 독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항상 반성하고 경각할 필요가 있다." (150쪽, '아! 해방인가?' 말미)

인터넷 검색으로 해당 명언의 가장 오래된 게시 글을 추적해 보았다. 그러다가 필명 '㈜『공방 3/3』『발업』『질럿』™'가 2003년 4월 30일에 한 포털 카페 문학방에 게시한 "[자작소설] 한발의 총알이라도 남아있다면...[프롤로그: 희생]"(http://go9.co/Oz3)이란 제목의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하였다. 이 글에 백범 김구 언급은 없지만, 그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명언과 유사한 다음 문구가 하나 눈에 띄었다.

"한발의 총알이라도 남아있다면, 나는 동료와 테란제국을 위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그 한발의 총알을 내 목숨과 함께 날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태그:#백범 김구, #백범어록, #백범 명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