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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대신 피켓든 의사 대한의사협회 등 6개 의료보건단체가 27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의료영리화 반대 캠페인에서 '국민건강권수호!'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청진기 대신 피켓든 의사 대한의사협회 등 6개 의료보건단체가 "국민건강권수호"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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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응급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일을 하다 과로사로 유명을 달리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기억하는가. 지난 2월 8일 쓴 기사 "'선배 의사' 윤한덕의 죽음이 두려운 이유"에서, 나는 그의 죽음을 '헌신적 죽음'이라고 불렀다.

윤한덕 센터장의 죽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또 다른 의사의 죽음이 있다.  윤 센터장이 유명을 달리하기 3일 전인 2월 1일 가천대 길병원 당직실에서 신형록 전공의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근로복지공단은 8월 5일 신형록씨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의료의 큰 기둥이 될 전공의라는 신분은 의학이라는 학문이 그렇듯 매우 특수하다. 의사이기도 하고, 배우는 학생이기도 하고, 일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짧게는 3년, 길게는 4년(인턴 기간을 제외한) 동안 참으면 된다는 암묵적 동의도 손쉽게 이루어진다. 또한, 모든 사례로 일반화할 수 없지만 고소득 직종인데 과로쯤이야 참아도 되지 않겠냐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소득을 불문하고, 과로가 장려되는 분위기는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국가에서 보건 및 의료 직종의 과로를 합법적으로 장려하는 것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전공의법은 지켜지는가

보건의료 업종은 최근 근로환경과 노동자 삶의 개선을 위해 도입된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직종이다. 대신에 주 80시간 근로를 준수하도록 하는 전공의법이 우선시 되고 있다. 

그런데 최소한의 전공의 생존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 80시간을 지키지 않은 곳이 아직 존재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일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전공의법 위반 병원이 250곳 중 79곳, 그중 22곳은 2년 연속 위반으로 시정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주변 선배들과 연락을 취해본 결과, 물론 과거보다 체감상 노동시간이 조금 줄긴 했지만 다음과 같은 의아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일을 해, 밥을 먹으면서도, 휴가를 나가서도, 콜을 받지."
 "매일 회진 준비를 하는데, 당연히 근로시간에는 포함을 안 하더라. 교육 시간도 마찬가지야."
"주  80시간 이상 일하면 초과수당을 받지 못하는 어이없는 일도 있어. 둘 다 불법이니까."
- 서울 K대학 내과 전공의 4년차 L씨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주 80시간 준수를 위해 EMR(환자정보기록) 셧다운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병원 내 노동환경이 바뀌지 않은 현실에 욱여넣어 그런지 연출을 위한 아슬아슬한 연극으로 전락하고 있다.
 "마치 전공의가 퇴근한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EMR 아이디를 차단하고 있다. 그래서 담당 환자에 대한 진료를 끝내지 못하면 동료 전공의의 아이디를 빌려 처방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 대한전공의 협의회 박지현 회장(9.26 전공의 근로시간 관련 토론회에서)

예견된 의료공백은 누구 손으로 막나?

올해가 바로 내과 3년차와 4년차가 한꺼번에 전문의로 배출되어 어쩔 수 없이 의료진 공백이 생기는 시기라고 한다. 대한전공의협회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로 오는 10월 토론회를 열었지만 이에 대한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2017년부터 전공의 정원 감축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며 최근 입원환자에 대한 전공의 업무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입원전담의의 충원도 잘 진행되고 있지 않다. 대한내과학회 추산에 따르면 입원전담의 예상 수요인원은 2000~4000명이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10월 기준으로 내과 입원전담의는 112명이다.
"고년차(전공의 3~4년차)는 주 80시간을 대체로 넘기지 않으나, 1~2년차는 보통 거의 항상 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다고 봐."
"지금은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옛날에는 특정 인기 과에는 제일 아래 연차인 1년차에게 100일 당직을 시켰어. 100일 동안 그냥 휴일 없이 병원에 있는 거야. 당직으로."
- 서울 S 대학병원 수련의 Y씨

결국 어떻게든 병원이 굴러가려면, 병원의 입장에서는 내부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특히 아직까지도 상명하복이 미덕인 곳이라면 결국 아래 연차 전공의들이 이 고통을 대부분 떠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의사 개개인이 감당하기 너무 큰 짐으로 보인다. 환자안전이 제일이라면, 입원기간 및 불필요한 의료비용 지출의 감소가 목적이라면, 정부나 병원에서 이를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의료시장 안에서 고통받는 전공의, 출구는 어디에?
 
"전공의는 병원이나 국가 입장에서 싸고 좋은 인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은 아닐까."
- 면담에 응한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하는 말

이쯤 돼서 드는 의문이 있다. 많은 국민이 주 52시간을 지키지 않는 기업, 사업주는 망해도 마땅하다고 하면서 병원은 왜 예외일까? 의사의 건강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환자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까? 만약 갑작스러운 의료진 공백이 생기면, 이를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이 모든 문제를 저수가 문제로 일축하곤 한다. 그러나 기업의 트리클다운(낙수효과)의 민낯을 보지 않았나. 기업에 흘러 들어간 돈이 서민들에게 그만큼의 혜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에 흘러 들어간 돈이 과연 의사에게 그대로 전해질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최소한의 관리와 보상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현재 기피과인 외과나 병리과 등에 대해서 국가가 직접 일정 금액을 지원하듯, 미래의 의료진들이 국가의 공공의료에 종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세밀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근 듣게 된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다. 무의촌 지역을 막고 농촌의 공공의료를 보충하는 공중보건의사(현역복무 대체로 지원하는 형태)들에게 수여되는 '업무활동장려금'을 삭감하는 것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현재까지의 분위기로 본다면,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려면 수련 기간 '합법적으로 장려되는' 의료진들의 과로만이 답인 듯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윤과 효율을 위해 젊은 의사들의 희생 정신이 얼마만큼 더 바쳐져야 할까? 정부든, 병원이든 의업으로 장사가 잘되면 끝인 걸까. 의사와 환자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공공의료의 안착에는 정말로 관심이 없는 걸까.

한 명의 영웅이 탄생하길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주변에 일상 속의 영웅은 어디에나 있지 않은가. 그들이 행복하면서도, 재생산되고, 타인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더 값진 일 아닐까. 

내년에 의업을 할지도 모를 나는 이렇게 바라고,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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