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갤러리현대(서울 종로구 삼청로)에서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토마스 사라세노의 설치작품을 전시 중이다. 작가는 거미와 거미 망에서 착안된 관계의 미학을 실현하고 있다.

우리의 유년 시절, 거미와 관련된 기억이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특히나 독거미로 통칭되면서 그 생명체를 멀리하고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생김새와 색깔마저 다소 기이했으니 쉽사리 범접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에게 해로울 정도로 위험한 거미는 일부에 불과하고, 게다가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까지 더해져 이 생물에 대한 편견은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 거미를 협업자로 탐색하며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의 존재는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작가에게 거미란 그의 예술적 감흥을 단지 부연하는 존재만으로 머물지 않는다. 협업함으로써 공존을 모색하는 인간 이외의 구체적인 생물이다.
 
"어렸을 때부터 거미줄을 보면서 우리가 인간이 아닌 존재와 살고 있음을 느꼈다"며 "나보다 훨씬 지구에서 오래 산 거미가 나와 협업하며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언해 주는 것"-작가의 말

인간과 다양한 생물이 공생할 수 있는 미래를 구상하며,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환경파괴와 이상 기후 등이 커다란 고민임을 짐작케 한다. 작가는 지난 2017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신작 개인전 '행성 그 사이의 우리'(Our Interplanetary Bodies)를 개최한 바 있다.
 
지하1층에 설치된 'CLOUD CITIES'. “이는 새롭고 대안적인 형태의 도시성과 부유하는 거주 형태에 도전하는 작가의 오랜 예술적 탐구를 시각화한 작품이다.”-갤러리현대
 지하1층에 설치된 "CLOUD CITIES". “이는 새롭고 대안적인 형태의 도시성과 부유하는 거주 형태에 도전하는 작가의 오랜 예술적 탐구를 시각화한 작품이다.”-갤러리현대
ⓒ 황융하

관련사진보기

 
당시에 설치된 아홉 개의 커다란 구, 먼지 입자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대규모 영상 프로젝션은 그가 추구하는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quasi feasible utopia)를 위한 예술적 연구의 지속을 의미한다.
 
우주적 형태와 원형 틀의 변주에 밝은 빛을 제공하며 모든 생물의 공존으로,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탐색한다.
▲ Around the World 우주적 형태와 원형 틀의 변주에 밝은 빛을 제공하며 모든 생물의 공존으로,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탐색한다.
ⓒ 황융하

관련사진보기

 
이번 전시에서 연작 'Around the World'는 우주적인 형태의 조각과 그 내부를 거미줄처럼 굳건하게 연결하고 있다. 건설된 망들은 시간이 박음질된 것처럼 견고하며, 투여된 밝은 빛은 다른 생명의 안식처이자 유토피아적 공간을 형성한다.

거미 망을 형상화한 작품에서 구획된 경계가 시각적으로 확연한 것은 인간에 의해 가름된 모든 영역의 구분들을 무위로 만들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국가의 경계를 비롯하여 지역으로 나뉜 질서는 현대가 유지되는 카오스가 아닐까.

 
공중에 만들어진 거미 망이다. 이 작은 공간에서 거미의 관계, 그 너머의 인간 및 우주를 조망하도록 유도한다.
▲ Hybrid 공중에 만들어진 거미 망이다. 이 작은 공간에서 거미의 관계, 그 너머의 인간 및 우주를 조망하도록 유도한다.
ⓒ 황융하

관련사진보기

 
특히 2층의 전시실에 마련된 하이브리드 작품은 투명 유리 상자 안에 실재의 거미줄로 엮은 그물망이 들어있다. 2~3마리가 일주일에서 8주의 기간 동안 만들어낸 거미줄로 형성된 망에 잉크를 입혀 형태를 완성했다. 단순하고 간결한 실물의 배치처럼 보이지만 이 자그마한 상자 안에 우주라는 세계를 하나의 망으로 연결시켜 모든 관계를 가볍게 포용하려는 작가적 시도라 하겠다.

우주를 부유하는 작품처럼 작가의 예술적 자유로움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의 관계망을 존중하며 공존을 위한 모색이랄 수 있다. 현실의 거미 망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종이 걸려들도록 펴놓은 도구이지 않은가. 이 기능을 넘어 인간과 모든 종을 아우르며 공존의 관계망으로 아우르려는 시선의 변이가 신선하다.

그렇다면 우주의 역사만큼 인간 사이의 견고한 틈, 이것을 증식시키는 차별과 혐오를 딛고 공존의 모색이 가능할지. 인간과 모든 종의 협업은 작가의 바람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작가를 포함한 거미의 아카이빙이자 전문가들의 네트워크인 아라크노필리아의 지속적인 예술적 실험이 그나마 답을 줄 수 있으리라. 전시는 오는 12월 8일까지.

태그:#토마스 사라세노, #갤러리현대, #거미, #공존, #유토피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순응의 질서를 의문하며, 딜레탕트Dilettante로 시대를 산보하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